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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노동자정치세력화, 실망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관련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급하게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글을 써 주신 규백 동지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노동자정치세력화, 실망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김규백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민주노총이 표류하고 있다. 2월과 3월 대의원대회를 연달아 열었지만, 3월이 다 가도록 사업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지난해 시작한 정치방침·총선방침을 둘러싼 갈등이 진보당의 민주당발 비례위성정당 참여로 폭발한 모양새다.

민주노총 일부와 시민사회 일부의 ‘자리 욕심’이 부른 이 난맥상에서, 우리는 ‘새롭지 않은 질문’에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 앞에 ‘민주노총이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것과 다른 답을 내놓아야 할 시간이다.

지난 2023년 연초부터 민주노총은 그간 유명무실하던 정치·총선방침을 새로 정하고, ‘진보대연합정당’을 건설을 주도해 2024년 총선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진보대연합정당안을 두고 수개월간 격론이 오간 끝에, 2023년 9월 14일 민주노총은 2026년까지 연합정당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정치방침과 친자본 보수정당과 그 위성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총선방침을 결정했다.

 

민주노총 제77차 임시대의원대회 (사진=노동과세계)



2024년 22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진보당이 ‘더불어민주연합’ 참여를 선언했다. 민주당발 위성정당 참여를 공식화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또다시 갈등에 휩싸였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가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3월 18일 민주노총은 80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었으나, 진보당 지지 철회에 대한 갈등으로 결국 사업계획을 채택하지 못해 지도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민주노총이 향후 중집이나 대의원대회에서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든, 못하든 이 사태 이후의 민주노총은 이전의 민주노총과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진보당도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의 진보정치에 관한 생각도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총선 이후 조직 갈등을 수습하고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진보당은 계속 진보정당이라고 자임할 수 있을까. 조합원들은 여전히 진보정치를 기대할까.

진보당의 위성정당 참여는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독자·통합 논쟁, 그리고 통진당 사태를 거쳐 다시 어렵게 쌓은 진보정치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에 환멸을 끼얹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의석을 얼마나 확보하든 민주노총과 진보정치 앞에는 길고 어려운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그 시간을 버텨 마침내 다음 진보정치를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 복원에 있어 핵심은 우리 가까운 일상 곳곳에서 ‘운동’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운동에너지를 소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증폭하는 방식의 ‘정치’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억지로 진보정당을 겁박하여 연합정당을 만드는 식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한탕을 위해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한 일도 아니다.

내가 속한 일터, 삶터의 자치 기구에 참여하고, 함께할 사람들을 조직하고, 마침내 부당한 것들을 바꾸어 내는 지속적인 승리 경험. 이 작고 소중한 승리 경험들이 모여 언젠가 큰 승리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작은 운동과 작은 승리는 큰 운동과 큰 승리를 위한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크고 작은 운동과 조직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또 성장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진보정당도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 이합집산이나 무기력, 무능력 등 각각의 문제로 진보정당들의 지역조직과 당원조직이 무너진 상태다. 지역 운동을 복원하고 당원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라, 당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당원들의 참여에 집중해야 한다. 대중정당에서 당은 곧 당원이어야지, 당 바깥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우리 더는 진보정치에 내 운동과 승리를 위탁했다가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지 말자. 진보정당이 몇 석을 얻었나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자. 진보정당에 가입하고, 지역 모임에 나가 노동의 목소리를 높이자. 꾸준한 실천의 경로를 만들자. 동지들이여 ‘정치소비자’가 아니라 ‘활동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