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임영일 재정위원장께서 사무국, 재정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학습모임의 내용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편집자주] |
불로소득 자본주의 (1)
임영일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재정위원장, (전)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활동한 교육원의 <미래위원회>의 보고서 내용 중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자기 유지를 위해서라도 주체들의 지속적인 자기 학습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권고 사항도 있었다. 인력과 재정 모두 부족한 교육원의 처지에서 내부 학습 프로그램까지 어떻게 가동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았는데, 일단 텍스트를 하나 찾아서 함께 읽고 토론하는 첫 모임을 가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다행히 뜨거운(?) 호응이 있어서 이사장과 사무국, 재정위원들이 함께 모이게 된 것이 지난 7월 13일의 일이었다.
첫 텍스트는 지주형 교수가 쓴 “불로소득 자본주의와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정했다. 이 논문은 <비판사회학회의> 학술지 『경제와 사회』 133호(2022년 봄호)에 실린 것으로, 학술지에 실리는 보통 논문과 비교하면 약 3배 분량인 69쪽에 달하는 긴 글이었다. 이 글을 택한 것은 ‘불로소득 자본주의’와 관련된 중요 저자들과 그들의 주장들을 잘 모아서 정리하고, 비판적 평가와 더불어 필자의 생각을 덧붙여 정돈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이런 저런 저자들과 문헌들을 계통 있게 정리한 길라잡이 텍스트라 보았다.
‘불로소득 자본주의’론은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2014년)이 학계뿐만 일반 언론매체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을 계기로 일종의 붐을 이루고 있었다. 좌파 학계와 언론, 그리고 사회·정치 운동, 노동운동 등에서 기존의 담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 담론 형성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자못 있어 보인다. 예컨대 최근 장석준이 번역하여 출간한 미국의 정치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책 『좌파의 길-식인자본주의에 반대한다』(서해문집, 2023)는 아예 마르크스 이론의 주변까지 탐색하고 보완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총괄 분석하는 이론적 전망을 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대안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구상까지를 야심차게 제시하고 있다. 그녀의 사회주의 구상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①불로소득의 원천인 막대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회적 최상층의 모든 자산은 박탈하여 집단적인 사회적 소유로 바꾸고, ②기본적인 사회적 수요(의식주와 교통, 통신, 에너지, 여가시설, 깨끗한 환경 등)는 모두 공공재로 무상으로 공급하며, ③그 중간에 시장, 협동조합, 공유재(커먼즈), 자주적 결사체와 자주관리제 등을 촘촘히 엮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가?
프레이저 외에도 현대 자본주의를 불로소득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그 극복 대안을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좌파 변혁이론과는 다른 맥락에서 제시하고 이를 운동으로 전개해온 흐름들이 있으니, 예컨대 ‘기본소득’론도 그 하나다. 금융과 토지와 부동산 등 지배층이 보유한 자산과 그 자산에서 낳고 있는 막대한 불로소득에 대하여 높은 세율로 과세하고(당장 빼앗지는 못 해도),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차등 없이, 그리고 대가 없이 일정 금액의 기본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이 그 골자다. 우리나라에도 이 운동이 시작된 지 오래고, 꽤 반향도 있었고, 유행도 탔다. 이재명 같은 사람이 이를 차용하여 이상한 형태의 기본소득, 심지어 ‘기본자산’론까지 주장하여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는 있지만, 어떻든 <기본소득당>이 생길 정도까지 되었으니까 말이다.
불로소득 자본주의론을 둘러싼 이론적 비판은 우파보다는 오히려 좌파, 특히 마르크스주의 쪽에서 많았다. 골치 아픈 말싸움, 논리 싸움보다는 현실에서 우격다짐으로 내리누르는 것이 장땡이라 여기는 우파들과는 달리, 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이론적 지도의 중심이 흔들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비판의 요점은 짐작하듯이 대략 이렇다. ①생산과정에서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가 자본가에게 착취되고, 그것이 축적된 결과가 자산이다. 따라서 본질은 이 착취구조다. ②잉여가치의 축적 결과인 자산은 그 자체 가치를 생산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다음 순환에서 다시 생산과정에 투입, 노동력을 결합시켜 착취 과정을 반복해야 더 큰 잉여를 수취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방기하고 자산에 대한 통제와 재분배에 몰두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고 계급투쟁의 대립점을 희석시키는,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수명을 더 연장하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불로소득 자본주의론도 그렇고 이에 대한 비판들도 그렇고 여러 가지 다양한 쟁점들과 복잡한 토론의 과정을 밟고 있는데, 지주형 교수의 텍스트 논문이 그것들을 장 정돈하여 소개하고 있으니 꼭 직접 보시기 바란다. 각설하고...
운동론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또 자못 심각해진다. 자, 그럼 노동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로소득 자본주의론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운동이 익숙해온 임금, 고용,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이미 이 사회의 핵심 지배층인 불로소득자들(금융, 부동산, 채권, 각종의 이권, 지적 재산권 등등의 소유자들, 정치·행적·사법·지식권력의 소유자들)은 그것과는 별 상관없이 다른 비생산적 경제 영역에서 마음껏 이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생산 영역에서의 이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큰 이익을.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장동’ 사례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하면서 여차하면 수백억, 수천억이 장난처럼 오가는 현실을 우리는 이미 익숙히 봐왔지 않은가?
그러면 이 싸움은 누가 이끌 수 있을까? 이런 자산소득의 범주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오로지 자신의 몸뚱이 하나, 자신의 노동만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 그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되는 것이 ‘프레카리아트’다. 집도 재산도 없이, 월셋집을 전전하면서 비정규 알바 노동, 플랫폼 노동, 떠돌이 임시 노가다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그들이다. 노동자들은? 아시다시피 웬만큼 먹고살 형편이 되는 노동자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기업 정규직 ‘귀족’ 노동자들은 자산계급 불로소득자들과 첨예한 이익 대립 관계에 있지 않다. 그들 역시 웬만한 집도 있고, 주식도 있고, 채권도 있고, 그러니 자산가치 상승과 그로 인한 먹이 사슬 이익공동체에 주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프레카리아트들이 나서서 반(反)자산계급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들은 너무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연대가 필요하다. 누구와 연대할까? 노동운동이 자기반성을 통해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 대열에 동참한다면, 그리고 미래의 불안에 떨고 있는 예비노동자 청년학생들이 떨쳐나선다면, 반자본주의적 협동조합들이, 페미니스트 운동들이, 생태환경운동들이, 대오각성한 좌파 정치세력과 정당들이 이 대열에 함께 나선다면, 그러면 가능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러면 가능하다.
거칠게 재빨리 요약해보자면 대략 이런 이야기가 된다. 실제 학습 모임에서는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지주형 텍스트 자체에 대한 요약과 뒤이은 토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한 공부와 운동 경험이 축적된 백전노장들의 모임이었으니, 오고가는 이야기의 행간에서 이런 요지를 간취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터이다. 자,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편집자의 원고 분량 통제로 여기서 잘림, 다음 호에 계속.)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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