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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노동역사기행 13 - 노동운동을 이끈 구로공단 노조는 어디로

 

노동역사기행은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13회에 걸쳐 좋은 글을 써 주신 이정호 실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읽을꺼리> 꼭지에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은 [e-품] 편집팀(nodonged@g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노동운동을 이끈 구로공단 노조는 어디로

 

이정호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구로공단은 87년 울산과 함께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 1985년 봄을 뜨겁게 달군 구로 동맹파업이 끝난지 35년이 됐다. 구로 동맹파업을 겪으며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에 놀란 기업주들은 경기도 안산으로 충남으로, 멀리 대불공단까지 공장을 이전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만 구로공단에서 새로 결성된 노조가 172개였다. 1991년에도 구로공단엔 52건의 파업이 일어났다.

 

  공장의 대거 외곽 이전에도 구로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 바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구로공단엔 아직도 10만명 넘는 노동자가 일하지만 지금은 노조 불모지가 됐다. 2011년 기준으로 구로공단엔 1만여 개 사업체에 약 17만명이 일하지만 노조는 14개 사업장 조합원 1392명으로 조직율이 1%도 안 됐다. 대한민국 평균 노조조직율 10%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85년 구로 동맹파업과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면서 자본과 정부는 90년대 들어 구로공단 재구조화를 진행했다. 정부의 표현으로는 첨단 지식산업 위주로 정보통신 산업을 유치해 IT 강국을 떠받치는 중추가 되겠다고 했지만 ITIT 나름이었다.

 

85년 6월 구로동맹파업 당시 모습 (사진=구로동맹파업20주년기념사업추진위)

 

87년 한 해 172개 노조결성, 남은 노조 14

 

  구로공단엔 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제조업도 여전히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2009년 기준 구로공단 제조업 노동자는 37647명으로 전체의 1/4이 넘는다. 다만 90년대 이후 비제조 서비스 부문이 급속히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구로공단에도 비정규직은 있다. 그러나 구로공단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별 차이가 없다. 2011년 기준 전국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절반 가량이었는데 구로공단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73.8%를 받아 큰 차이가 없었다.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없는 건 좋은 거다. 그러나 구로공단은 좀 다르다. 정규직 임금이 워낙 낮아 비정규직과 격차가 크게 없어진 거다.

 

  서비스업은 구로공단 전체 고용의 2/3를 넘어섰다. 그 중에서도 생산자서비스업이 구로공단 전체 고용의 절반이 넘는 89천여명을 차지한다. 생산자서비스업은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일이다. ‘정보처리 및 기타서비스업, 연구개발업,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사업지원서비스업 등이다. 구로공단의 절반에 이르는 생산자서비스업 노동자들은 고학력층에 임금도 상대적으로 높지만 장시간 노동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은 수많은 넷마블과 신영 프레시전

 

  나머지 절반의 노동자는 여전히 20%에 달하는 제조업 노동자다. 이들은 주로 기혼 여성과 조선족 등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불법파견에 시달리며 최저임금을 받으며 2~6개월씩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입직과 퇴직을 거듭하고 있다.

 

  구로공단 제조업 노동자는 봉제의류 9395, 특수목적기계 제작 4273, 통신장비 3768명 순으로 많았다. 봉제업은 구로공단에 들어선 대형 아울렛 하청 공장들로 대부분 10명 이내의 소기업이다. 특수목적기계 제조업은 수출의 다리 인근 독산동에 많은데 대부분 휴대폰용 플라스틱 사출 금형이나 자동차 부품금형을 만든다.

 

  정부와 자본은 구로공단에 첨단 IT업종에 많다고 선전하지만 넷마블 등 게임개발을 위해 무한경쟁과 무한근무시간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제조업은 신영 프레시전처럼 통신재벌의 하청생산기지로 20년 넘게 활용되다가 노조가 들어서자 수순을 밟아 폐업하는 수준이다. 신영은 알짜배기 제조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축적해 쌓아온 부를 이용해 부동산과 골프장으로 눈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