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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노동역사기행 12 - 왜 호텔은 핵심업무인 룸메이드부터 아웃소싱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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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텔은 핵심업무인 룸메이드부터 아웃소싱 할까?

 

이정호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노조 있어도 여성 차별 뛰어넘지 못해

어떤 근거도 없이 통념으로 비정규직화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로 급성장하기 시작한 호텔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정부의 관광산업 육성정책에 힘 입어 발전해왔다. 정부와 관광업계는 산업 육성만 생각했지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호텔산업의 서비스 질은 기계화도 자동화도 아닌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도 정부와 자본은 노동을 비용 절감의 걸림돌로만 치부해왔다. 호텔업계는 일찍부터 실습생수습제도 등을 활용해 장기간 계약직비정규직을 사용하며 정규직이 담당하던 주요업무를 대체하고, 선별적 정규직 전환을 입직경로로 안착시켜왔다. 이런 호텔업계 노동력 관리 방식은 현장 통제를 강화하고 분사와 용역외주화 등 아웃소싱이 주를 이뤘다.

 

  1990년대 말 민주노총 창립 직후 설립된 호텔노조들이 지금의 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전신인 민주관광노련에 대거 가입해 조합원 수가 한 때 5,000명을 넘기도 했다. 2000년에는 롯데·스위스그랜드·서울힐튼 등 3사 호텔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적정인력 확보를 요구하는 파업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파업은 노조의 역량에 따라 일정 기간 경과 후 정규직화를 약속하는 형태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정규직 동일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짧게는 40여 일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이어진 장기파업이었는데도, 외환위기 이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비정규직화 흐름을 끊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호텔업계는 전면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진행해왔고 이에 비례해 민주노조는 세력을 잃어갔다. 호텔 현장에는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상시적 고용불안이 자리를 잡았다. 아웃소싱은 일상이 됐다.

 

  서비스연맹은 201392740회 관광의 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회견을 열고 화려한 호텔! 초라한 비정규직! 비정규직 철폐하라! 외주화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관광산업 노동자들은 한국방문의 해, 내방 관광객 1,000만명 달성 등 관광한국을 자찬하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 호텔 노동자의 현실 개선을 촉구했다. 한류 열풍과 국제행사 유치 등으로 관광산업은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고 서울 도심에는 금융사항공사까지 나서는 특급호텔 건설 붐이 일지만, 소수 관리자를 뺀 전 부문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채운 신규호텔이 등장하는 등 호텔 현장은 노동의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현실의 한가운데에 명동 한복판에서 싸우는 세종호텔노조가 있다.

 

현재도 투쟁하고 있는 세종호텔노동조합 (사진=한겨레)

 

  2000년 호텔 세 노조의 파업은 그해 10월께 마무리 됐지만 호텔 현장은 곧바로 대규모 아웃소싱의 광풍에 휩싸여 비정규직이 난무했고, 노조는 뿌리가 뽑혔다.

 

  그랜드힐튼호텔(옛 스위스그랜드호텔)2003년에도 내홍을 겪었다. 호텔은 200327일 간접고용 룸메이드 28명 중 전국여성노조에 가입한 21명만 찍어서 집단해고했다. 룸메이드는 90년대 중반까진 호텔에 직접고용된 계약직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은 2000년 정규직 노조 파업 때 정규직 시켜주겠다는 호텔 말에 속아 대체인력으로 투입돼 일했다. 그러나 이들은 200012월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은채 서명하라는 호텔 말을 듣고 사인했는데, 정규직은커녕 간접고용 용역직으로 전환돼 버렸다. 고용불안을 느낀 이들은 2001년 전국여성노조에 가입했다.

 

  2년이 지나고 새 용역업체가 들어서자 2003228일 여성노조원 21명 전원을 선별해 해고했다. 이들은 통보도 받지 못한채 당일 스케줄표에서 자기 이름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서 호텔과 용역회사에 문의한 뒤에야 용역회사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노조원들만 고용승계에서 제외됐음을 알았다.

