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현 교육원 원장님의 「4차 산업혁명과 고용의 미래」 4회차 중 2번째입니다. 많은 내용을 적은 회차에 나누어 연재하게 되어 글이 상당히 깁니다. 여유로운 시간에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4차 산업혁명과 고용의 미래
- 프레이 대 서스킨드 논쟁 -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3. 경제학적 근거
3-1. 낙관론의 경제학적 근거 : 시장경제 법칙
3-1-1. 생산성 향상, 경제 성장, 신산업 출현
미래의 경제성장에 대하여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 고든은 미국 경제가 앞으로 오랫동안 저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꼽았다. 그는 2차 산업혁명 시기에 전기 기술과 자동차 기술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음에 반하여, 3차 산업혁명의 컴퓨터 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 기술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에 맞서서 프레이는 낙관론을 내놓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경제가 곧 고성장 단계로 접어들 것이며, 그에 따라 일자리도 충분할 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고용대체형 기술이 고용창출형 기술로 전환된 1~2차 산업혁명 시기의 역사적 경험이 3~4차 산업혁명 시기에도 그대로 되풀이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의 고용대체 현상이 2차 산업혁명의 고용창출 현상으로 전환된 과정에 대한 프레이의 설명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1차 산업혁명은 고용대체형 기술이 추동했으며, 노동자들의 탈숙련화와 빈곤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19세기 중반기에 고용대체형 기술이 고용창출형 기술로 전환되었다. 2차 산업혁명은 고용창출형 기술이 주도했으며, 노동자들의 재숙련화와 중산층화를 가져왔다.
바로 이 전환 모델을 프레이는 3~4차 산업혁명 시기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하고자 한다.
컴퓨터 기술은 1차 자동화물결을 가져왔는데, 고용에 미친 영향을 두고 보자면, 1차 산업혁명 시기와 비슷하게 고용대체 현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오늘날 막 태동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차세대 자동화물결을 가져오고 있다.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보자면, 지금까지는 고용대체형 기술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곧 역전될 것이다. 고용대체형 기술이 고용창출형 기술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고 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 기술도 조만간 고용창출형 기술로 전환될 것이다.
프레이는 기술의 변화가 경제의 구조와 노동자대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차적인 추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경제학자로서 맑스의 ‘생산력-생산관계’ 공식과 ‘토대구조-상부구조’ 공식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기의 사회변화를 설명할 때도 이런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 시기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른바 ‘세계화’ 물결이 전세계의 상품시장과 금융시장을 단일시장으로 통합시켜 나간 시기이다. 그와 동시에 이른바 ‘사민주의 황금기’를 떠받쳤던 포드주의 생산체제가 무너지고 유연생산체제가 확산된 시기이다. 컴퓨터 기술을 통한 업무 자동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였으며, 사회양극화 현상이 시작되어 줄곧 심화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전세계 노동운동은 크게 후퇴했다. 프레이는 이 시기의 정치경제를 이렇게 요약한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경제국의 맥락에서 보면, 그 전 1세기 동안 시간당 임금은 생산성과 거의 보조를 맞춰 왔습니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이전에도, 심지어는 중세 길드 시대에도, 임금은 거의 생산성과 더불어 증가했습니다. 컴퓨터 시대의 도래 이후 거대한 탈동조화(decoupling)가 이뤄져 왔습니다. 그 원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역 및 수입 경쟁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다른 사람들은 기술과 더 연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현상이 대체로 기술변화와 연관이 있다는 쪽으로 점점 더 결론이 모아지고 있습니다.(강연 20쪽)
경제학자들이 1919년에서 1970년에 이르는 기간을 ‘위대한 평등화’(Great Leveling) 기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실은 노동운동의 결과라기보다는 기술의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노동운동이 기여한 부분도 인정합니다.(강연 30쪽)
