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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문학

[노동인문학] 노동해방, 오래된 꿈_ (1) 노동해방 : 혈서와 신화

이번 호부터 교육원 박장현 원장님의 노동인문학 "노동해방, 오래된 꿈"이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1. 노동해방 : 혈서와 신화

 

 

1-1. 노동해방 혈서

 

1988년 제1차 전국노동자대회, 여의도 행진

노동해방이라는 말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눈을 찌른 최초의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 1988년 제1차 전국노동자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노동해방은커녕 노동이라는 말조차 금기어에 속하던 시절이었다. 6.25전쟁 이후 삼십 년이 넘게 한국 사람들은 노동이라는 말 대신 근로라는 말을 쓸 것을 강요당해왔다.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살아야 했다. 또는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야 했다. ‘산업전사로 살기도 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이처럼 삼십년이 넘도록 땅속에 파묻혀 있던 노동이라는 말을 다시 캐내어 깃발에 높이 매달았다. 이듬해에 남한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노동자대회를 열었고, 여기서 노동노동해방으로 발전하였다. 그날 일어났던 일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 기록을 들춰보자.

 

11 13, 오후 2시경에 이르러서는 이미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세대 노천극장이 의기충천한 노동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마산·창원 노동조합총연합, 진주 민주노조연합, 거제도의 대우조선, 울산의 현대중공업, 서울지역 노조협의회, 성남 노조협의회 등의 노동자들이 차례로 들어와 앉으며 자리가 꽉 차 버렸다. 인천지역, 경기남부지역, 부산지역, 대구·구미·포항지역, 현대엔진 등의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운동단체 회원, 학생들이 줄줄이 늘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노동자들은 일어서서 자리를 좁혀 보았으나 헛일, 서울지역 노동자들은 서슴없이 일어나 산등성이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진행된 1시간여에 걸친 입장식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노동자 부대는 노천극장과 그 위 산등성이를 가득 덮어버렸다. 이들의 연합된 목소리, "노동악법 철폐하여 노동해방 앞당기자"는 외침은 건너 산마루까지 뒤흔드는 감동의 함성이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힘에 감동하였으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다. 출정결의와 더불어 세창물산 등 위장폐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하얀 광목천에 혈서를 써내려갈 때에 이르러서는 그 글씨 그대로 노동해방을 향한 비장함이 하나의 힘으로 느껴졌다.

가자! 여의도로

이 물밀듯 밀려나가는 힘을 어느 누가 막을쏘냐. 3, 4, 여의도로 행진하는 노동자의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혈서로 쓴 "노동해방"이라는 프랭카드를 든 의장단을 선두로, 검푸른 작업복에 붉은 띠를 맨 선봉대, 마창노련, 울산지역 순으로 이어진 노동자의 대열은 질서 있고 힘으로 가득 찼다. 가로변의 시민들이 노동자의 대행진에 감탄과 찬사를 보냈으며, 전경들과 백골단의 눈빛은 위력에 압도당한 그것이었다. “노동계급의 영웅적 투쟁 만세 길목 언덕배기 서강대학교 수위실 위에 서 있는 이 열두 개의 대형글자는 이 날 노동법 개정을 위해 나아가는 대행진의 기세를 그대로 압축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행진하며 노동해방, 악법철폐”, “해체 전경련, 타도 민정당”, “악법철폐, 민주쟁취”,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끝장내자”, “부정축재 환수하여 서민주택 건설하자 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노동자계급이 역사와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쩔은 얼굴들, 검푸른 작업복의 사나이들, 그러나 이 민족, 이 민중의 장래를 짊어진 사기충천한 노동자들은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한국의 부를 상징하는 63빌딩과 가진자들의 정치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 마침내 입성하였다. 

11 13, 18년 전 이 날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동지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며 산화해간 날이다. 이 날을 기려, 노동자들은 18년 후인 오늘 전태일 정신 계승 및 노동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니러 가는 것이다라는 그의 유언을 오늘, 연세대, 그리고 여의도에서 그의 친구들이, 동지를 아는 동지의 모든 분신들이, 동지를 모르는 동지의 모든 분신들이 힘찬 투쟁을 통해 실현해 낸 것이다.

(<노동자의 길> 1988 11, 33)

 

이날 노동자들이 외친 노동해방이란 구호는 무슨 뜻을 담고 있었을까? 무슨 꿈을 담고 있었기에 그렇게 수많은 노동자들을 감동시켰을까?

