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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비단이의 묘생일기 _(4) 밥 주걱과 똥 주걱 : 짜릿한 존재감

힘들어서 쓰러져가는 와중에도 비단이를 보며 기운을 차리고 있는 편집자입니다. 왜 쓰러져가는지는 <교육원 이모저모>에서 알아보아요! [편집자주]

 

밥 주걱과 똥 주걱 : 짜릿한 존재감

 

글_ 비단(고양이)

번역_ 조영미(평등사회노동교육원 회원)

 

  집사들이 가족모임에 간다고 분주하다. 나를 가족 모임에 데려간단다. 하긴 나도 이제 어엿한 가족이니, 가족모임에 가는 건 당연하다. 나는 아직 꼬꼬마로 600g도 안되는 조막만하지만 내가 이동하려면 챙겨야 할게 많다물그릇 밥그릇에 장난감도 챙기고 사료와 간식, 모래와 화장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크나큰 사건이 될 내 똥을 치우는 '똥주걱'까지 내 짐이 차 트렁크를 가득 가득 채웠다.

 

  집사네가 나를 입양했다고 하니 다른 가족들이 나를 보고 싶다고 데려오라고 한 모양이다. 4형제가 모여서는, 그들은 만나자마자 "어디보자~어디보자~"를 반복하며 나를 찾았다. 난 이동장 안에 있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니 동물원 원숭이가 된 심정이었다(ㅠㅠ) 어른들은 "아이고 이쁘네" 하며 칭찬하고, 아이들은 엄청 흥분하면서 환호했다. 저 인간 어린이들이 날 마구 들어올리고 주무르면 어쩌나 살짝 긴장되기도 했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고양이답게 새침 떨며 예쁜척 모드를 유지했다. 숙소에 들어오니 집사가 이동장 문을 열어주었지만 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저들 손에 잡혀 공중으로 번쩍 들어올려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기분 나쁜 일이다.

 

  아이들 중엔 내가 인천으로 오기 전 하루 밤 묵었던 그 침대의 주인공도 있었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나를 가운데 놓고 장난감 낚시 줄을 흔들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어처구니 없는 합리화를 해가며 나의 필살기를 발휘했고, 완벽한 무대 장악력을 과시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낚아채는 공중곡예를 선보이고 호날두 뺨 치는 축구실력도 뽐냈다. 날렵하고도 우아한 점프실력으로 1m넘는 높이까지 가뿐하게 뛰어오를 수도 있다.

 

이제는 품위가 올라간 보리의 꺠알 애교 [편집자주]

 

  식사를 위한 밥상이 차려지고 그들은 그 병원 냄새 나는 초록병 액체도 마셔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난 잠시 쉴 수 있었다. (~~ 하얗게 불타웠다냥) 급격히 피곤이 몰려왔다. 장시간 이동에 멀미도 했고 낯선사람들 앞에 시달렸으니 몸이 녹초가 됐다. 집사가 들고 온 내 방석위에 올라가 잠시 눈을 부쳤다아빠집사는 초록병 액체를 마시느라 바빴지만 엄마집사는 5초에 한 번씩 나를 쳐다봐가며 티 안나게 나에게 집중하고 살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형제 중 우리 가족이 인원수가 제일 적어서 주방 옆에 있는 작은 방을 배정받았다. 그 방에 티비와 전기밥솥이 놓여있는 가구가 있었고 아빠집사는 그 가구 옆쪽에 내 모래 화장실을 놓아두었다.

 