이처럼 프레이는 사회 변화의 일차적인 동인을 기술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1차 산업혁명 시기의 고용대체 현상이 2차 산업혁명 시기의 고용창출 현상으로 전환된 원인을 기술의 영역 안에서 찾아냈다. 증기동력 기술과 섬유기계 기술은 고용을 대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하여 전기 기술과 자동차 기술은 고용을 창출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프레이의 전환 모델이 3~4차 산업혁명 시기에도 들어맞으려면 기술의 영역 안에서 고용대체형 기술이 고용창출형 기술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술의 영역 안에서 그런 전환을 찾아내기 어렵다. 프레이 자신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듯이, 컴퓨터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은 둘 다 고용을 대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기술이 인공지능 기술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고용대체 현상이 고용창출 현상으로 전환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프레이는 1~2차 산업혁명 시기의 전환 모델이 3~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반복될 수 없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것이 반복되지 않으면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는 그의 주장이 무너지게 된다.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하여 프레이가 선택한 논증 전략은 기술의 영역 바깥에서 전환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경제의 영역이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의 경제적 효과가 고용창출 효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조만간 신기술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최근에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것은 신기술이 아직 실험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본래 새로운 기술은 오랜 지연이 있은 뒤에야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개발 초기 단계에는 주로 비용을 발생시킨다. 지금이 바로 그런 단계이다. 그러나 신기술의 혁신이 방해받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면, 생산성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다. 그에 힘입어 경제도 성장하게 것이고, 일자리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생산성 효과 및 경제성장 효과)
둘째, 신기술은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여러 가지 직업과 산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과 산업을 만들어낼지는 지금으로서는 미래학자들 조차도 알 수 없다. 아무튼 새로운 여러 가지 직업과 산업이 생겨나면서 많은 새로운 고숙련·고임금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신산업 출현 효과)
셋째, 그렇게 생겨난 고숙련·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비수요가 수많은 대면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고숙련 일자리 하나가 대략 네 개의 저숙련·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고숙련 일자리가 더 많은 지역일수록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도 더 높은 편이다. (고용 승수 효과)
애초에 프레이는 기술 변화와 고용 변화 사이의 관계를 밝혀보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1~3차 산업혁명 시기를 다룰 때는 약속을 지켰다. 먼저 증기동력 기술이 전기동력 기술로 전환되면서 고용대체 현상이 고용창출 현상으로 전환된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컴퓨터 기술이 등장하여 생산의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다시 고용대체 현상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과 미래의 고용을 예측하는 대목에서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 그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논거를 기술의 영역 안에서는 찾아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슬쩍 자리를 옮겨서 경제의 영역에서 논거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3-1-2. 낙관론의 경제학적 논거에 대한 의문
나는 여기서 프레이의 논증 방법에 대해서 더 이상 따질 마음이 없다. 고용대체형 기술이 고용창출형 기술로 전환되는 과정이 기술 영역 안에서 일어나든 바깥에서 일어나든, 고용만 창출될 수 있다면 더 이상 시비할 마음이 없다. 그런데 만약 프레이가 기대하는 대로 인공지능 기술이 경제 성장도 가져오지 못하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충분할 만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미래에도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는 프레이의 주장은 두 개의 경제학적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두 개의 가정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프레이의 주장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첫째, 인공지능 기술이 실험단계 또는 개발단계를 거친 뒤에 본격적으로 생산에 투입되는 단계에 이르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다. 둘째, 과거에 그래왔듯이 미래에도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은 충분히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
과연 이 두 개의 가정은 실현될 수 있는 가정일까? 지금까지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 작동해온 경제법칙들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계속해서 작동할 수 있을까? 혹시 현실의 변화추세를 담지 못한 채 프레이의 희망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3-2. 새로운 경제학적 근거 : 한계비용 제로 기술
서스킨드는 고용의 미래를 낙관하면서 프레이가 나열하고 있는 경제학적 논거들이 ‘흘러간 옛 노래’라고 반박한다.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것이다.
