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비단이의 묘생일기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교육원 이모저모>에서! [편집자주] |
묘생 3막 : 인간종 영혼털기
글_ 비단(고양이)
번역_ 조영미(평등사회노동교육원 회원)
보는 순간 영혼을 터는 작고 인형같은 외모만 보고 나를 구매한 사람이 나에 대해 몰랐던 것은 나의 털 빠짐이다. 요샛말로 “털 뿜뿜” 말 그대로 빠지는 수준을 넘어 뿜어 낸다고 해야 맞다. 우리 고양이들은 털이 정말 빽빽촘촘하다. 게다가 나는 나노급으로 가늘고 긴 털을 가진 장모종이다.
나의 첫 집사는 나를 예뻐했지만 내가 움직일때마다 뿜어내는 가늘고 긴 털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그럴때마다 집사가 날 버릴까 두려워 하던 차에 급기야 올것이 왔다. 집사가 나를 더 이상 못 키울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엄마 외에 처음 만나 정을 주고 의지해왔던 사람들에게 버려진다는 것이 서럽고 두려웠다. 다행히 집사는 나를 버리지 않고 다른 가정에 입양을 시키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고 마침 반려동물 입양을 생각중이던 지금의 집사를 만났다.
집사는 내가 입양 갈 새로운 집사를 소개해준 집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낯설고 무서웠다. 난 최대한 구석지고 어두운 침대밑에 들어가 숨어 덜덜 떨었다. 그들이 구석으로 숨어든 날 잡으려고 낮은 포복 자세로 다가올 때 내 나름대로 송곳니를 보이며 하악질도 해보고 발톱도 세워 봤지만 그들이 날 그닥 무서워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되려 “어쭈~ 쪼끄만게...”라며 귀엽다는 듯 비웃었다.
고양이 자존심에 처음보는 사람한테 가서 뎅구르르 할 수는 없고, 하루종일 침대밑에 숨어 있다보니 소변도 마렵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그렇다고 오줌을 아무데나 싸는 건 고양이의 수치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밤이 되 저 인간들이 잠이 들때까지 참고 또 참았다.
드디어 모두가 잠든 밤, 살짝 나와 급한 볼일을 봤다. 다행히 나를 위해 물과 캔과 내가 쓰던 모래 화장실을 놓아두었다. 나의 행동은 신중하고도 치밀하다. 엄마에게 배운대로 모래로 배설물을 덮어 냄새가 나가지 않도록 했다. 내 밥그릇에는 내가 좋아하던 간식도 놓여있었다. 엄마는 낯선 사람이 주는 건 아무거나 먹지 말라고 했지만 배가 너무 고파 경계심이고 자존심이고 일단 먹었다. (핧짝핧짝... 아~ 맛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이 이런 것인가... ㅠ_ㅠ )
모두 잠든 밤, 나는 혼자 살금살금 여기저기 탐색했다. 탐색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에 나는 본능이 시키는대로 했다. 난 작고 귀엽지만 야행성 맹수답게 어둠속에서도 다 보이도록 눈에서 푸른 빛이 발사된다. 나비처럼 가벼운 발걸음과 낮은 포복자세의 신중한 동작은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다. 대략 탐색을 마치고 다시 침대밑으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부쳤다.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살짝 잠이 들었다. 엄마 꿈을 꿨다. 엄마는 나를 포근하게 안아줬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품에 몸을 부비며 “엄마~”하고 불러보았다.
그때 갑자기 스피커를 귀에 댄 듯 “엄마~아~” 하는 고함 소리에 깜짝놀래 잠이갰다. 내가 꿈결에 부른 소린가? (설마 그럴리가....) 역시나 그 집 딸래미가 자기 엄마 부르는 소리였다. 내가 숨어있는 침대의 주인은 그 집 딸내미였다. 그녀는 침대위에서 잠이 덜 깬 얼굴을 거꾸로 한 채 침대 밑의 나를 쳐다보았다. (아~C 깜놀! ) 긴 생머리가 거꾸로 늘어져 마치 영화 <링>에서 나오는 귀신 본 줄~~
나를 거꾸로 쳐다보던 그녀는 내가 먹은 밥그릇과 모래 화장실을 보더니 온 가족이 다 깨도록 호들갑떨며 소리쳤다. “애가 밥도 먹고 똥도 쌌어” 나~ 참 어이가 없다. 그게 그렇게 놀랍고 신기할 일인가? (그런데 이들은 아직 모른다. 이 신기한 일이 바로 자신들을 평생 노예노동을 하게 될 바로 그 일인 것임을!) 그 가족들은 나의 생존 행동이 대견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대소변을 지정된 장소에 누고 모래로 덮는 뒤처리까지 할 줄 알지만 인간의 새끼(?)들은 소변은 60개월 대변은 36개월정도가 지나야 비로소 자기 의지로 지정된 장소에 눌 수 있다니 400g도 안되는 조막만한 내가 한 일이 그들의 시각에서는 대견해 할만도 하다.