 

노동해방이란 무슨 뜻일까? 노동하지 말고 먹고 놀자는 뜻일까? 아니라면 무슨 뜻일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이 노동이라고 하는데, 왜 인간은 오히려 노동해방을 꿈꾸는 것일까? 언제부터 인간은 노동해방을 꿈꿔왔을까?

 

1987년 그날로부터 35년이 지나간 지금 노동해방이라는 깃발은 더 이상 노동운동의 선두에서 펄럭이지 않는다. 그동안 꿈이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꿈을 잊어버린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기 전에 먼저 노동하는 인간들에게 노동해방의 꿈이 얼마나 오래된 꿈인가를 확인해보자.

 

 

1-2. 노동해방 신화

 

인류문명은 노동의 산물이다.” 이 말에 반대하고 나설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문명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노동의 산물이 아닌 것을 단 하나라도 꼽을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대략 5백만 년 전에 원시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했으며, 대략 1만 년 전에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인류가 원시시대에서 문명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 기술혁명 덕택이었다. 농경목축 기술이다. 그 전까지 거의 5백만 년 동안 원시인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수렵채취 기술이었다. 1만 년 전쯤에 시작된 농경목축 기술은 인간의 노동과 삶을 빠르고 넓고 깊게 변화시켜서, 단숨에 원시인간을 문명인간으로 바꾸어놓았다. 물론 그 변화는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서 진행되었지만, 5백만 년과 비교한다면 단숨에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된 것도 오로지 문명 덕택이다. 그것을 일단 문명의 밝은 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이런 말투도 실은 인간중심주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두기로 하자. 만약 자연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을 어쩌면 문명의 어두운 면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동안 문명의 발전이 가져온 자연의 파괴를 두고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인류문명은 또 하나의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와 파괴가 그것이다. 인류문명의 앞면은 찬란한 유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뒷면은 인간에 의한 인간 도살로 차고 넘친다. 인류문명은 소수인간이 다수인간의 노동을 구속하고 착취하면서 건설되었고, 그에 맞서는 다수인간의 노동해방 투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발전해왔다.

 

노동해방을 향한 인민대중의 꿈은 실은 인류문명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꿈이다. 설마? 증거를 찾아보자. 인류문명의 탄생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자료들 중 하나로 신화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여러 곳의 신화들 중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신화가 있다. 이 신화에 담겨 있는 노동해방의 꿈을 발굴해보자.

 

<아트라하시스> 토판, 대영박물관

 

수메르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5~6천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수메르 신화는 대략 4~5천 년 전부터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메르 신화는 여러 시기에 걸쳐서 여러 번 토판에 새겨졌는데,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토판은 <아트라하시스> 토판이다. 대략 38백 년 전 바빌론 시대에 기록된 판본이다.

 

대다수 신화들이 그렇듯이 수메르 신화도 천지창조 이야기와 인간창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화를 따르자면, 인간은 신의 로봇으로 창조되었다. ‘로봇’(robot)이라는 말은 20세기 폴란드 작가 카렐 차페크에 의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며, ‘인간을 닮은, 지능 있는, 노동하는 기계를 뜻한다. 그런데 4~5천 년 전에 써진 수메르 신화에 이미 로봇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로봇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인간을 닮은, 지능 있는, 일하는 기계라는 뜻은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왜 수메르 신들은 인간을 로봇으로 창조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인민대중의 노동해방투쟁 때문이었다.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당시의 인간사회가 철저한 계급사회였다는 뜻이다. ‘아눈나키라고 불리는 큰 신들집단이 있었고, ‘이기기라고 불리는 작은 신들집단이 있었다. 큰 신들은 작은 신들을 다스렸으며, 노동은 오로지 작은 신들의 몫이었다. 작은 신들은 24백 년 넘게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바닥을 퍼올려서 둑을 쌓는 노동, 수로를 뚫고 우물을 파는 노동, 도시를 건설하는 노동을 해왔다. 노동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침내 작은 신들이 큰 신들을 상대로 무력투쟁에 나선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류 최초의 노동해방투쟁이다.

 

 

그 대목을 발췌해서 읽어보자. 하늘을 다스리는 신들의 왕 아누, 땅을 다스리는 바람의 신 엘릴, 그의 의전관인 전쟁의 신 닌우르타, ‘압수라는 바다를 다스리는 지혜의 신 에아 등이 등장한다.

