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기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여야와 정부가 합심해 5인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처벌수위가 낮아지는 등 누더기가 된 상태로 법을 제정했습니다. 농성하시는 와중에도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김도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절실한 이유
김도현
청년용역노동자 故 김태규 누나,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제 동생 태규는 2019년 4월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수면제와 우울증 약이 없이 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의 이 고통은 끝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하루에도 7가족이 계속 당하고 있습니다.
몇 십년을 변함없이 OECD 산재사망 1위 국가입니다. 노동자가 이렇게 죽어나가는 동안 기업들은 엄청나게 성장해왔습니다. 이제 노동자도 죽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 죽이면 기업도 처벌받아야 합니다. 말단관리자가 아니라 기업책임자가 처벌받아야 합니다. 판사 맘대로 풀어주지 못하게 하한형을 꼭 도입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꼭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주십시오. 사람을 실제로 살리는 법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원청과 발주처 처벌이 꼭 포함되어 노동자들의 죽음이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태규네 발주회사 사람이 제게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졌으니 엘리베이터 업체에 연락해라”
“우리가 피해자다. 재수 없게 여기서 죽어 공사기간 지연되게 만들고, 돈 들게 만든다”
많은 건설 산재사고가 발주처 때문에 일어납니다. 한익스프레스처럼 무리하게 공기단축을 요구하고, 건설비용을 깍아서 안전이 지켜지지 않도록 하는데 발주처의 책임이 큽니다. 아예 위험한 설비나 공법을 발주처가 요청하기도 합니다. 제가 다 알 수 없었지만 태규네 발주처인 ACN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규가 죽어도 미안한 건 없고, 공사 지연되는 것 가지고 저에게 타박하던 곳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발주처인 ACN 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현재 산안법에는 발주처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주처는 고사하고, 하청업체 대표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하청업체인 은하종합건설 현장 소장과 차장이 각각 징역 1년과 10월을 선고받았을 뿐입니다. 언론에서 많이 보도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처벌도 없었을 것입니다. 산재사망에 대해 실형을 받는 게 2% 밖에 안되니까요. 이러니, 죽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원청과 발주처 처벌이 꼭 포함되어 노동자들의 죽음이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태규회사처럼 50인 미만사업장이라고 적용을 유예하는 건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입니다. 유예없이 당장 적용해야 합니다. 증거는 모두 회사가 가지고 있는데, 경찰도 노동부도 검찰도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똑같은 죽음이 반복되는 기업, 죽음의 증거를 감추는 기업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지금처럼 기업은 계속 은폐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경찰은 사건조사도 없이 태규의 개인과실인 것처럼 헛소문을 냈습니다. 핸드폰을 보다 그랬다고 했고, 술 먹고 실족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추락사한 동생의 몸에 칼을 대는 부검을 했습니다. 부검 결과 알코올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찰이 회사말만 듣고 노동자의 책임으로 모는 사이 증거는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도대체 동생이 어떻게 이곳에서 죽게 됐나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버려져있던 피 묻은 동생의 안전모도 이 때 찾았습니다. 이미 사건현장은 사 측에 의해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엘리베이터는 내려와 있었습니다. 화물용 승강기에 안전바가 없었습니다. 추락방지시설도 없었습니다. CCTV를 보니, ‘급히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했다’던 하청업체 현장이사는 주머지에 손을 꼽은 채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태규가 사고를 당해도 아예 구할 생각을 안 한 거구나!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장재세동기도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던 현장차장은 한쪽 팔에 기브스를 한 채 일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 리모컨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게차 신호수도 없었습니다. 안전교육도 없었다고 합니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현장이었습니다.
이 모든 걸 제가 일일이 쫓아다니며 조사했습니다. 경찰, 고용노동부는 손 놓고 있어서 제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모은 증거로 기소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이 죽었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조사하느라,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회사는 이런 저를 조롱하며 현장에서 쫓아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억울합니다. 저같은 절규하는 유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꼭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사람 살릴 수 있는 법으로 만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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