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 쉬고 돌아온 <노동인문학>입니다. [편집자주] |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루소의 평등주의
인류 역사에서 평등사상을 맨 처음 정립한 사람은 누구일까?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후보자들을 꼽아보자면 인도의 석가모니, 중국의 묵자, 이스라엘의 예수 등등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2천~3천년쯤 전에 활동했던 고대 사상가들이다. 당장 그들의 삶과 사상을 추적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자제하고, 여기서는 관심의 초점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출발점으로 옮겨보기로 하자.
근대 역사에서 평등사상을 맨 처음 정립한 사람은 누구일까?
루소 전에 누가 있었을까? 나로서는 아직까지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루소를 첫 사상가로 꼽기로 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을 통하여 루소는 평등주의 사상의 불씨를 심었다.
루소의 평등사상은 널리 인민대중의 가슴을 사로잡았으며, 곧 물질적인 힘으로 전환되었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돌진한 프랑스 인민대중은 늘 삼색 깃발을 펄럭였다.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은 각각 자유, 평등, 연대를 뜻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프랑스 대혁명 전에도 인민대중의 봉기는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그전까지 인민대중이 봉기의 깃발에 ‘평등’이라는 요구를 선명하게 새겨 넣었던 적이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프랑스 대혁명을 ‘최초의 평등주의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루소는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 못했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전반기 프랑스는 여전히 극단적인 절대군주제가 지배하던 시대였으며,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선두에서 이끌고 있던 진보적 정치세력의 최대강령은 ‘자유’였다. 인민대중의 보통선거권은 아직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아직 꿈으로도 나타나기 전이었다.
그런 시대에 루소는 자유주의 세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평등주의 세상을 꿈꾸었고, 그것에 ‘공화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화국’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널리 사용되어온 매우 오래된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사용하여 루소가 그렸던 그림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인민대중의 보통선거를 주창했다. 공화국은 인민대중을 주권자로 삼고, 보통선거를 통하여 설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소가 볼 때, 보통선거를 통하지 않고는 만인의 자유를 넘어서서 만인의 평등까지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프랑스 인민대중은 루소의 주장에 공감하였고, 1789년 대혁명을 통하여 봉건군주제를 무너뜨린 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보통선거를 통한 국가 건설로 나아갔다. 1792년에 설립된 프랑스 제1공화국이다.
왜 루소는 자유주의자들과 갈라섰을까?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평생토록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데 왜?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지금부터 루소를 아담 스미스와 잠깐 비교해보자.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루소는 프랑스 사람이고 스미스는 영국 사람이지만,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다. 루소는 주로 정치를 연구하였고, 스미스는 주로 경제를 연구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철학자였다. 그리고 철학자답게 ‘인간의 자연상태’, 즉 ‘인간의 본성’을 각각 자기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도 동일했다. ‘개인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식’에 대하여 연구한 것이다. 루소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통찰하였고, 스미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연구했다는 점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이런 공통점이 두 사람의 차이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유주의 사상과 평등주의 사상의 차이점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야기는 자연상태 인간들의 교류에서 시작된다.
자연상태에서 인간들은 그들의 본성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면서,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교류의 즐거움을 누렸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11쪽)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들 사이의 교류는 노동 및 생산물의 교환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교류의 발전은 분업의 발전으로 나타난다.
인간들에게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분업은 인간성의 어떤 자연적 성향으로부터, 비록 매우 느리고 점진적이긴 했지만, 필연적으로 생겨난 자연적 결과이다. 그 성향이란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이다. … 이 성향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이지만, 기타 동물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스미스, 국부론, 19쪽)
‘저마다 서로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교류의 즐거움을 누리는 상태’, 바로 이 상태를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가장 어울리는 상태라고 보았으며,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았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개인인 동시에 사회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이런 존재조건 속에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상태는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교류의 즐거움을 누리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아마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자유주의와 평등주의 사이의 차이는 그 다음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인간이 독립의 즐거움과 교류의 즐거움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을까?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답게 분업의 발전에서 교류의 즐거움을 찾아냈다. 분업을 통한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인류의 공동재산의 양’을 증가시키게 되고, 개인들은 이처럼 증가된 공동재산 중 ‘저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매’할 수 있게 되므로, 그 만큼 교류의 즐거움도 증가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노동생산력의 매우 큰 향상, 그리고 숙련, 기교, 판단력의 대부분은 분업의 결과로 보인다. … 분업은 모든 업종에서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킨다. 상이한 업종들과 직업들의 분화는 이러한 이익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 동물들은 비록 동일한 유(類)에 속하더라도 서로에게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맹견의 힘은 사냥개의 민첩함, 애완견의 총명함, 또는 목축견의 유순함에 의해서 조금도 보완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이한 자질과 재능의 성과는 교환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공동재산으로 될 수 없으며, 유적(類的) 존재의 생존 조건 향상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저마다 독립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탱하고 보호해야 하며, 자연이 그들에게 제공한 다양한 재능으로부터 상호간에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인간들 사이에서는 차이가 가장 큰 재능들이 오히려 상호간에 가장 유용하며, 서로 다른 재능에 의해 생산된 상이한 생산물들은 거래하고 교환하는 보편적인 인간성향에 의해서 공동재산이 되며, 이 공동재산에서 각자는 타인 재능의 생산물들 중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구매할 수 있다.
