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꼭지 <ISSUE>의 두 번째 글입니다. 오늘도 고정필진 홍원표 동지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반론과 기고, 정기연재 언제나 환영입니다! [편집자주] |
의사 파업, 노동조합이 주목해야 할 쟁점들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두고 의사들이 집단 휴진에 돌입했고, 결국 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9월 4일 ‘정책협약 이행 합의’를 맺었다. 합의의 핵심 내용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대해 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고 안정화 이후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것이다. 정책 철회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정부와 의협 간의 합의에 대해 강력 반발했지만, 의협이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집단 휴진은 일단락되었고 정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우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집단 휴진을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번 의사 파업의 내용과 결과는 물론이거니와 행위 주체인 의협과 정부 모두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뿐이었다.
의사 수는 충분한가?
2020년 7월 1일 OECD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보건의료자원은 병상, 의료장비 등 물적 자원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나, 임상 의사나 간호 인력 등 인적 자원은 부족한 편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하여 인구 천명당 2.4명으로 통계를 제출한 국가 중 세 번째로 적었다. 또한 간호 인력 역시 인구 천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인 8.9명보다 1.7명으로 적었다. 반면, 대표적 의료장비 중 하나인 MRI는 인구 백만 명당 30.1대, CT 촬영기는 인구 백만 명 당 38.6대로 OECD 평균(각각, 17.0대, 27.4대)보다 상당히 많았다.
국가별로 보건의료 제도나 인구구성(고령화 등) 및 사회문화적 차이로 의료 이용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 수를 단순 비교하여 적정 수준을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 이에 대해 의협 등은 의사 증가율이 한국이 높기 때문에 곧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비율이 OECD에 근접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기 위해 최근의 추이가 아닌 20년 전 증가율 데이터를 사용한 것으로 일종의 통계 마사지에 불과하다.
공공의료는 충분한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공공보건의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현재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은 기관 수 기준 5.7%, 병상 수 기준 10.2%에 불과했다. 2012년에는 각각 6.1%, 11.7%로 6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이는 OECD 가입국 평균인 71.4%(병상 수 기준, 이하 동일)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것이다. 참고로 영국은 100%, 캐나다 99.3%, 터키 76.3%, 그리스 65.2%, 프랑스 61.6%, 독일 40.7%이며, 영화 식코로 알려진 의료 민영화의 천국인 미국조차22.1%에 달하는 것을 볼 때 공급 측면에서의 한국 공공의료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의료 인력 기준으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18년 말 기준 인구 천명당 공공의료기관 의사 인력은 0.25명으로 전체 의료 인력의 1%에 불과하다. 공공의료 공백이 심각한 지역인 울산이나 세종의 경우 0.003명이며, 인천 0.039명, 충남 0.084명, 경북 0.107명 등으로 지역적 편차 역시 매우 심각하다.
정부 정책은 적절한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특히 향후 고령화 사회로의 빠른 진입과 의료 수요 확대를 고려할 때 의료 인력 확충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은 적절했을까?
의료 인력을 확충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이다.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의 주요 논거 중 하나가 지역의 의료 공백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민간의료기관 중심 공급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지역 의료 공백이 쉽게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수익성을 쫓는 민간의료기관이 지방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인력 공급이 늘어난다 해도 이들이 일할 곳은 결국 수도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 의료 공백을 메울 공공의료기관 등 인프라 확충이 우선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어야 한다.
지역 의료 공백의 또 다른 해법으로 정부가 제시한 지역의사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수련의 기간을 포함해 10년을 지역에 복무하도록 하고 있다. 의협 등은 이에 대해 “인턴과 전공의에 4~5년이 소요되고, 전문의 취득 후 전임의 과정까지 밟게 되면 남은 의무복무 기간은 3~5년 정도가 된다. 의무복무 기간이 종료된 이후 의사의 상당수가 해당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이동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의 비판은 현실적인 문제지만, 이들이 제기한 수가 인상을 통한 해법은 지역을 빌미로 결국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보험료 인상으로 돌아 올 것이다. 지역간 의료 불균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원 투자가 필가피하다면 오히려 시민사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료 인력 양성 전반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와 공공의료기관 확대 등 공공성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
원점 재검토? 노동운동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의사 파업 과정에서 일부 의사 집단은 그들의 집단행동을 ‘전문가와 정치관료’의 대립으로 묘사하고 전문성 없는 권위주의자들이 보건의료 정책을 결정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결국 그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재논의 약속을 받아냈다.
정부정책의 결정이 관료주의적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비판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러한 프레임 설정은 정치가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의 조정이라는 점, 민주주의는 이러한 자원 배분의 정치 과정에 비전문가이지만 주권자인 시민이 참여해서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렸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민주적 사회에서 전문가는 결정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비전문가이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적절한 조언이 주어질 때 주권자들이 충분히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역사였다.
더욱이 의사는 질병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전문가이지만, 보건의료 ‘제도’를 논의할 때는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당사자는 의료비와 보험료를 지출하고 의료서비스를 받는 노동자와 시민들이다. 따라서 정부여당과 의협 사이의 ‘원점 재검토 협의’야말로 원점 재검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 시민의 참여를 통해 보건의료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노동운동 역시 이번 의사파업을 계기로 코로나 이후 공공 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계·시민사회와의 협의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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