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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지 못 하는 이들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노동하되 노동자조차 아닌 사람들
노무제공자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노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1. 임금을 받으려고 육체적 노력을 들여서 하는 일. 또는 힘들게 하는 일. 2. 노동에 관련된 사무.’라고 나온다. 출처는 표준국어대사전이다. 그러니까, 표준국어대사전대로라면 노무제공자란 임금을 받으려고 일을 하거나 또는 힘든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무를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법률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다. 물론 우리 노동법에서 노동자라는 말도 아직 시민권을 얻진 못 했다. 그러니까 현행법을 존중해서 문장을 살짝 수정하면 이렇다. 노무제공자란 법률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사람을 뜻하기 위해 쓰인다. 이쯤 되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이 ‘특고’ 얘기네, 뭐 그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더 말을 붙이기도 식상한 그 특고노동자, 법률적 표현으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이야기다.
노동의 대가, 임금? 대금?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경우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근로관계로 인한 채권’인 임금채권의 경우 담보가 설정된 채권 이외에 다른 채권, 조세·공과금에 우선하여 권리를 보장받고 있으며, 최종 3개월분 임금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채권보다 가장 우선하여 받을 수 있다. 만약 사업주가 체불 임금을 주지 못 할 상황이거나 의도적으로 안 줄 경우, 일정액에 대해서는 국가에 우선 지급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국가가 체불임금을 우선 지급하는 제도를 체당금 제도라 부른다. 현행 체당금 제도는 일반체당금과 소액체당금 제도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다. 둘 다 사업주가 임금을 제 때 지급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임금체불임을 확인하면 노동자가 정부한테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반체당금은 사업주가 도·폐산한 경우에 한해 지급하고, 그렇지 않고 사업주가 여전히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면 소액체당금을 받는다.
체당금 제도 이외에도 노동자가 임금을 제 때 못 받았을 경우, 저금리의 융자를 신청할 수도 있다. 상환의 의무가 있다는 점, 저금리일지라도 이자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체당금 제도보다는 못 하지만, 어쨌거나 체불로 인해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 노동자에게는 두 제도 모두 일시적이나마 안정망 역할을 한다.
넓게 보면, 체불에 의한 임금 채권 역시, 민법상 채권의 한 종류다. 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이 돈을 빌려 주고 돈을 못 받았다고 국가가 대신 지급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상은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재판을 거쳐 승소한 후 압류 등의 방법을 통해 채권을 회수한다.
임금 채권을 이처럼 특별히 보호하는 이유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을 사용하는 것을 일종의 노예노동 또는 강제노동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며, 임금은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고 이를 보호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제대로 처벌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지만, 임금체불 사업주에게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적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는 것은 봉건제나 노예제 시절이나 있던 일이니 정상적인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예견하고 있는 21세기 들어 나타난 각종 새로운(진정 새로운 일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일자리에서 노예노동에 다름 아닌 일들이 발생하고 있고, 첨단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근대 사회 초기에 마련한 사회적 보호 장치조차 제공하지 못 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부설기관인 유니온센터가 2020년 상담 사례를 모아 발간한 보고서(사단법인 유니온센터, 2020년 노동상담 사례보고서)에 따르면, 일을 하고도 ‘근로자성’ 문제가 쟁점이 돼 보호 받지 못 한 상담 사례가 전체 상담 중 7.2%에 달했다. 이들의 직업은 ‘독서실 총무, 학원 강사, 행정인턴, 디자이너, 촬영기사, 영상편집자’ 등으로, 정부가 산재보험법 상 특고노동자로 인정한 업종에 모두 포함되지 않는 일들이다.