 

  여성노조 서울지부는 “4년부터 10년씩 일해온 룸메이드 중에 노조원만 골라 계약해지한 건 명백한 부당해고라며 반발했지만 호텔은 고용주인 용역회사와 알라서 하라고 발뺌했고, 새 용역회사인 아이서비스는 룸메이드 전원을 고용승계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 도대체 이들의 고용주는 누구일까.

 

2000년 롯데호텔 강제진압 당시 (사진=한겨레)

 

  2000629일 새벽 김대중 정부의 경찰특공대가 호텔 옥상으로부터 투입돼 대테러 작전처럼 진행된 롯데호텔 파업노동자 진압은 살인적이었다.

 

  여성학자 김양지영씨는 오랫동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천착해왔다. 김양씨는 그랜드힐튼호텔 룸메이드 여성 노동자들이 싸웠던 다음해인 20041220일부터 2005119일까지 한 달 동안 한 호텔의 객실 관리부서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호텔에서 일하면서 참여관찰연구한 결과를 묶어 2011비정규직 통념의 해부’(푸른사상)라는 책을 내놨다.

 

  그가 말하는 결론은 간단하다. 아웃소싱 되는 호텔업계 여성 비정규직은 단순 비숙련이라는 통년과 반대로 호텔 내 어떤 노동자보다 긴 교육훈련과 많은 업무 지식,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한 높은 숙련 수준일 갖추고 있더라는 거다. 반면 호텔 정규직은 편하고 쉬운, 오히려 대체성이 높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일했던 호텔에서 룸메이드는 오전 8시 출근해 유니폼 갈아입고, 830분부터 공용공간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는 12개의 객실을 배정받아 정비해야 했다. 각 층에는 룸메이드 3명과 점검원 1명이 배당돼 일을 한다.

 

  그가 일한 호텔에서 룸메이드와 점검원은 100% 기혼 여성이었다. 이들에게 업무를 알려주는 주문 전달자100% 미혼 여성이었다. 룸메이드는 아웃소싱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는데, 각 층 주문 전달자는 정규직이었다. 룸메이드가 주문 전달자보다 교육훈련 기간도 길고, 더 많은 업무 지식이 필요하기에 더 핵심업무를 맡고 있었다. 아웃소싱된 객실 정비팀의 룸메이드는 객실 상품의 질과 서비스에 직접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대인 서비스 수준도 높았다. 결국 호텔업계 아웃소싱은 전략에 따라 대상을 선전한 것이 아니라 관행적으로 주변 노동이라고 여겨온 업무를 성차별적으로 밀어낸 셈이다.

 

  호텔의 주 수입원은 객실과 식음료 부문이다. 식음료 부문은 경기침체와 일반 외식산업 발달로 호텔에선 성과를 내기 어려운데도 전혀 아웃소싱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러나 객실은 IMF와 상관없이 높은 객실 점유율을 보여 주 수입원이다. 객실 부문에서도 객실을 직접 생산하는 객실 관리부인 룸메이드는 단순업무로 간주돼 가장 먼저 아웃소싱 됐다.

 

  특히 그가 일했던 호텔은 강력한 정규직 노조가 있었고, 10년 간 재임한 노조위원장의 권위는 사장과 맞먹을 정도였다. 호텔 인사부도 강선노조 때문에 인사과장을 노조위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으로 앉혀 놓을 정도였다. 이렇게 강한 노조가 있는데도 객실 관리부서의 룸메이드 아웃소싱에 노조는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객실 관리부서에서 가장 왕성한 노조활동을 하는 이들은 30대 중후반의 남성들로 이들의 현안은 승진이었다. 그가 한 달 간 일하면서 느낀 점을 서술한 것이라 그 호텔에서 노조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룸메이드 아웃소싱에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은 호텔업계에 노조가 있는 곳도 거의 없다. 이렇게 원칙없는 아웃소싱을 용인해 준 뒤에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