지난 300년 동안 급격한 기술 변화가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일거리가 충분했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인간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기술이 노동자를 밀어내는 힘이 노동 수요를 늘리는 힘보다 약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두 힘의 균형이 반대로 기울어질 확률이 높다. 그것도 영원히.(159)
인공지능 기술로 대표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힘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법칙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뜻일까? 서스킨드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지금까지는 생산성 향상 효과, 경제 성장 효과(=파이 확대 효과), 신산업 출현 효과(=파이 탈바꿈 효과)를 통하여 고용을 창출하는 힘을 발휘해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추세가 바뀌고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 기술의 업무 잠식 능력이 너무나 커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앞으로는 보완하는 힘이 대체하는 힘에 맞서 우리를 지켜줄 방어벽 구실을 하지 못할까? 대답은 업무 잠식이 치명적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업무 잠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체하는 힘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보완하는 힘을 약화시킨다. 과거에는 보완하는 힘이 생산성 효과, 파이 확대 효과, 파이 탈바꿈 효과, 이렇게 세 갈래 길을 통하여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를 높였다. 세 효과가 함께 작용해서 언제나 사람이 맡을 일거리가 넉넉하도록 보장했다. 하지만 앞으로 기계가 계속해서 사정없이 끈질기게 발전하면, 세 효과가 무두 힘을 잃을 듯하다.(159~160)
앞서 프레이는 인공지능 기술이 ‘시장경제’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고용창출 효과를 발휘하는 시기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 단계를 지나서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면 시장경제 법칙을 통하여 충분히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뜻이었다. 서스킨드는 프레이가 나열하는 경제적 효과들이 지금까지는 유효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의 계속적 발전은 그것들을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인다. 먼저 생산성 향상 효과에 대한 서스킨드의 반박을 요약해보자.
자동차의 GPS 내비게이션 기술을 보자. 오늘날에는 이 기술 덕분에 택시 운전사들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 낯선 길을 찾는 업무를 내비게이션에게 넘겨준 덕분에 운전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운전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 기술이 인간을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인간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까지 차를 운전하는 업무를 기계보다 더 잘 할 때까지만 유효할 것이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끝내는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가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차를 운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조업에서 목격되고 있는 협동로봇(코봇 cobot)을 통한 생산성 향상 효과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 기계의 협동작업은 인간 작업자가 수행하는 몫을 기계가 수행할 수 없을 때만 힘을 얻는다. 하지만 기계의 능력이 갈수록 향상되기 때문에, 인간이 기여할 몫이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이런 협동 관계가 끝나고 만다. 즉, ‘인간과 기계’에서 ‘인간’이 쓸모없어진다.(161~162)
경제 성장이 고용 창출로 이어지던 시대가 있었다. 인간의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상품을 생산할 수 있던 시대이다. 아날로그 노동력이 아날로그 기계를 돌리던 시대이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이 시대를 ‘제1의 기계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시대에는 경제 성장으로 인하여 상품의 수요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하여 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야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던 시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미 디지털 기계 시대로 접어들었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가 ‘제2의 기계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이다. 그 전환의 선두에 인공지능 기술이 있다. 디지털 기계 시대에도 여전히 경제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는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경제는 계속 성장할 테고, 소득도 더 늘어나서, 상품 수요도 치솟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날처럼 이런 현상에 힘입어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도 반드시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럴까? 생산성 향상 효과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 성장 효과도 그런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에 인간이 기계보다 유리할 때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 제조업의 변화를 1948년부터 살펴보자. (163)
