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꼭지 <ISSUE>의 세 번째 글입니다. 오늘도 고정필진 홍원표 동지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반론과 기고, 정기연재 언제나 환영입니다! [편집자주] |
택배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 당장!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지난 10월 8일, 40대 택배노동자가 업무 중 사망했다. 배송 중 호흡곤란으로 긴급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안타깝게도 죽음을 피하지 못 했다. 전형적인 과로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올해 들어 과로사로 숨진 것으로 알려진 택배노동자만 8명이다. 모두 3~40대로 알려졌다. 코로나 19로 인터넷 주문 등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택배 배송량이 늘었지만, 택배 회사가 충분한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의 노동현장은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은 주당 평균 71시간을 일한다. 주 6일을 일하고, 하루 최소 9.5시간에서 많으면 12.7시간 일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업무량은 예년에 비해 3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택배노동자 4명 중 1명은 일하는 도중 식사도 제대로 못 한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일해서 벌어가는 돈이 월 평균 234만원이다. 일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친다.
산재보험도 적용 안 되는 택배 노동자들
올해 숨진 8명의 택배 노동자들은 모두 일하다 숨지거나 과로로 인해 삶을 마감했다. 전형적인 산재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산재 적용을 못 받았다. 가장 최근에 숨진 8번째 희생자도 지난 9월 사측의 요구에 따라 ‘산업재해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썼다.
산재보험은 의무가입 제도다. 보험에서 맘대로 빠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택배노동자는 임의로 보험에서 빠질 수 있다. 현행 산재보험법에서는 택배 노동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구분하고 노동자와 달리 별도 특례로 산재보험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 특례 규정은 2008년 법 개정을 통해 마련된 것이다. 특고노동자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민사상 위탁 계약으로 위장하여 노동법상 보호를 못 받는 노동자들이다. 특고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노동자성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고, 이는 산재보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동일한 입장을 보인 보수양당은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 상 노동자성 인정 요구를 져 버리고 산재보험 ‘특례 적용’이라는 예외 적용 조항을 신설했다. 사회보험을 예외적으로 적용한다는 말은 결국 적용대상을 ‘선별’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선별의 기준으로 ‘(1)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2)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한다는 이른바 ‘노무 제공의 전속성’ 기준이 오히려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 편입을 가로 막는 독소조항으로 작동하고 있다.
공적 사회보험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이들을 포괄하는 보편성이 핵심이다. 그런데 ‘전속성’ 기준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고용형태, 특히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는 경향을 고려할 때 매우 낡은 기준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시간강사나 건설 일용직 노동자 등과 같이 복수의 사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전통적인 노동자의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성을 더 광범위하게 규정해야 할 사회보험이 ‘전속성’과 같은 협소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고용보험만 해도 2개 이상의 사업장에 동시에 고용되어 있어도 보험 가입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의 전속성 기준 때문에 법 개정 이후 1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재가입 대상 직종은 9개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독소조항은 임의 적용 제외 제도다. 산재보험법 제125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제4항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이 법의 적용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 보험료징수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단에 이 법의 적용 제외를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법 조문만 따지면 적용 제외 신청이 노동자의 의사에 따른 것처럼 보이나, 현실의 갑을 관계에서 ‘갑’인 사장이 요구하는 것을 ‘을’인 노동자들이 거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 대부분은 본인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줄도 모르거나(39.6%),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16.8%)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속성’과 ‘임의 적용제외’ 독소조항은 특고노동자 산재보험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2019년 현재 9개 특례 업종의 산재 적용률은 14%에 불과하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 실태
(’19. 8월말 현재, 단위: 명, 개소, %)
|
전체 |
08년 8월부터 적용 |
12년 5월부터 적용 |
16년 7월부터 적용 |
||||||
보험 |
건설기계 |
학습지 |
골프장 |
택배기사 |
(전속) |
대출 |
신용카드 |
(전속) |
||
등록 |
476,213 |
343,584 |
7,601 |
45,597 |
30,714 |
15,923 |
11,356 |
7,965 |
13,464 |
9 |
적용제외 |
409,875 |
304,882 |
5,075 |
38,936 |
29,539 |
10,088 |
3,705 |
6,460 |
11,185 |
5 |
86.07 |
88.74 |
66.77 |
85.39 |
96.17 |
63.35 |
32.63 |
81.1 |
83.07 |
55.56 |
|
실 적용 |
66,338 |
38,702 |
2,526 |
6,661 |
1,175 |
5,835 |
7,651 |
1,505 |
2,279 |
4 |
13.93 |
11.26 |
33.23 |
14.61 |
3.83 |
36.65 |
67.37 |
18.9 |
16.93 |
44.44 |
|
가입 |
7,046 |
1,829 |
1,067 |
520 |
480 |
1,692 |
1,181 |
244 |
8 |
25 |
* 자료 : 장지연⸳박찬임(2019), “사회보험 사각지대”, 「노동리뷰」 2019년 11월호, 16쪽.
전국민 산재 보험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전국민 고용보험 논의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전국민 고용보험 논의에서도 특고노동자 적용이 핵심 사안이다. 그런데 정부는 고용보험 논의에서도 또 다시 ‘전속성이 높은 직종 우선 적용’을 들고 나왔다.
이는 2년 전 고용보험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합의한 안보다 후퇴한 것이다. 고용보험위원회 합의 안은 ‘근로자가 아니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사람’을 추가 적용 대상자로 규정했었다. 산재보험과 달리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할 것, 즉 전속성을 요건으로 달지 않았다. 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이라고 생색은 냈지만 특고노동자 조차도 제대로 포괄하지 못 하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특고노동자가 포함된다고 해서 전국민 고용보험, 전국민 산재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하다 다친 사람이 자영업자건, 특수고용 노동자건, 그냥 노동자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전국민 고용보험, 산재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의 경우 전국민을 대상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노동자가 아닌 취업자를 대상으로 보험을 적용하고 있으며, 학생과 가정주부 등 미취업까지 포함한 사례도 있다. 임금 받는 일만 일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철학을 제도적으로 확인해 주는 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서는 특고 노동자의 보험 적용이 중요하다. 이들은 사실상 노동자이기 때문이고, 한발 양보해 기존의 고용형태와는 다른 새로운 고용형태라 인정하더라도 공적 사회보험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영역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방법도 어려운 게 아니다. 당장 현행 산재보험법의 전속성 조항과 임의 적용 제외 조항만 삭제해도 상당 부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안전하게 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죽지 않고 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일하다 다치면 치료라도 제대로 받고 생계비라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설령 본인의 의사라고 해도 그런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타인의 요구로 그런 권리를 박탈당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문명 사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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