 

신들이 사람 대신에, 노동을 하였고 노역을 감당했다.
신들의 노역(勞投)은 컸고, 노동은 힘겹고 고생이 많았다.
아눈나키 큰 신들은 이기기 작은 신들에게 일곱 배의 노동을 감당하게 하였다.
이기기 작은 신들은 운하를 팠으며, 땅의 생명 줄인 수로를 뚫었다.
신들은 티그리스 강바닥을 팠으며, 유프라테스 강 바닥을 팠다.
깊은 우물도 팠으며, [] 세웠다.
그들은 고역한 햇수를 세었다. 40x60년 이상이나 일을 했다. 밤낮으로 노동을 감당했다.
그들은 불평불만에 가득 찼고, 파놓은 흙더미 위에서 투덜거렸다.
의전관인 우리의 닌우르타를 만나자. 그는 우리를 중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신들의 고문관 용사(勇士) 엘릴에게 가자, 그의 거처에서 그를 끌어내자.”
[] 입을 열고 그의 형제 신들에게 말했다.
신들의 고문관 용사 엘릴에게 가자, 그의 거처에서 그를 끌어내자.
지금, 싸우자고 외치자. 전쟁을 일으켜 투쟁하자.”
신들은 그의 말을 듣고, 연장에 불을 질렀다.
삽에 불을 질렀고, 흙 나르는 바구니를 태웠다.
손에 손 잡고 나갔다, 용사 엘릴의 집 대문을 향하여.
누스쿠는 그의 주()를 깨워서 침상에서 일으켰다.
(), 당신의 집이 둘러싸여 있고, 전쟁이 대문까지 닥쳐왔습니다.
엘릴, 당신의 집이 둘러싸여 있고, 전쟁이 대문까지 닥쳐왔습니다.”
엘릴은 그의 거처에 무장을 시켰다. 엘릴은 입을 열어 그의 시종 누스쿠에게 말했다.
누스쿠, 대문을 잠그라. 무기를 들고, 내 앞에 서라.”
누스쿠는 대문을 잠그고 무기를 들고 엘릴 앞에 섰다.
엘릴은 아누를 여기에 내려오라고, 에아를 그의 앞에 데려오라고 보냈다.
하늘의 왕 아누가 앉았고, 압수의 왕 에아도 참석했다. 큰 아눈나키 신들도 앉았다.
에아는 입을 열고 형제 신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왜 그들을 비난합니까? 그들의 노동은 힘겹고 고생이 많습니다.
매일 땅이 외치며, 울부짖음이 심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듣습니다.
[] 있습니다. 산파(産婆)의 여신 벨레트일리가 있습니다.
그녀가 인간적인 인간을 만들어서, 그 인간이 이 멍에를 지게 만듭시다.
인간이 멍에를 지고, 신들의 노역을 맡게 만듭시다.”
그들은 신들의 산파, 지혜로운 마미(母神)를 불러 물어 보았다.
당신은 산파의 여신, 인간의 창조 여신입니다. 인간을 만들어 그가 멍에를 지게 하시오.
인간이 엘릴의 일인 멍에를 지게 합시다. 인간이 신들의 노역을 떠맡게 합시다.“
닌투(母神)는 입을 열고 큰 신들에게 말했다.
나 혼자 할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에아와 함께 할 일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정결(淨潔)하게 합니다. 그가 나에게 찰흙을 주면 내가 만들겠습니다.”
초하룻날, 초이렛날, 보름날에 정결례를 거행했다.
그들의 모임에서 지능(知能)이 있는 신() 웨일라를 잡아 죽였다
닌투는 그의 살과 피에 찰흙을 섞었다.
앞을 내다보는 에아와 마미는 운명의 집에 들어갔다.
산파의 여신들이 모였으며, 에아는 그녀 앞에서 찰흙을 밟았다.
그녀는 주문(呪文)을 읽었으며, 그녀 앞에 앉은 에아는 세었다.
주문이 끝나자, 그녀는 열네 개 찰흙 덩어리를 떼어 냈다.
일곱 개로는 남자를 만들고, 일곱 개로는 여자를 만들었다.
산파여신들이 모였으며, 닌투는 앉았다.
그들은 달수를 세었다. 열 달째를 운명의 때로 정했다.
열 달째가 되자, 그녀는 막대기를 집어넣어 자궁을 열었다.
인간이 늘어났다.
그들은 새 호미와 삽을 만들었고, 큰 운하를 팠다.
사람들의 식량과 신들의 음식을 [] (토판이 부서져 없음)

(안성림/조철수 <사람이 없었다, 신도 없었다>, 153~165쪽 발췌)

 

 

 

이처럼 수메르 신화는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노동착취 현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을 꾸며내고 있다. 그러나 거짓말을 찬찬히 되씹어보면 진실이 드러난다. 이미 수천 년 전 수메르 사회에서도 인민대중은 노동해방의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 걸고 투쟁했다는 사실이다.