그 집의 아들과 딸, 아빠와 엄마, 할머니까지 아침에 눈뜨자 마자 나를 보러왔다. 그들의 눈빛이 나를 예뻐하는 것 같이 느껴져 안심이 되었고 난 보답으로 내 필살기를 하나 둘 그들 앞에 풀어놓았다. 짧은 다리로 폴짝폴짝 뛰기, 귀여운 척 괜히 혼자 구르기, 호날두 식 축구하기, 살금살금 다가가 냄새 맡기 등... 이런 내 모습에 모든 식구들이 눈을 못 뗐고 내 자신 스스로도 나의 완벽한 무대 장악력에 내심 놀라웠다. 내가 은근슬쩍 앞발을 들어 살짝 터치를 해줬을 뿐인데 그 터치 한번으로 그 집 딸래미는 이미 나한테 영혼을 털려버렸다. 내가 그렇게 그들의 영혼을 홀리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을 때 드디어 그들이 왔다. 바로 나를 입양해갈 사람들이다.
"새 이름 비단", 오늘부터 1일
나중에 엄마집사가 된 여자는 나를 보더니 “귀엽네” 라고했다. 난 살짝 기분이 상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남녀노소 불문 모두 나를 보는 순간 “오또캐 오또캐”를 연발하며 “너~~무 이쁘다” 뭐... 이런 호들갑 정도는 기본이었는데 이 여자는 까칠하게 툭 “귀엽네” 라고? 그게 다야? 레알? 그래? 오호! 이 분 밀당 좀 해본 솜씬데... “그래 두고 보자” 하고 일단 넘어갔다. 이후 아빠집사가 된 그 자는 나를 보는 순간 게임 끝났다. 그는 나를 보고 1초도 안 돼 나에게 빠졌음을... 빠른 영혼 가출로 인해 헤~ 하고 벌어진 맹구같은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내 이름까지 미리 지어왔다고 했다. 그 이름이 바로 “비단”이다. (사실 전 이름은 체리였다. 눈동자는 초록이고 털은 하얀데 쌩뚱맞게 체리가 뭐야.... 싶어 체리라고 불릴때마다 체할 것 같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내 털이 비단결 같아 비단이라고 지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티비 드라마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고 조금 실망했지만 뭐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 이름이라는게 주민등록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들이 날 부르는 부호같은 거니까.
그날 그렇게 첫 대면이 끝나고 그들과 함께 인천으로 왔다. 생애 처음 장거리 이동이라 멀미가 나서 토할 것 같고 어지러워 냥고생을 했다.
그들은 나를 데려다 놓고 내가 쓰던 물건들을 여기저기 늘어놓았다. 나도 “음~ 여기가 내가 살 집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슬슬 탐색을 시작했다. 남자집사는 집에 와서도 나를 보는 눈에서는 연실 꿀이 떨어져나왔고 내 눈높이에 맞춰 나를 쫓아다니느라 네발로 기어다녔다. 여자집사는 그런 남자집사 뒤통수에 대고 내가 오기전부터 기 합의된 듯한 교섭결과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밥주기, 밥그릇 닦기, 똥치우고 모래 갈아주기, 목욕시키기, 발톱 깎기, 놀아주기. 집안에 털이 날아다니지 않도록 매일매일 청소하기 ..등등 약속 잘 지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두 가지를 알아차렸다. 하나는 이 집의 서열은 저 여자 -> 나 -> 저 남자 순이라는 것과 여자집사가 합의내용을 큰 소리로 강조하며 읊어대는 것을 보아 아마도 저 합의사항은 분명히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인간종의 가족으로 재구성되고 인생 3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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