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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비단이의 묘생일기_(6) 종을 넘어선 우정은 이번 생의 선물

비단이의 마지막 일기입니다. 그동안 집사네 단체에 끌려와서 고생한(?) 비단이와 번역하느라 고생한(!) 조영미 회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는 언젠가 비단이에게 고급 밀당스킬을 배우러 가야겠습니다.

사진이 많습니다! 뭐 하나 빼기가 아까워 그냥 다 넣었습니다! [편집자주]

 

종을 넘어선 우정은 이번 생의 선물

 

글_ 비단(고양이)

번역_ 조영미(평등사회노동교육원 회원)

 

우리 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은신처를 만들어 산다. 그러나 나는 태어나보니 철망 안이었고 집사에게 입양된 후로 인간들이 사는 이라는 곳에서 산다. 집은 참 안락하다. 비와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고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 겨울엔 보일러를 틀어 따뜻하고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 시원하다.

 

비단이 생일축하! 아빠집사와 함께

 

집이 크고 안락하고 하이테크가 더해질수록 지구를 망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나뭇가지를 주워다 얼기설기 지었지만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심지어 태풍이 와도 부서지지 않는 까치집이나, 자연에서 어떤 것도 가져다 쓰지 않고 자신의 체액으로 집을 짓고 사는 벌과 거미가 인간들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이고 하이테크놀로지이며 미래지향적이고 진정한 미니멀리즘이다. 인간들은 좀 있어보이려고 갖다 붙인게 미니멀리즘인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집사 집이 세상제일 편한 비단

 

인간종들은 현재의 쾌락을 위해 500년이 가도 썩지 않을 물건들을 마구 만들어 내고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미래를 끌어다 쓴다. 파멸을 향해 경주하는 것처럼 멍청한 일이 있을까? 이 멍청한 짓을 하느라 (집사가 쓰는 용어로는 꼴값’) 지구에서 단체로 깽판을 치고 있는 인간들이 사는 집, 그 인간 집에 살면 늘 먹을 것이 널려있고 안전하고 안락하며 천국이 따로 없다. 이 맛에 들리니 나도 왜 인간들이 파멸을 향해 경쟁적으로 치닫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잠자는것도 집사닮아, 싱크로율 무엇?

 

인간집의 안락함은 태생적으로 타고난 노마드 기질을 포기하고 주어진 공간 한도내에서 평생 정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감수하는 댓가다. 우리 고양이들은(인간만 빼고 다른 동물들도 다 그렇지만) 어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그야말로 진정한 노마드 적인 삶을 살아간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놀고... 다른 생명체에 해 끼치지 않고 자연순환 원리에 따라, 지구 생태계를 어지럽히지 않고 산다.

 

간식 여깄는거 다 안다! 빨리 내놔라 집사!

 

인간들처럼 우리 고양이들도 사랑을 한다. 그러나 사랑만 하지 골치아프고 책임감만 주어지는 가정이라는 것을 꾸리지 않는다. (아, 또 빡친 기분이 밀려든다. 우리 집사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심지어 싫다고 발버둥치는 나를 제압하고 강제로 거세시킨 사실이 떠올라서다... 흑흑...) 인간들은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겠다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애당초 불가능한 약속(인간들은 이걸 '결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하는데, 문제는 식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서로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너는 왜 이러느냐 저렇게 해라 서로 속박하면서 또 왜 속박하냐고 으르렁댄다. 물론 이건 우리 집사들의 경우니 일반화하진 않겠다.

 

 

 

 

사랑의 결실에 대해서도 인간들은 이상하기 그지없다. 고양이들은 새끼가 독립할때까지 암컷과 수컷이 공동으로 책임지고 양육한다. 새끼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양육해 독립생활을 할수있도록 조상에서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삶의 지혜와 생존 기술을 가르치고 전수해 독립시키면 끝이다. 그러니 고양이의 자녀들은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다를 뿐 평등하고 우열이 없다. 그런데 인간들은 학교라는 곳을 보내 아이들에게 등수로 우열을 나누고 줄을 세운 다음 세상으로 내보낸다. 이 서열은 평생에 걸쳐 불평등하게 살게된다.

 

비단이의 육아, 육아는 힘들어

 

우리 고양이들에게도 서열(우열이 아닌)은 있다. 그러나 서열이 높다고 먹이를 더 많이 먹거나 자신의 먹이를 남의 손을 빌려 공양을 받거나 남의 먹이를 빼앗지 않는다. 암컷이건 수컷이건 자기 먹이는 스스로 사냥해 스스로 먹는다. 그런데 인간들은 소수 몇 놈이 먹이를 독차지하여 일부는 굶어 죽는데도 너무 많아서 바다에 버릴지언정 굶는 사람들에게 먹이를 나눠주지 않는다. 천하의 끔찍한 죄악이다.

