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현 원장님의 <노동인문학>입니다. [편집자주] |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평등주의 사회의 노동과 사유재산권
루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명상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인간의 좋은 삶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면 인간의 좋은 삶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문명상태를 벗어나서 자연상태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대다수 연구자들은 루소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주장한다. 루소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루소가 볼 때, 인간의 좋은 삶은 문명상태에서 구현된 적도 없지만, 자연상태에서 구현된 적도 없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인간의 좋은 삶이 구현된 시기는 자연상태와 문명상태의 중간시기였다. 인류가 수렵채취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개인들 사이의 교류는 점점 더 활발해졌지만, 아직 농경목축 기술은 맹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아직 토지 분배도 시작되지 않은 때였다. 오늘날 역사연구자들이 흔히 ‘원시공산제’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그 시기에 개인들은 “저마다 독립의 즐거움과 교류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면서” 살 수 있었다. 이런 뜻으로 루소는 그 시기를 인류 역사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정된 시기”로 꼽고 있다. 그 시기에 대한 루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정신이 점점 계몽되면서 삶의 수단도 점점 개선되었다. 마침내 사람들은 튼튼하고 잘 드는 돌도끼를 발명했다. 뒤이어 사람들은 점토나 진흙을 다져서 움막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이 시기가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일종의 사유재산을 도입한 최초의 혁명시대이다. 아마 그 사유재산은 이미 다툼과 싸움의 씨앗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보잘것없는 움막으로 만족하고 있는 한, 또 그들이 가시나 생선뼈로 가죽옷을 꿰매고, 새의 깃털이나 조개껍질로 몸을 장식하고, 몸에 갖가지 색을 칠하고, 활과 화살을 완성하거나 치장하고, 잘 드는 돌로 여러 개의 고기잡이 통나무배와 보잘것없는 악기류를 만드는 데 그치고 있는 한, 다시 말해 그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또는 몇 사람만의 협력만을 필요로 하는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에는, 그들은 그들의 본성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고 건강하고 선량하게 살면서,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교류의 즐거움을 계속 누렸던 것이다.
인간능력 발달의 이 시기는 원시상태의 느긋함과 [문명상태의] 건드릴 수 없는 자존심의 활동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여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정된 시기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잘 생각하면 할수록 이 상태가 가장 혁명이 일어나기 어렵고,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공통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모종의 불행한 우연에 의해서 인간이 처음으로 이 상태에서 일탈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5쪽, 110~111쪽, 108~110쪽)
그렇다면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정된 시기를 벗어나서 문명상태로 넘어가도록 만든 ‘모종의 불행한 우연’은 도대체 무엇일까?
루소가 볼 때 그것은 농경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도입된 사유재산제도, 특히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었다. 루소는 사유재산제도의 발생을 필연적 사건이 아니라 우연적 사건으로 보았다. 그가 볼 때, 사유재산제도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실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기계약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유재산제도의 원천에 대한 루소의 생각은 로크의 생각과 선명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로크는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유재산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경작자에게 토지의 점유권을 넘어서서 토지의 소유권까지 인정해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법에 합치된다고 보았다.
루소는 노동이 모든 가치의 자연적 원천이라는 로크의 의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노동이 모든 사유재산의 자연적 원천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로크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차지한 자의 선점권, 또는 폭력의 결과로 차지한 강자의 권리를 법률상 정당한 근거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소유권으로부터 엄격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토지에 대한 선점권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첫째, 그 토지에 먼저 사는 자가 아무도 없어야 한다. 둘째, 생존하는 데 필요한 넓이의 토지만 차지해야 한다. 셋째, 허무맹랑한 의식(儀式)이 아니라 노동과 경작을 통하여 그것을 점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 번째 조건이야말로 소유권의 유일한 표시이며, 법률상의 정당한 근거가 없는 경우에도 남에게 존중받을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 사회계약론, 181~182쪽)
