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해 달려가는 <비단의의 묘생일기>입니다! [편집자주] |
나는 집사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인가?
글_ 비단(고양이)
번역_ 조영미(평등사회노동교육원 회원)
몸 길이 40cm, 몸무게 4kg인 내게 필요한 건 하루에 종이컵 반 컵정도의 사료와 약간의 물이다. 간식은 너무 맛있지만 생존에 필수는 아니고, 영구적 털옷을 입고 있으니 옷도 필요없다. 그런데 우리집 두 집사들은 내가 이집에 온 날 밤부터 물 만난 듯 인터넷 쇼핑을 해댔고, 고양이 용품은 나날이 늘어 집안을 잠식해 들어갔다. 거실과 방에 하도 늘어놓아서 나 쓰라고 놓은 거지만 내가 다 걸리적거릴 판이다. 난 그런게 필요하다고 단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집사들이 사들이는 얄궂은 꽃방석이나 고급진 라틴바구니보다 재활용쓰레기로 버리려고 내놓은 택배박스가 훨씬 더 좋다. 둥근모양 사각모양 높은거 낮은거 분홍색 파랑색 갖가지 밥그릇을 사들이지만 난 딱 하나면 된다. 내가 인간들처럼 여러 가지 반찬놓고 먹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사고 또 산다. 고양이 입장에서 볼 때 인간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계속 사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뭘 샀는지 모르거나, 왜 사는지 모르거나. 쯧쯧..
더 웃긴 건 그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때까지 힘든 노동을 하는 거다. 인간들은 여러모로 이해 불가한 종이다. 당장 먹지도 않을 불필요한 먹잇감을 들여놓고, 그걸 보존하느라 냉장고를 사고 전기를 쓰고 입지도 않을 옷들이 가득차 옷장이 미어터지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며 또 산다.
인간들은 대략 20대 초반부터 병들거나 늙어서 몸을 쓰지 못할 때 까지 죽도록 노예처럼 일한다. 우리 집사들도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억지로 잠이 깨 좀비처럼 출근한다. 난 그들이 그렇게 일해야만 하루하루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살 수 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사들은 먹이감을 사와도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다. 먹는 것보다 버리는데 더 의미를 두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다. 버리는것도 바로 안 버리고 꼭 냉장고에 며칠씩 묵혀두었다 버린다. 버리는 것도 전기를 더 쓰고 자원을 낭비해가며 음식을 상하게 만든 다음에 버려야 더 재밌나보다.
옷도 입기위해 사는게 아니고 옷장에 넣어두기 위해 사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년동안 한번도 입지않을 옷들을 옷장 가득 전시해둘 이유가 없다. 생존할만 큼만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며 인생을 즐기는 나로서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들도 꼭 필요한 양 만큼의 먹이와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물건만을 사는 정도면 지금하는 일의 1/3만 일해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불필요한 소비를 위해 2배 3배 많은 노동을 하며 노예처럼 인생을 허비하다니.
필요없는 물건을 더 많이 만들려고 경쟁적으로 공장을 돌리고, 필요없는 물건을 더 많이 사서 더 많이 쌓아 뒀다 버리는 것을 반복해 지구를 파괴하고 온도를 높여 약 9년뒤면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번뿐인 인생은 우주를 사유하고 자연을 탐구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인간들은 왜 저러고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난 이 집사들하고 살면서 고양이로서의 내 고급 스킬을 아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산다. 집사들이 필요한 만큼만 간식을 사다 놓으면 아껴서 줄텐데 잔뜩 사다 쟁여놓으니 너무 쉽게 간식을 내어준다. 나도 필살기 스킬을 높여가며, 밀당도 해가며 먹이를 얻어내야 결국 내가 이겼구나 하는 성취감 같은게 있을 텐데 이 인간들은 아주 기초적인 기술만으로도 껌벅 넘어가는 것도 문제다.
나한테도 엄연히 기호라는게 있는데 집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이것 저것을 사들여 늘어놓는다. 창고는 이미 고양이 용품점과 고양이 식료품점을 방불케할 정도로 꽉찼다. 이건 누가봐도 나를 사랑해서, 날 위해 사는게 아닌 날 핑계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는 거다. 그러니 나중에 나를 위해 어찌어찌 했는데.. 따위의 신파는 통하지 않는다.
오늘도 택배가 왔다. 당연히 내가 가장 먼저 달려나가 택배상자를 검열했다. 나는 냄새를 킁킁 맡아보며 구석구석 탐색한다. 내가 먼저 탐색하기 전에 집사가 택배사자를 개봉하는건 반칙이다. 택배상자는 큰거 하나 작은거 하나다. 큰거는 상자 모서리가 찌그러진 상태로 보아 택배기사님이 상자를 패대기를 친게 확실하다. 고양이 모래 6개 묶음을 주문했으니 그 무게가 20kg가까이 된다. 안그래도 노동강도가 심해 과로사하는 택배기사님들이 속출하고 있다는데 무거운 택배상자를 패대기친 기사님 심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애절한 눈빛을 발사하며 집사 발목에 내 목덜미를 쓱 부비고 지나가는 것 두번으로 맛난 츄르를 얻어먹었고 언제 그랬나는 듯 쿨하게 내자리로 돌아와 그루밍에 집중했다. 그런 내 모습에 어이없어하는 집사 표정을 힐끗 처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 좋다고 꼬리 흔들고 계속 치근대면 그게 강아지지 고양이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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