 

#다른박스_아님_주의

 

또 손발 눈코입 멀쩡한데도 자기 입에 들어갈 먹이를 평생 남에 손에 의존해야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수컷이다. 우리 고양이들은 혼자 먹을 것을 독차지하는 냥아치 놈이 있다면 그 냥아치를 찾아가 냥펀치를 날려 혼쭐을 내고 다시는 못 그러게 만들어 동네 평화를 유지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몇놈이 먹이를 독차지하고 있는데도 그놈을 그냥 놔둔다. 아니 우상으로 떠받들며 서로 그렇게 되고싶어 난리다. 먹이를 독차지하는 악마같은 놈이 되고싶어 안달하는 건 인간종 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잘키운 나머지 거묘가 되었다

 

우리 집사들은 그 못된 놈들을 상대로 데모하러 다니는 모양인데 영 시원치 않아보인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상 데모를 했으면 뭔 사단을 내도 냈어야지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 집사 냉장고에도 먹을 것이 쌓여있는 상태가 문제인 듯 하다. 냉장고에 먹을게 없어야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텐데, 저렇게 먹을게 넘쳐나니 전투력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막둥이 혼내는(?) 비단이

 

먹이를 독차지한 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그 먹이를 서열에 따라 양을 달리해 나눠주는 방식인데, 그 떡고물을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포기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부양하는 것 만큼이나 힘든 정신승리를 해야 가능하다. 우리 집사가 그런 정신승리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멀은 것 같다. 다행히 우리 집사 주변에는 정신승리한 몇몇분이 계시고 그 분들과 친하게 지내다보면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긴하다.

 

19891111일 손가락을 째고 피로 노동해방이라는 글씨를 쓴 다음 그걸 들고 특정한 운율과 성조를 넣어 천만 노동자 단결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고 외쳤던 키 큰 할아버지가 정신승리의 대부라고 한다. 피부가 까맣고 구강돌출형이지만 그게 매력인, 지금은 철녀들의 영적 실천적 교주인 그녀도 20대 초반에 정신승리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하는 걸 보아 천재라서 일찍이 정신승리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 짐작엔 정신없는 써클에 들어가 정신없이 어울려 다니다보니 정신승리 한 줄도 모르고 정신승리를 한 경우로 보인다.

 

또 한사람, 우리 고양이들은 먹고하는 일이 햇볕 멍때리기다. 결코 조는게 아니라 심오한 우주의 이치를 사유하는건데 인간 언어로는 철학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자는 우리처럼 집에서 누워서해도 될것 괜히 지구를 반바퀴 돌아 먼 나라까지 가서 공부했다는데 거기서 무슨 이치를 터득했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지금은 작두콩 나무를 심고 기르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할아버지도 그중 하나다. 정신승리로치면 가히 무림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거기 사무국장인데 그녀는 초록색병 액체를 짝으로 마시고도 말짱하게 정신승리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남들은 다 맹구가 됐는데도 혼자 생글생글 웃으면서 끝가지 포커페이스 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철학하는 비단이와 누워있는 뚱냥이(..)

 

얘기가 한참을 삼천포로 갔다. 암튼,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 자유롭게 우주를 사유하며 노마드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고양이 공장에서 태어나 인간에게 포획되어 살게됐다. 인생이 여러번이라면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볼 수 있으니 억울할 거 없겠지만 딱 한번 뿐인 생이라면 이번 생은 최소한 노마드 적 삶으로는 망했다. 그래도 인간의 집을 통으로 점유하고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며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게 썩 나쁘다고만은 할수 없다. 이 추운 겨울에 길에서 저체온증으로 죽고 먹이가없어 굶어 죽거나 배고파서 먹이찾아 헤매던 길에 쌩쌩 달리는 차에 치여 죽는 길냥이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철학을 같이 해보는 뚱냥..아니 보리

 

지구상에서 가장 배타적이고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못된 동물이 인간이지만 그래도 나는 집사를 사랑한다.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고 쓰담쓰담 해주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특히 돼냥이 보리나 깨방정 봄이 보다 누가 봐도 티나게 나를 편애해주기 때문이다.

 

정신승리 한 분들이 모여있는, 그 단체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우리 집사가 나를 빙자해서 내 생각을 소개한다는데 집사가 내 말을 번역할 때 가끔 지 멋대로 해석해서 말하는 것 같으니 독자들께서는 그런 점을 감안하시고 오해 없으셨길 바란다.

 

보리 예쁨짤!

 

웹진 편집자는 나의 사진만 보고도 껌벅 넘어갔다던데... 수컷 대 수컷으로 한마디 하자면... 그렇게 쉬운 남자는 매력이 없다. 눈빛 발사 한번으로 올킬시키는 나의 고급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특별히 팬서비스로 차원으로 가르쳐줄 수 있다는걸 귀띔해둔다.

 

봄이도 예쁨짤!

 

집사가 50이 넘더니 세월이 너무 빨라 한 살 더 먹은 거 더하기도 안끝났는데 또 한 살 더 먹는 느낌이라고 투정이다.(내가 볼 땐 산수를 못하는 것 뿐이지만) 그런데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4배가 빠르다. 2022년엔 내가 집사 나이를 추월한다. 그리고 집사보다 먼저 고양이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집사는, 내가 늙어 먹이를 흘리고 배변 실수를 하고 치매가 와서 이상한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 할 것이다. 집사와의 이 특별하고도 달콤한 우정에 난 참 행복한 고양이다.


집사양반~ 이정도 발언에는 츄르가 몇 개?

 

다음에 또 만나자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