(스미스, 국부론, 13, 14, 24쪽)
아담 스미스, 국부론, 김수행 역, 동아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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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이 중세 봉건주의 사회질서에 맞서서 투쟁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봉건주의 질서는 교환과 분업의 자유를 구속하는 멍에로 작동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교류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길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처럼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떨치고 일어섰으며, 폭력혁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그것이 청교도혁명으로 터져나와서 명예혁명으로 이어졌다.
자유주의자들은 맹렬한 투쟁을 통하여 마침내 중세 봉건주의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의 이런 역사적 성과가 없었더라면 아마 18세기 루소의 평등사상도, 그에 이어지는 19세기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도 생겨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루소와 평등주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한계도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다.
봉건주의에 맞서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내다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바로 여기서 자유주의자들의 한계가 생겨난다. 그들이 신봉한 자유는 ‘이기적인 자유’였으며, 그들이 내다버린 아기의 이름은 ‘인간성’이었다.
동물은 성숙하면 완전히 독립하며, 자연상태에서는 다른 동물들의 원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동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을 오로지 동료들의 자비심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들의 이기심을 자극하고, 나의 요망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너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낫다. 타인에게 어떤 종류의 거래를 제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면,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거래 제안 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호의의 대부분을 상호간에 얻어낸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한다.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거지 이외에는 아무도 동료인간들의 자비심에 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스미스, 국부론, 20쪽)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이기심’을 구출하면서 인간의 ‘인간성’을 시궁창에 쏟아버렸다. 절대주의에 맞서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투쟁을 수행하느라고 너무 다급해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변명하더라도 아무튼 자유주의자들의 모든 이론적 자가당착과 궤변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기적인 자유는 무자비한 경쟁을 부추겨서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키울 수밖에 없으며, 마침내 대다수 인간들이 교류의 즐거움을 누리기 힘들도록 만들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근대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주의 사상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 빠져나오자면 ‘이기적인 자유’에 제한을 두어야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차라리 이런저런 궤변을 개발하여 이론적 및 실천적 한계를 벗어나는 길을 찾았다. 홉스는 ‘리바이이던’이라는 초월적 괴물을 발명하여 이론적 궁지를 벗어나고자 했으며, 로크는 신박한 화폐론을 발명하여 불법유턴을 하였다. 아담 스미스도 선배들의 꾀를 이어받아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발명해낸다. 그리고 이 존재에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보장해주는 과제를 떠넘겨버린다.
각 개인은 그가 처분할 수 있는 자본을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사용하려고 힘쓴다. 그의 관심사는 사실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그는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사회에 가장 유익한 투자를 선호하게 된다.
한 사회의 연간수입(revenue)은 그 사회의 노동의 연간 총생산물의 교환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서 자기 자본을 국내산업의 성장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최대치가 되도록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는 셈이 된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한 것도 아니며, 그가 얼마나 기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해외산업보다 국내산업에 투자함으로써 그는 오직 자신의 안전을 의도한 것이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투여함으로써 그는 오직 자신의 이익을 의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목적을 증진시키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여 반드시 사회에 보다 적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종종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키게 된다.
(스미스, 국부론, 433~434쪽)
루소는 절대주의에 맞서서 자유주의자들과 어깨를 걸었으며, 큰 소리로 ‘자유’를 외쳤다. 그렇지만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시궁창에 내다버리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자유주의를 추종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자유를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아기도 구출하고 싶었다. 그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을 쓰게 된 동기를 여기서 짐작해볼 수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인간이 독립의 즐거움과 교류의 즐거움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찾기 위하여 루소는 모든 자유주의자들이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두 가지 근본전제를 파고들었다. ‘이기적 자유’와 ‘사유재산제도’였다.
