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역정당운동을 하시는 윤현식 선생님의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지역정당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반론과 기고 언제나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모색, 지역정당!
윤현식
지역정당네트워크 정책위원
‘지역’과 ‘현장’은 모든 운동의 고향이다.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운동의 출발과 지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현장과 지역은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으로 의식의 귀결처이다.
발 딛고 있는 곳을 떠난 운동은 관념의 유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운동이든 현장과 지역을 강조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노동운동이 그렇고 노동정치가 그렇다. 적대가 시작되는 그곳에서 운동과 정치는 싹을 틔운다. 그리고 그곳에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게 되며, 결국 바로 그 자리에서 승패우열이 갈리게 된다. 결국, 지역과 현장은 처음이자 끝이다.
노동정치의 근원, 지역과 현장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과연 지역과 현장은 존재의 근거로서 지지되고 있는가? 혹은 관념의 소비를 위한 추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의구심은 노동정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더욱 깊어져 간다. 노동정치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지역과 현장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노동정치가 지역과 현장을 디디고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중심적인 정치적 사회적 대안체제의 제시와 그 실천을 위한 운동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 조건은 지역과 현장을 떠나서는 결코 형성될 수 없다. 그렇다면 노동정치의 방향은 지역과 현장을 강화하고 그 자리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완수하고 노동중심적 대안을 구체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방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정당운동이다. 실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앞에 두고 결성되었던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존재하는 진보정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기여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게다가 2008년 이래 진보정당들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제시된 명분이 지역과 현장이었지만, 이후에 보여준 행태는 명분에 걸맞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정당운동 노선에 편중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통령선거에 밀려난 지방선거, 함께 밀려난 지역과 현장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회피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다. 제도정치권을 일체 부정할 수 없다면, 대리인정치를 극복하고 직접정치를 통해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건 마땅히 해야 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환이다. 그런데 대선과 총선에 얽매인 정당운동에서 지역과 현장은 수시로 변방으로 밀려난다. 지방선거조차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하면서 그 안에서 지역과 현장은 장식물 이상의 의의를 갖지 못한다.
정당만이 아니다. 지난 12월 1일 민주노총은 대선방침을 공지했다. 강고한 투쟁의 결기가 무색하게도, 실상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선뜻 와닿질 않는다. 총 6개 항으로 이루어진 이 방침에서 특히 5번 항목은 보는 이의 기를 뺀다. 그 내용은 이렇다.
“2022년 지방선거 방침은 대선방침을 준용하되 선출 정수 내의 복수후보 선출 선거에 한해서는 복수의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방침은 없어도 된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의 방침이라기엔 허무할 지경이다. 민주노총의 목표 중 하나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의제에 비추어볼 때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 방침은 말 그대로 대선방침일 뿐이고, 지방선거는 그냥 곁가지로 언급되었을 뿐이다. 여기엔 지역과 현장이 소거되어 있다.
정당법, 60년간 이어진 군사독재의 그늘
그동안 우리에겐 중앙정치만이 정치라는 착각이 강요되어왔다. 또한 중앙정치를 목적으로 하는 전국정당만이 정당의 유일한 형식인 것처럼 도식화되어 있었다. 박정희 쿠데타 이래 지금까지 우리에겐 이 이외의 정치, 또 다른 형태의 정당을 경험이 허용되지 않았다. 쿠데타의 직계들은 이 구조 속에서 기득권을 누려왔다. 동시에 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고 자처하는 민주당계 정치인들 역시 이 구조 덕분에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다. 즉 중앙정치만이 유일한 정치이며, 전국정당만이 당연한 정당의 형태라는 인식 속에서 보수 양당의 독점이 고착된 것이다.
보수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구조에서 지역과 현장을 이야기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다른 정당들 역시 보수양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국정당의 형식과 중앙정치라는 내용에 치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62년 출현한 정당법 체계에서 한치도 못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폐해의 누적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반민주적 구조의 탈피만이 지역과 현장이 본연의 정치무대로 등장하게 만드는 전환이 될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풍성한 자양분의 공급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지역과 현장에 착근한 정당운동을 필요로 한다. 그 정당운동이 바로 지역정당 운동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거점, 지역정당
지역정당은 기존 정치구조에 익숙한 이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개념을 아는 사람도 그 실체를 그려내긴 어렵다. 지역정당은 한정된 지역의 범위 안에서 지역 주민 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당원이 되어 지역의 현안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정당이다. 지역정당은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 등 전국단위의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부차적 목적으로 한다. 주로 지역정당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기초 또는 광역 단체의 장이나 의원의 선거에 후보를 내고 정치활동을 하게 된다.
지역정당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정당형태이다. 민주국가로 인정되는 국가들 중 지역정당이 없는 곳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는 지역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정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정당법 때문이다. 박정희 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정당이 아예 싹도 틔우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지역과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주체의 등장과 이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대안의 형성은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중앙정치와 전국정당에 매몰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특히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현실적이고 위력적인 정치방침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역정당을 거점으로 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은 여러 정당들의 이해관계를 포괄하면서 실행이 가능하다. 현재의 민주노총은 산재해 있는 진보정당들 사이에서 실효성도 없는 ‘진보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상 어떤 위력적인 정치방침도 내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교착상태를 돌파해야만 한다. 그 돌파의 가능성이 지역정당에 있다.
노동정치, 지역정당을 통한 지역의 변화로부터
도대체 그 이름조차 생소한 지역정당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법상 지역정당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창당한 ‘직접행동영등포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직접행동영등포당은 합법정당으로 활동하고자 선관위에 등록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정당법에 지역정당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직접행동영등포당은 11월 30일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한국 최초의 지역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한 법정투쟁에 돌입했다.
영등포당 창당 이후 여러 지역에서 지역정당 창당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주로 주민들의 자치조직을 중심으로 지역정당 창당이 주도되고 있고, 아직까지 노동조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지역정당의 움직임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조직노동자들의 사업장과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거주지역이 겹치는 곳에서 지역정당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의 참여와 실천과 연대로 해당 지역의 보수정치에 맞서 노동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가시적인 지역적 성과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러한 모범이 연속되고 누적되면 바로 거기에서 전체 사회를 바꾸어 나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2022년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직전의 대통령선거로 인해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3월 9일에 대선이 끝나면 5월 10일 대통령 취임까지 이 나라의 모든 눈과 귀는 대선에 쏠리게 된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일정의 촉박함은 지역과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선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긴박함을 빌미로 노동정치의 모든 역량을 대선에 올인해서는 안 된다. 관성처럼 노동정치는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단일화나 진보대단결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당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주장은 당분간 신기루를 쫓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 어떤 유의미한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모적 몰방을 해마다 되풀이할 이유가 있는가?
대선에 쏟아 붓는 공력의 100분의 1만 지역정당 운동을 돌린다면, 적어도 대선에서 거두지 못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불과 몇 년 안에 일정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직접행동영등포당을 필두로 앞으로 만들어지게 될 지역정당들은 등록정당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정당들은 그 안에서 비로소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일정한 역할을 할 노동자 대표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의 정당들이 지역과 현장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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