유니온센터 분석에 따르면, ‘고용형태 및 근로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실제로 개인사업자(프리랜서)로 판단될 여지가 많은 사례도 있었’으나, ‘카페 아르바이트나 카운터 아르바이트와 같이 사업주와의 사용종속관계가 분명한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있었’고, 이는 사실상 “위장 프리랜서”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처럼 ‘근로자성이 문제되는 사례의 경우, 대부분 임금체불 문제가 동반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들이 ‘노무를 제공하고’ 받는 돈의 이름은 임금이 아니라, ‘대금’이다. 대금은 임금과 같은 보호를 못 받는다. 돈 떼 먹은 사업주를 처벌하지도 않고, 우선 변제의 권리도 주지 않으며, 체당금이나 체불 융자 같은 안전망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같은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법원에 가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법은 늘 노동자에게 가까운 법이 없었을 뿐더러, 혹여 긍정적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수년이 걸린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사회보장에서 ‘근로자성’의 의미
일반적으로 법에서 정하는 ‘근로자성’이 단일한 기준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개별적 노사관계, 집단적 노사관계, 사회보장법에서의 노동자성이 각각 다르다.
개별적 노사관계에서의 노동자성이란 근로계약을 맺는 당사자로서 근로기준법 등이 정하는 노동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 임금과 휴식, 휴게, 해고, 연차, 최저임금, 차별금지 등에 대해 법이 정한 최소한의 보호가 이뤄진다.
집단적 노사관계에서의 노동자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노동조합법의 핵심은 집단적 대화와 행동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조법 상 노동자는 반드시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경우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고자나 실업자의 노조 가입이다. (그러니까 실업자는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가 아니지만, 노조법상 노동자인 것이다.) 또한 특고 노동자 일부도 노조 설립이 인정되었고, 공무원·교사도 제한적으로 노조 활동이 보장된다.
사회보장에서의 노동자성은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규정한다.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의 노동자성은 사용자의 의무를 동시에 수반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정의가 보다 엄격한 반면, 사회보장법에서의 노동자는 누구에게 보호를 제공할 것인지, 그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지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관대하게 규정한다. 사실 제도의 취지를 따지자면, 반드시 노동자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 최근 성남시에서 제정한 ‘일하는 시민을 위한 조례’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여기서 일하는 시민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특고노동자, 자영업자 등이 말 그대로 일 하는 대부분의 시민이 포함된다.
특고 노동자 체불 지원 제도를 만들자, 당장
다시 노무제공자의 일의 대가로 돌아가자. ‘근로자’는 임금이 체불되면 체당금 또는 체불융자 등으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노무 제공의 대가를 못 받은 이들은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에 문의를 하면,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체불 여부조차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4차 산업 혁명과 산업의 변화, 다양한 고용형태의 출현이 무슨 유행처럼 온갖 보고서 서문을 장식하고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논란이 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정작 자본의 꼼수로 고용형태가 일순간에 바꾼 이들은 일의 대가를 못 받아도 행정의 문턱조차 넘지 못 하고 있다.
4차 산업,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이들의 고용형태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해외의 경우 이미 플랫폼 알고리즘이 사실상 취업규칙이라거나, 우버 기사가 사실상 노동자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전향적인 논의가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사이 특고노동자들은 떼먹힌 임금조차 제대로 보호 받지 못 할 것이다. 4차 산업과 플랫폼 노동의 부상이 그토록 새로운 현상이라면, 노동자성 논란과 별개로 사회보장 제도는 변화된 현상을 따라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명칭이 무엇이 됐든 ‘노무 제공의 대가’를 받지 못 한 경우, 최소한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금액을 융자해 주면 된다. 체당금 제도는 임금이라는 특수한 채권에 대한 제도라는 점에서 당장 특고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체불 융자 사업의 경우 굳이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따질 이유가 없다. 돈을 거저 주는 것도 아니고 빌려 주는 건데 그들이 처한 어려움이 어떤 종류인지를 꼭 가려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로복지공단의 다양한 노동자 융자 사업에서는 특고 노동자까지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다수 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특수고용 노동자로 일하고 있고, 2-30대의 청년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첫 번째 노동시장 진입이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 일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상관없이 모든 일은 그 대가를 받을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
※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달 기고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합니다. 그 동안 부족한 글임에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신 교육원 회원분들께 부끄러움과 함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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