루소는 사유재산권이 자연권이 아니라 ‘사회계약’이라는 “허무맹랑한 의식”을 통하여 도입된 인위적인 권리, “폭력과 사기의 결과로 차지한 강자의 권리”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필연의 산물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겠다는 생각을 해내고는 그것을 그대로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들을 찾아낸 최초의 사람이 정치사회의 창립자였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1쪽)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선점권이 소유권으로 전환되고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을 루소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토지 경작에서 필연적으로 토지 분배가 생겨났다. ... 이제 막 발생한 ‘사유재산’ 관념이 손으로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그것의 기원은 [로크가 말하듯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만들지 않은 것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 노동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거기에 더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작자에게 그가 일군 토지의 산물에 대한 권리를 준다. 그러므로 토지에 대한 권리를 적어도 수확기까지 갖게 해주고, 해마다 그렇게 해주는 것은 다만 노동뿐이다. 이렇게 해서 지속적인 점유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것이 쉽게 사적 소유로 바뀐 것이다. ... 이처럼 토지 분배가 하나의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적 소유의 권리는 자연법에서 생겨나는 권리와는 전혀 다른 권리이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3쪽)
최초의 진정한 사유재산권은 농경생활이 정착되면서 생겨난 토지 소유권이었다. 로크는 땅을 일구고 곡식을 재배하는 노동을 수행한 경작자가 곡식에 대한 소유권뿐만 아니라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 자연법에 합치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본래 그 땅은 경작자의 노동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작자가 그 땅에 대하여 사적 소유의 권리를 가지는 것이 자연법에 합치될까? 아무튼 인류는 사유재산제도를 도입하였고, 여기서 문명의 모든 반(反)인간적인 현상들이 생겨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경쟁과 적대감,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관계의 대립, 언제나 타인을 희생시켜서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는 숨은 욕망, 이런 모든 악이 사유재산제로부터 나왔으며, 점점 커져가는 불평등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 상속 재산이 그 수에 있어서나 범위에 있어서나 증대하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더 이상 자신의 부를 확장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그곳에서 사람들의 갖가지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자는 지배하는 쾌락을 알게 되자 곧 다른 모든 쾌락을 경멸했다. 그리고 새로운 노예를 소유하기 위해서 이웃 사람들을 정복하고 예속시키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 강자의 권리와 최초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 끝없는 분쟁이 일어나, 그것은 투쟁과 살해로 끝이 났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15~116쪽)
홉스는 자연상태를 전쟁상태로 보았고, 그 전쟁을 끝내야 비로소 사유재산제도를 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소가 볼 때, 홉스는 역사의 꼬리를 머리로 둔갑시켰다. 자연상태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사유재산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전쟁상태로 내몰린 것이 역사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루소가 볼 때, 문명상태는 전쟁상태의 연속이며, 만악(萬惡)의 뿌리는 사유재산제도에 있었다. 인간이 좋은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드는 모든 장애물은 사유재산제도에서 나온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제도를 원천적으로 철폐하자고 주장해야 논리가 수미일관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루소는 사유재산제도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의 머릿속에 다음 질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도적으로 사유재산을 전면적으로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토지와 기타 생산수단은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생산수단을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해야 할 것이다. 과연 누가 어떻게 사용할 때 새로운 결사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저마다 독립의 즐거움과 교류의 즐거움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을까?
루소는 사유재산의 전면적 폐지 대신 평등한 분배를 제안한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독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자면 가난 때문에 자신의 몸을 파는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산의 평등’이란 어떤 시민도 재산으로 다른 시민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 않고, 아무도 자기 몸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이로운 사회란 모든 사람이 조금씩 갖고, 아무도 너무 많이 갖지 않는 사회이다.
(루소, 사회계약론, 211쪽, 184쪽)
‘너무 많이’의 잣대는 무엇일까?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의 양을 제한하기 위해서 루소는 앞서 인용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토지에 대한 우연적 선점권이 법률상 정당한 소유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은 다른 모든 종류의 재산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루소는 노동을 사유재산권의 전제조건으로 특별히 강조하였다. 오로지 노동을 통해서 획득하는 것만 법률상 정당한 사유재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홉스처럼 폭력을 통해서든, 로크처럼 화폐를 통해서든, 아무튼 노동을 통하지 않고 획득하는 사유재산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유재산제도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제도가 변혁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1인1표 보통선거제, 직접민주제, 중앙정부 없는 연방제를 새로운 정치질서의 골격으로 제안한다. 이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므로 여기서는 건너뛰기로 하자.
근대 노동해방 운동의 역사에서 루소는 깊은 산 속 옹달샘이었다.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관광객들은 멀리서 그 산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만 한두 장 찍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장차 세계역사를 뒤흔들게 될 두 개의 커다란 사상적·실천적 흐름의 발원지를 찾아서 온 산을 더듬어 헤매는 심마니가 아니라면 자연 속에 깊이 묻혀 있는 루소의 샘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샘에서 프루동의 무정부주의 흐름이 발원하였고, 이 샘에서 맑스의 공산주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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