오늘날 디지털 정보기술이 새로운 산업, 정보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와 고용 승수 효과가 충분할 만큼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산업은 소수의 전문 인력만으로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산업이다. 서스킨드는 바로 이런 추세 속에서 고용의 미래를 가리키는 징후를 읽고 있다. 정보산업의 고용 승수 효과도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산업 창출 효과는 경제학자들이 미래를 낙관할 때 아주 흔히 꼽는 근거다. 기술진보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여 노동 수요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기술진보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라 꼭 노동 수요가 늘어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때도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에 인간이 기계보다 유리할 때만 노동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같은 신산업을 예로 들자면, 이 분야에는 기업 가치는 엄청나지만 고용 인원은 매우 적은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2006년에 구글이 16.5억 달러에 유투브를 샀을 때, 유투브의 임직원은 고작 65명이었다. 2012년에 페이스북이 10억 달러에 인스타그램을 샀을 때도, 인스타그램 임직원은 달랑 13명이었다. 2014년에 페이스북이 무려 190억 달러에 왓츠앱을 샀을 때도, 왓츠앱 임직원은 겨우 55명뿐이었다. 21세기에 미국에 등장한 모든 신산업들이 미국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기껏 0.5퍼센트뿐이었다. 이런 신산업 분야의 회사들이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 어떤 경제 분야에서 상품 수요가 놀랍도록 증가하여, 그 수요에 대응하고자 완전히 새로운 산업이 출현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는 커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업무 잠식이 계속 이어진다면, 골치 아프게도 이런 현상은 더 흔해질 전망이다.(166~168)
이쯤 오면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궁색해지기 시작한다. 그들이 즐겨 내세우는 경제학적 논거들이 차례대로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논거가 궁색해지만 흔히 사람들은 최후의 무기를 찾는다. 이럴 때 주류 경제학자들이 흔히 들고 나오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제1법칙, 즉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자동화를 통한 정리해고가 늘어나는 만큼 더 헐값의 유휴 노동력이 늘어날 테고, 마침내 인간 노동력을 고용하는 것이 인공지능 기계를 구입하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히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 지점에서 자동화는 멈춰 서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기계와 인간 노동력의 가격 경쟁에서 주류경제학자들이 얘기하는 균형점이 존재할 수 있을까? 기계의 가격은 무한정 낮아질 수 있으며, 마침내 공짜에 이를 수 있다. 특히 디지털 기계의 가격은 매우 쉽게 떨어질 수 있으며, 이미 공짜로 뿌려지고 있는 것들도 숱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저마다 수십 개씩 스마트폰에 지니고 다니는 앱들을 보라! 그것들은 왜 기계가 아니란 말인가? 그에 반하여 인간 노동력의 가격은 무한정 낮아질 수 없다. 주류경제학자들을 제외한다면, 이슬만 먹고살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에서 서스킨드는 ‘한계비용 제로’라는 개념을 딱 한 군데서 언급하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프레이와 주류경제학자들을 반박하고 있는 논거들을 연장해보면 모두 ‘한계비용 제로’ 개념에 닿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그 개념을 일관성 있게 전개해나갔다면, 아마 그는 자본주의 경제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학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서스킨드는 이론경제학자가 아니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에서 서스킨드는 자신의 역할을 고용문제 연구에 한정시켰다. ‘한계비용 제로’ 개념을 토대로 새로운 경제학을 정립하는 일은 이론경제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인공지능 기술을 으뜸으로 하는 디지털 정보기술은 한계비용 제로 기술이다. 한계비용 제로 기술의 계속적 발전과 확산은 점점 더 자본주의 시장경제 법칙이 작동하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다. 달리 말해서, 인공지능 기술 시대는 새로운 경제학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는 인공지능 기계와 인간 노동력 사이에 가격 경쟁과 수요공급 법칙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인간 노동력 가격이 인공지능 기계의 가격보다 더 낮아져서 마침내 자동화 추세가 멈춰 서는 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이미 모든 인간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공지능 기술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자본주의 노동시장 경제학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지금까지의 경제학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현상을 잉태하고 있다. ‘노동 없는 노동시장’도 그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다루는 경제학으로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새로운 경제학, ‘한계비용 제로 경제학’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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