참된 필요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위에 서기 위해서 저마다 재산을 늘리려는 열의, 탐욕스런 야심이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경향을 불러일으켰다. ... 한편으로는 경쟁과 적대감,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관계의 대립, 언제나 타인을 희생시켜서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는 숨은 욕망, 이런 모든 악이 사유재산제도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커져가는 불평등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 상속 재산이 그 수에 있어서나 범위에 있어서나 증대하면서, 어떤 자는 다른 자를 희생시키지 않고는 더는 자신의 부를 확장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그곳에서 사람들의 갖가지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자는 지배하는 쾌락을 알게 되자 곧 다른 모든 쾌락을 경멸했다. 그리고 새로운 노예를 소유하기 위해서 이웃 인간들을 정복하고 예속시키는 일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15~116쪽)
루소가 볼 때, 인류문명은 애당초 잘못된 설계도에 따라 지어진 집과 같았다.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이기적인 자유와 사유재산제도’라는 설계도였다. 이 설계도는 인간들이 ‘독립의 즐거움과 교류의 즐거움을 동시에 실현한다’는 집을 짓는 일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루소는 그 설계도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설계도는 ‘자유’라는 단 하나의 기둥 위에 집을 얹으려고 했다. 그에 맞서서 루소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집을 얹는 설계도를 그린다. ‘자유’라는 기둥과 ‘평등’이라는 기둥이다.
모든 국가, 모든 입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삶을 주는 데 있다. 그런데 좋은 삶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은 정확히 말해서 무엇으로 성립되어 있는가? 그것은 두 가지 하위 목적, 즉 자유와 평등으로 성립되어 있다. 평등이 없으면 자유는 지속될 수 없다.
자연만물의 힘은 언제나 평등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입법의 힘은 언제나 평등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용해야 한다.
(루소, 사회계약론, 211쪽, 212쪽)
“삶의 최고목적은 ‘좋은 삶’이다.” 문명이 개벽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상가들은 이 명제에 동의해왔다. 그리고 저마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사상가들 사이의 차이는 궁극적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단 하나의 기둥에 집을 얹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에 맞서서 루소가 두 개의 기둥 위에 집을 얹는 길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고대 시대부터 중세 시대까지를 통틀어서, 그리고 자연권 사상으로 무장한 자유주의자들이 봉건군주제를 무너뜨린 근대초기까지도, ‘좋은 삶’은 ‘자유’라는 외기둥 위에 얹혀 있었다. 그때 루소가 나타나서 수천 년 동안 땅 속에 파묻혀 있던 또 하나의 기둥을 발굴해내어 인간의 삶에 되돌려주었다. ‘평등’이라는 기둥이다. 바로 여기서 루소의 진정한 혁명성을 찾아볼 수 있다.
“평등이 없으면 자유는 지속될 수 없다.”
루소의 이 명제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상호의존성과 상호보완성을 천명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평등 없이 자유 없고, 자유 없이 평등 없다.”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운 ‘자유’라는 말에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의미밖에 없었다. 루소는 거기에 ‘평등’이라는 의미를 추가한다. 그에 따라 루소가 내세우는 ‘자유’라는 말은 ‘모두가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뒤에 청년 맑스가 사용하는 개념을 여기 빌려와서 구분해보자면, 자유주의자들의 ‘자유’는 ‘현존재로부터 도피하는 자유’(Freiheit vom Dasein)에 해당되며, 루소의 ‘자유’는 ‘현존재 속에서의 자유’(Freiheit im Dasein)에 해당된다.
자유와 평등을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짝으로 나란히 세우면서 루소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현존재(=현실)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낼 수 있는 길을 찾는 작업의 첫걸음을 뗀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사회계약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서 그는 자유주의자들의 ‘자유’ 개념을 폐기하고 자신의 새로운 ‘자유’ 개념에 따라 사회계약을 체결할 것을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저마다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계약이다.
18세기 중반기에 루소가 심은 평등사상의 불씨는 19세기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전파되어나갔으며, 곳곳에서 노동자민중의 가슴을 사로잡으면서 물질적인 힘으로 전환되어나갔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노동해방운동의 거대한 들불이 타오르게 된다. 1만년 문명의 역사, 또는 3천년 사상의 역사를 두고 보자면 지극히 최근의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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