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번 호 부터 교수노조 위원장을 역임하셨던 노중기 선생님의 <민주노조운동 되짚어보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
변절과 전두엽
노중기
한신대학교 교수(노동사회학)
우리 노동운동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약간 고역이기도 하고 무척 어렵기도 하다. 첫 글의 제목, ‘변절과 전두엽’은 무슨 뜻일까?
지난 40년 내 연구와 고민의 주제는 늘 민주노조운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노동운동을 생각할 때 항상 먼저 떠오르는 화두가, 사람이 있다. 바로 전설의 노동운동가 ‘김문수’다. 한때 ‘김문 순대’로 세간에서 조롱 대상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지독히 어려운 화두이자 물음이었고 또 과제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구 정치인 김문수는 젊은 시절 전태일의 첫 번째 대학생 친구였고 동료였으며 형제였다. 청계 피복공장의 공원이었고 태일을 대신해 오래 어머니 이소선의 아들이었으며 가난한 여성 노동자의 자상한 노동자 남편이었다.
그는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엘리트 대학생이었으나 곧 가진 모든 것을 버렸다.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노동자가 되었으며 이후 삶은 해고, 수배, 구속의 가시밭길이었다. 감옥살이는 물론 군부독재 정권의 극심한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노동운동가이자 혁명가였다. 대학 시절 내게 그는 살아있는 구로동맹파업,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었고 심지어 전설이었으며 모델이기도 했다. 교수 퇴임을 앞둔 지금도 지난 내 노동 공부가 그의 삶과 닿아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이후 그의 후반부 삶은 전혀 반대 방향으로 치달았다. 냉전 수구 정당의 삼선 국회의원과 재선 도지사를 거쳐 노동부 장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대통령선거 후보에 이르기까지. 전태일과 수많은 노동자를 죽였던 반노동자 정당에서 노동자를 억압·착취하는 선봉대로 다시 40여 년 가까이 살아온 것이었다.
한편 민주화운동 출신의 또 다른 정치인은 그의 삶을 ‘변절’이 아니라 ‘전두엽의 문제’로 이해하자고 반(半)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변절’이라 하기에는 정도와 과정이 너무나 극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합리적 이성이나 논리, 이유로 설명할 수 없으니 본인도 어쩔 수 없는 뇌신경 이상, 곧 질병으로 치부하고 말자는 것이다. 고문 후유증이라는 암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40세 이전과 이후의 김문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 보통의 변절이니 하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도 있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보수정치인 유시민이다.
민주노총이 30년을 맞이하던 작년, 필자는 이 문제를 논문으로 작성하고 ‘변절’로 규정한 바가 있었다, 김문수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 이후 쏟아지는 ‘변절’ 활동가와 연구자를 민주노조운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여러 답이 가능한 데 일단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념과 운동, 학문과 사상을 시장과 권력에 팔아넘긴 ‘변절’이라고 봤다. 다만 개인의 잘못보다 더 일차적으로 구조적 압력의 결과라는 이론적 단서를 달았지만.
다음 중 어떤 답이 정답일까? 아니면 여럿이 답일까? 답이 없는 문제일까?
첫째, 전두엽 문제다. 개인이든 사회든 책임 없다(즉 유시민의 전두엽도 검진이 필요하다).
둘째, 사회가 바뀐 결과니 당연히 개인의 오류가 아니다. 사회책임이다(아직도 혁명이냐?).
셋째, 모든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책임이다(낡은 거대 담론, 도덕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넷째, 구조 제약에 따른 통제하기 힘든 사회 현상, 변절이다. 개인·사회 모두 책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