 

 

1-3. 노동해방 : 양날의 칼

 

노동해방은 매우 추상적인 말이다. 1988년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하여 노동해방 깃발을 치켜세웠던 사람들도, 그 깃발을 따라 35년을 걸어온 사람들도,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원초적인 꿈일수록 그렇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 말만 들으면 심장이 뛰고 피가 솟구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말은 추상적일수록 양날의 칼로 된다. 이쪽을 벨 수도 있고 저쪽을 벨 수도 있다. 노동해방을 앞장서서 방해하는 사람도 자신을 노동해방주의자로 자처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찾아보자. 2020년에 뜬금없이 <박기성 교수의 자유주의 노동론 : 노동해방을 위하여>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꼴통 자유주의자가 쓴 책이다. 자유주의자가 노사관계론 책을 냈다는 점을 두고 뜬금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점은 그가 자신의 책에 노동해방을 위하여라는 부제목을 붙인 점이다. 책을 읽어보면 온통 노동해방을 방해하는 내용뿐이다. 그런데 그런 부제목을 붙였다. ‘노동해방이 너무 추상적인 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로 될 수 있고, 코에 걸면 코걸이로 쓸 수 있다. 노동해방을 위한 투쟁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고, 그것을 때려잡는 반동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이처럼 노동해방은 저쪽을 베는 칼이 될 수도 있고, 이쪽을 베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혼돈과 폐단을 피하자면 조금 골치 아픈 머리노동을 해야 한다. 그런 머리노동을 면제받고 싶다면, 말이 만들어내는 온갖 혼돈과 폐단을 감수하면 된다. 꼴통 자유주의자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런 것을 감수하기 싫다면, 머리노동을 해야 한다.

 

그런 머리노동을 맑스는 추상화-구상화노동이라고 요약하였다. 구체적인 실물세계의 운동과 변화를 규명하자면 먼저 그것을 관찰하여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추상화(抽象化) 노동을 통하여 진행된다. 보편적인 원리는 추상적인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단 보편적인 원리를 찾고 나면, 그 원리가 구체적인 실물세계를 운동시키고 변화시키는 모습을 서술해야 한다. 이렇게 보편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개념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과정은 구상화(具像化) 노동을 통하여 진행된다. 설명은 구체적인 선택과 실천이 가능한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구상화 노동은 구체적 실천을 위한 첫 단계에 해당된다.

 

 

추상화-구상화 노동이 빠진 실천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노동해방을 달성하겠다며 오히려 그것에 역행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오늘날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보자. 그들은 자신을 동학개미라고 자처하고 있다. 외국자본에 맞서서 척양척왜 보국안민운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본래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계급사회에 기반을 둔 인류문명을 고발했었다. 그는 인류문명의 시작을 선천개벽’(先天開闢)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은 설계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를 가져올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다는 뜻이었다. 그에 맞서서 최제우는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한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주창했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곧 하늘로 생각할 때 비로소 새로운 문명이 열릴 것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동학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표출된 인간해방 사상이었다.

 

최제우가 체계적인 설명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동학의 인간해방 사상은 당연히 노동해방 사상을 포괄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하늘로 대한다면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해먹는 짓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최제우가 뿌린 노동해방의 씨앗은 뒤에 동학민중혁명으로 터져나와 한반도를 뒤덮는 싹을 틔웠으며, 지배집단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을 거쳐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동학이 다시 한 번 운동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동학개미운동이다. 동학의 노동해방 사상을 정면으로 걷어차면서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동학의 깃발을 흔들며 나선 것이다. 골치 아픈 추상화-구상화 노동을 빼먹은 채 동학이라는 이름만 따온 것이다. 노동자들 중에서도 노동해방을 달성하겠다며 동학개미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