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미국 아마존 물류창고의 노조설립 투쟁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아마존의 눈물은 언제 멎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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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인
책방 들락날락 운영위원
탄압의 벽을 넘지 못하다
투표가 시작되자 아마존은 복도와 화장실마다 반노조 홍보물을 부착하고, 노동자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노조에 반대하는 문자를 보냈다. 회사는 노조가 설립되면 물류창고가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노조가 생기면 조합비만 뜯어갈 뿐이라고 선전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반노조 교육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지만, 노조 활동가들은 작업장에 들어가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일반 노동자들과 접촉이 차단된 활동가들은 물류창고 출입문 앞 횡단보도에서 선전전을 벌이며 신호를 기다리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조를 홍보했다. 그러자 아마존은 당국에 압력을 넣어 신호등 점등신호를 빨리 바꾸게 만들어버렸다. 노조 파괴에 공공시설마저 마음대로 활용하는 아마존의 권능은 물류창고 주차장에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우체통으로 단적으로 드러났다.
투표기간이 시작되기 직전, 아마존이 투표소를 만들려고 했던 주차장에 밤사이 우체통이 설치되었다. 회사는 이 우체통 주위에 투표소처럼 천막을 치고 “여기서 우편투표를 하라! (Mail your ballot here)”고 써 놓았다. 그리고 반대표를 찍어서 이 우체통에서 부치라고 노동자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우편투표가 시작되고 이틀 사이에 대량의 반대표가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존이 우정공사(USPS)에 메일을 보내 우체통 설치를 압박했다는 사실은 투표가 끝나고 난 이후에야 밝혀졌다. 결국 4월 8일과 9일 양일간 진행된 개표 결과, 전체 5805명 가운데 3,215명이 투표에 참여했지만, 1798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찬성표는 738표에 불과했다. 사측의 제기로 무효표 처리된 찬성표가 400표정도 있어서, 실제로는 노조 설립에 찬성한 노동자는 11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개표 이후, 노조는 아마존이 현장에 우체통을 만들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직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국가노동관계위에 이의를 신청했다. 아마존은 우정공사 직원만 우체통을 열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과정에서 아마존 경비원이 우체통을 여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등장했다. 국가노동관계위는 4개월 가까운 심의 끝에 결국 재투표를 권고했다.
노조 투표는 왜 실패했을까?
베서머 노조 캠페인은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서 개표상황을 실시간 중계할 정도로 큰 주목을 끌며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통령과 유명인사들은 물론, 공화당 유력 정치인까지 노조를 지지했다.
그런데도 노조 투표는 왜 실패한 것일까? 아마존의 지독한 노조 탄압과 우체통 같은 술수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아마존이 진출한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 노조가 만들어진 사례를 볼 때, 미국의 불리한 노동제도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노조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노조는 호별 방문이나,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집회, 현장노동자들의 공개적인 지지표명 활동을 조직하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코로나 19 상황이나 해고 위험 등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노조가 현장에서 너무 소극적으로 활동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노조는 베서머 주민과 물류창고 노동자들 대부분이 아프리카계라는 데 착안하여 작년 미국을 휩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썼다.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마존의 임금 및 복지 수준이 타 사업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하는 일반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지 설득하는 데는 실패한 걸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들 처해 있는 불안정성 자체에 있는 것 같다. 노조 캠페인을 주관한 노조 담당자는 아마존 같은 사업장은 이직률이 100%에 가깝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장과 다르며, 노조 활동에 참여하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큰 난관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베서머에서 보았듯이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풀타임 노동자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풀타임 노동자들조차 평균 근속기간은 채 1년이 안 된다. 이런 작업장의 불안정성은 노조를 건설하고 안착시키는데 강력한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베서머가 보여준 가능성
아마존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 일반이 겪고 있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수천 명이 일하는 물류창고나 대형마트는 그나마 조건이 나은 편이지만, 노조운동은 이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부상하고 있는 플랫폼 산업은 AI 같은 기술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더욱 불안정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불안정성이 빚어내는 노조하기의 어려움은 베서머의 노조 캠페인에서처럼 현장노동자들의 직접적인 힘을 끌어내는 방식보다 여론전에 중점을 두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노조를 빨리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조급함은 블라인드 교섭 같은 잘못된 관행으로 결과할 때도 있다. 신규 조직화보다 기존 조직의 유지나 더 조직하기 쉬운 곳에 집중해야한다는 생각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 쉽지는 않지만 불안정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베서머 물류창고의 노조 캠페인은 아무 것도 없는 조건에서 10여 명의 활동가와 1000명이 넘는 지지 세력을 만들어 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불리하게 된 운동장에서 이런 불만과 저항의 행동을 지속시켜 나갈 방법에 대한 더욱 치열한 고민과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이 글은 책방 들락날락 블로그에 게시된 <아마존 물류창고 노조 설립은 왜 실패했을까?>라는 글을 축약 및 재구성한 글입니다. 더욱 자세하게 보고 싶으면 그 글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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