사단은 아침에 일어났다. 우리 엄마집사 아빠집사는 초록색 병 액체를 너무 많이 마셔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큰 언니라는 사람은 "숙취로 다들 속이 깔깔할테니 어제 먹고 남은 밥을 누릉지로 만들어 끓여 먹자"며 밥솥이 있는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였다. 그녀가 밥을 뜨려는 그 순간... 난 차마 보면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 .. 그건.... ..... 돼요!!!!" 라고 소리칠 새도 없이 '그것'은 그녀의 손에 쥐어졌고, 이미 밥솥 안으로 들어가 밥을 떠 올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햐얀 쌀밥은 프라이팬 위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누릉지로 변신해갔고, 골고루 노릇노릇해지라고 그것으로 밥을 구석구석 꼭꼭 눌러가며 만들었다. 밥은 그녀의 능숙한 솜씨로 금새 고소하고 부드러운 누릉지로 재탄생했고 푹 끓인 구수한 누릉지는 육식동물인 나에게도 맛있는 냄새로 느껴졌다. 그들은 쌀이 좋아서 그런가 누릉지가 유난히 맛있다며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밥상에 둘러앉아 한 냄비를 전부 비웠다. 그렇게 아침식사가 끝나고 디져트로 과일과 차까지 나눠마시며 평화롭게 나의 필살기 공연을 재차 관람했다. 난 재주를 부리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이 평화를 깨지 마옵소서..."

 

범죄현장에서 딱 걸린 보리. 현장 검거 됨. [번역자주]

 

  가족들은 슬슬 돌아갈 채비를 했다. 우리 집사들은 내 짐을 챙겼고 나는 폭탄이 언제 터질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빠집사는 나를 이동장에 다시 넣고 내 짐을 챙겨 차안에 넣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으련만 의외로 꼼꼼한 우리 엄마집사는 몸에 밴 업무 스타일로 방과 주방 거실을 차례로 스캔해가며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최종 확인했다. 엄마집사가 주방으로 가서 씽크대를 스캔하는 순간 "어? 이게 왜 여기있지" 하며 그것을 집어들었고, 1초 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표정이 살짝 스쳤지만 그것은 이미 엄마집사의 손에 들려진 후였다.

 

  모든 가족의 눈이 엄마집사 손에 든 물건으로 쏠렸다. "그게 뭔데?" 가족들은 의문과 불안과 불길한 예감이 범벅이 된 표정으로 빨리 말해달라고 소리없는 눈빛으로 외치고 있었다. 난 몇 초 후 일어날 사태에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비단이 똥 푸는 주걱인데 이게 왜 수저통에 꽃혀 있냐구"

"? 그거 밥주걱 아녔어? 난 밥주걱인 줄 알고 그걸로 밥 푸고 누릉지도 만들었는데"

"아아악~뭐라구!!!!!"

 

  갑자기 가족들은 모두가 동시에 한쪽 손을 가슴쯤에 대고 속이 메스꺼운 듯 집단 구토를 할 판이었다. 난 내가 잘못한게 하나도 없는데도 괜히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미안했다. 아빠집사는 아침에 일어나 내 똥주걱이 없어져 나뭇가지로 똥을 골라냈다고 했다. 큰 언니는 "아니 밥솥 옆에 있길래 당연히 밥주걱인줄 알았지" 라며 황당해했다. 그녀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럴법도 하다.

 

  엄마집사는 속이 메스꺼운 집단 병리증세를 보이는 가족들에게 쿨하게 한마디 했다. "괜찮아 안죽어! 니들 똥보다 비단이 똥이 훨씬 깨끗하거든! 얘는 사료만 먹고 방안에서만 살아!" 난 그렇게 말해주는 엄마집사가 너무 멋있고 고마웠다. 엄마집사는 평소에도 자신이 잘못한 건 알지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어려운 "과도한 자기중심형" 인간, 쉽게말해 "뻔뻔한" 유형인데 그 성격이 이렇게 빛날 줄이야. 사실 밥주걱과 내 똥 푸는 주걱은 그 모양새가 흡사하다.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밥 솥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그 물건을 당연히 밥주걱이라고 생각하지 똥푸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생기긴 했다.

 

좌=밥주걱, 우=똥주걱 [편집자주]

 

  그렇게 그 가족들과의 강렬하고 엽기적인,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덕분에 가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 꼬박꼬박 내 안부까지도 잊지 않고 물어봐 주는 존재감으로 각인됐다. 후에 들은 얘긴데 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구충제를 한주먹씩 먹었다고 한다. 불필요한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의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뭐... 7년이 지난 지금껏 그들 모두 건강하게 잘 사는 걸 보면 엄마 집사 말대로 그들 똥보다 내 똥이 냄새는 훨씬 지독해도 덜 더럽긴 한 모양이다.

 

냉장고 위를 자유자재로 넘어다니는 뚱냥이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