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PRISM

[PRISM] ‘암호화폐’의 실체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근래 화제가 되는 '비트코인'류의 소위 암호화폐에 대한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주]

 

‘암호화폐’의 실체

 

노현영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코로나19의 범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찾아온 대규모 경제위기로 인해 유례없는 양적완화가 이루어졌다. 시장에 대규모로 공급된 화폐는 투기시장으로 쏟아졌고, 그에 따라 주식, 부동산 등 자산의 가격은 폭등했다. 그와 함께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가격이 폭등했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투기 광풍은 세대론과 결합하여 청년을 내세우며 투기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주장이 주류 언론과 여야 정치권에서 유통되는 등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다.

 

  누군가가 암호화폐로 내 연수입의 수배, 수십배 이상 벌었다는 소문은 이미 흔한 가십거리가 되었다. 자산가치가 폭등하고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투기 광풍 속에서, 투기에 뛰어들지 않고 평범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불안감과 박탈감을 느끼며 투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암호화폐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가격이 폭등하고 화제가 되는 것일까.

 

 

암호화폐란 무엇인가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블록체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간략하게 설명하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컴퓨터에 데이터를 동시에 복제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중앙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분산된 컴퓨터에 거래 기록을 저장함으로써 국가나 금융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거래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에 대한 간단화한 개념도 (사진=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 [편집자주]

 

  그리고 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거래되는 자칭 화폐가 암호화폐이다. 암호화폐의 발행은 그 종류마다 다르지만, 크게 PoW(작업증명) 방식 혹은 PoS(지분증명)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PoW 방식을 단순화시켜 설명하면, 복잡한 수학 문제를 컴퓨터로 계산하여 채굴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PoS 방식은 보유한 암호화폐의 지분에 따라 새로 발행되는 암호화폐가 지급된다.

 

  그래서 암호화폐는 화폐라고 할 수 없다. 과거에 화폐로 사용되던 금이나 은처럼 장신구나 산업에 활용되는 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현대의 화폐처럼 국가가 그 가치를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수 개발자들에 의해 화폐라고 선언되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들이 종이에 숫자를 쓰고서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새로운 화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oo은행권 1조원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암호화폐는 2009년 비트코인이 등장한지 12년이 흐른 지금도 그 가격이 극단적으로 변동하고, 실질적인 화폐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가치도 없으나, 투기성 거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그 익명성을 활용해 마약, 총기, 폭탄, 아동포르노 등을 거래하거나 자금을 은닉하는 등 범죄에 이용되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이후 도박성 자금이 몰리면서 단기간에 수백 퍼센트 이상 오가는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2017년에 절정을 맞았다. 그러나 그 어떠한 가치도 없이 도박성 자금의 유입만으로 이루어진 가격상승은 영원할 수 없었고, 암호화폐의 가격은 폭락했다.

 

  이후 코로나19 판데믹과 경제위기가 찾아오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례없이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주식, 부동산을 막론하고 자산가치가 폭등한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투기 열풍이 불었고, 그 열풍은 암호화폐에까지 몰려갔다. 주류 금융기관들까지 이 도박판에 뛰어들었고, 암호화폐의 가격은 다시 폭등했다.

 

 

암호화폐 열풍은 도박 열풍이다

 

비트코인 일러스트. 그래픽일 뿐 실제로 저런 동전의 형태를 갖지는 않는다. (사진=로이터) [편집자주]

 

  여전히 암호화폐는 범죄시장 등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어디에서도 화폐로 사용되지 않는다.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을 때에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에도 우리는 국가에서 발행한 화폐를 사용하지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가격이 끊임없이 급등하고 급락하는 이유는 이것이 합법적인 도박이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수억의 돈을 어떠한 처벌도 없이 베팅하고 그 가격이 수시로 변동하면서 수배, 수십배를 따고 잃는다. 부동산이나 주식(기업)은 투기성 거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존재하고 그 쓸모를 갖는다. 아파트는 거주하기 위해 필요하고, 기업은 상품을 생산한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그 어떤 쓸모도 없다. 그저 가격이 오르기에 누군가 구매하고 누군가 구매해서 가격이 오를 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도지코인 사태이다. 도지코인은 암호화폐 열풍을 풍자하기 위해시베 도지라는, 인터넷 농담을 따와 만든 암호화폐이다. 이 암호화폐는 시바견 그림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시바견이 좋아한다고 소개하는 등 대놓고 장난성이 짙은 암호화폐이다. 그런데 이를 일론 머스크(테슬라의 CEO)가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만으로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의 언급에 따라 수많은 코인 도박광들이 도지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1년만에 300배 가량 폭등하며 한 때 100조에 가까운 시가총액을 달성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암호화폐 열풍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암호화폐의 반생태성

 

  암호화폐의 문제는 그 도박성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암호화폐 채굴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채굴기(채굴을 위해 제작/사용된 컴퓨터)가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컴퓨터 부품과 전기가 낭비된다. 현재 비트코인 채굴 작업에 낭비되는 에너지 소비량만 하나의 국가가 소비하는 수준이며, 이더리움 등 다른 암호화폐 채굴에 소비되는 에너지와 채굴기 제작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고려하면 더욱 심각하다.

 

비트코인 채굴기. 사진처럼 고전력 컴퓨터를 여러개 이어붙인 형태이다. (사진=비트마이너팩토리) [편집자주]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이미 진행중이다. 지금도 폭염, 산불, 홍수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빈발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할 시기에 아무런 효용이 없는 암호화폐 채굴에 막대한 에너지가 낭비되는 황당한 상황은 중단되어야 한다.

 

 

탈중앙화?

 

  흔히 암호화폐가 혁신적이라며 제시되는 논지가 탈중앙화 금융, 줄임말로 디파이(De-Fi)’이다.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정부와 같은 중앙 기구 없이 자유롭게 운영되는 금융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와 자본의 허용 없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만약 실현되더라도 극도로 해악적이다.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에서 국가는 미약할지라도 시민사회의 견제와 감시를 받고, 여론의 눈치를 보며 금융 정책이 결정된다. 기업 역시 의무적으로 회계감사를 받고, 주주 구성과 대주주의 주식 매도 등이 공개된다. 자본은 열성적인 탈세 시도와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적게라도 납부한다.

 

  그러나 탈중앙화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적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암호화폐는 누가 얼마나 코인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거래 역시 기록은 되지만 익명성이 보장된다. 탈중앙화 금융의 이상이 현실화된다면 국가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도 없다. 유로화에 종속되었던 그리스가 어떤 파국을 맞았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약소국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자본의 탈세와 부정부패는 감시가 극도로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된다. 더욱이 지금도 암호화폐는 마약류, 총기류, 아동포르노 등의 유통이나 자금 은닉 등 온갖 범죄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암시장은 통제할 수 없이 거대해질 것이고, 기존 권력과 더욱 적극적으로 결합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EU를 비롯한 각국은 익명 송금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암호화폐는 투기자본이 폰지사기와 같은 방식으로 도박에 눈이 먼 개인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이는 탈중앙화와도 거리가 멀다. 정치/경제권력과 유리되어 기술적으로 탈중앙화를 추구한다는 발상은 불가능한 망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