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가 드디어 어린이집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편집자주] |
새싹반 조수영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수영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면서 드디어! 어린이집 새싹반이다. 아직은 적응 기간이다. 무식하게도 처음부터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머무는 줄 알았다. 세상은 그렇게 무식하지 않았다. 처음 이틀은 엄마, 아빠와 함께 참관하는 방식으로 30분 동안 머물렸다. 그리고 일주일에 1시간씩 어린이집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추석과 한글날 연휴를 이어지면서 조금 더뎌졌지만, 요즘엔 10시에 등원해서 점심 먹고 12시 20분에 하원한다. 처음엔 대부분 적응하는데 고생한다는 경험담을 많이 들었다. 매일 어린이집 문앞에서 눈물의 이별을 한다고 했다. 다행히 수영이는 그냥 ‘쿨하게’ 들어간다. 딱 한 번 아빠 목에 안겨서 ‘같이 들어가자’며 보채는가 싶더니, 선생님이 부르자 아빠 품에서 냉큼 내려가 쏘~옥 들어갔다. 괜히 내가 섭섭할 지경이었다. 어린이집 생활은 매일 선생님이 ‘키즈노트’ 어플로 사진과 함께 알려준다. 잘 놀고, 잘 웃는다. 수저 대신 손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밥도 잘 먹는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도 사귀었다. 새싹반 서*, 연*, 진* 이다. 어쩌면 수영이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다. 서*이랑 가장 친하게 지내는 것 같고, 연*와 진*이랑도 친해지는 과정이다. 처음 안 사실인데, 아이들도 ‘월요병’이 있단다. 유독 월요일 등원이 힘들다고 한다. 수영이도 긴 추석과 한글날 연휴를 보낸 이후 등원 할 때 한참을 뭉기적 거렸다. 가다가 떨어진 나뭇잎 줍고, 좀 더 가다가 화단 나무를 만지작거리고, 누군가 키우는 국화 화분 앞에서는 아예 주저앉아버렸다. 물론 막상 어린이집 현관 앞에 서면 뒤도 안 돌아보고 쏘~옥 들어가 버린다. 쿨하게! (순전히 아빠 입장이지만) 수영이의 사회생활 출발은 순조로워 보인다.
반면 아빠는 허덕이고 있다. 한동안 아빠 육아 생활에 적응했나 싶었는데 다시 전투모드다. 등·하원 시간에 맞춰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다른 살림도 해야 한다. 이전에도 어느 정도 시간 패턴이 있었지만 미루고, 떠넘기고, 생략할 수도 있었다. 이젠 잠자리를 정리하는 순간부터 바빠진다. 밥은 쥐꼬리만큼 먹으면서 천지사방 아수라장을 만든다. 씻기려면 발버둥이다. 수영이 씻기는 물보다 내가 뒤집어쓴 물이 더 많다. 기저귀 갈고 옷 입혀야 하는데, 이리저리 도망 다닌다. 어느 땐 내복만 입고 가겠다고 강짜를 부린다. 이 정도면 인내심 테스트다. 아침부터 정신이 쏙 빠져 있다보니 마스크를 안하거나, 어린이집 가방을 놓고 나와서 다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다. 10시 등원이 이 모양이니 앞으로 8시에 등원하면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에라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오면 집이 난장판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차곡차곡 처리해야한다. 제일 먼저 빨레를 돌리고, 거실 정리와 청소기를 돌린다.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밤새 수북히 쌓여있던 설거지를 한다. 마지막으로 수영이 돌아와서 먹을 간식을 준비하고 저녁에 먹을 밥을 앉히면 하원 시간이다. 하원하는 길도 시간에 쫒기긴 마찬가지다. 어린이집 낮잠시간(오후1시~3시)에 맞춰 잠자는 연습을 해야한다. 수영이가 어린이집에서 바로 집으로 오면 좋으련만, 수영이는 반드시 동네 순찰을 하고 가야한다. 집 반대편에 있는 학교 통학로로 올라가서, 큰나무 공원을 들린다. 그리곤 옆 아파트 사잇길로 내려와선 단골 커피집에서 사과주스 사들고서야 집에 갈 생각을 한다. 커피집 사장님과 ‘빠이빠이’하는 것이 하원길의 마지막 단계다. 동네 순찰 이후에 또 씻기고, 옷 갈아 입히고, 우유 한잔 먹이고 재우려면 걸음걸이가 빨라질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원래 낮잠 시간이 12시에 오후 2시였던터라 금방 낮잠에 든다. 수영이가 잠들면 시간에 쫒겨 정신없던 오전시간이 마무리된다. 나도 긴장이 딱 풀린다. 낮잠이후 시간은 이전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늘 하던대로 놀아주고, 못다한 살림하면 된다. 오전만 해도 이렇게 허덕이는데, 앞으로 출·퇴근까지 겹치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이전에 없던 세상을 또 맛보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한 숨만 나온다. 대한민국 맞벌이 부부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육아휴직 마지막 달이다. 11월이면 출근이다. 수영이가 좀더 어린이집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그나마 다행일거다. 1년간 육아휴직을 보낸 후에 지난 소회보다는 앞으로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에 생각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이 다시없을 시간임을 안다. 언제 또 수영이와 아빠가 함께할 시간이 있겠나. 앞으론 매일 엄마, 아빠는 일터! 수영이는 어린이집으로! 세상 살이에 정신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맞벌이 부부라면 누구나 겪었을, 하지만 우리는 처음인 본격적인 육아전쟁일 거다. 수영이도 가족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접할 것이다. 쓴 맛도 있고, 단 맛도 있는! 어쩌겠나. 그저 의지의 낙관을 가지는 수 밖에. 지금처럼 서툴러도 기쁨 속에서 잘하리라고 믿는다. 그래도 수영이는 알아서 잘 적응할텐데 아빠가 걱정이다. 수영이 보고 싶어서 일이나 제대로 할련지!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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