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쉬고 돌아온 노동인문학 입니다. [편집자주] |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로크 : 또 다른 자연상태의 인간
역사는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혁명은 반드시 반동을 부른다. 전진하려는 힘과 후진하려는 힘이 부닥치면서 피바람이 몰아치고,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비로소 역사의 진로가 결정된다. 지배세력이 호락호락하게 기득권을 내어주고 물러나는 역사는 없다. 역사는 시체의 산을 넘고 피의 강을 건너면서, 때때로 옆걸음과 뒷걸음도 치면서, 꾸역꾸역 전진해간다.
홉스가 <군주론>을 쓴 시기는 영국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상태가 지속되던 중이었다. 지배세력들 안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은 내전으로 치달았으며, 그야말로 아무도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던 때였다.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왕족과 가톨릭 세력은 ‘왕당파’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새삼 ‘왕권신수설’을 강조하였다. 그에 맞서서 중소지주집단과 종교개혁집단이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의회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신흥세력을 이끌면서 내전에서 승리한 크롬웰은 찰스 1세의 목을 자르면서 공화국을 선포한다. 중세 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왕권신수설과 세습권력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역사는 ‘청교도혁명’이라고 부른다.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홉스가 자임하고 나선 시대적 과제는 중세 천 년 동안 유지되어오던 정치질서의 사상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지속되어온 정치질서는 세습군주제였으며, 그것을 정당화시켜주는 최종논거는 <구약성경>의 창조론이었다. 홉스는 기존의 정치질서를 공격하기 위하여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이라는 두 개의 무기를 발명한다.
자연상태를 설명하면서 홉스는 중세 천 년 동안, 고래심줄보다 질기게, 인간들을 옭아매어온 ‘핏줄’이라는 끈을 끊어버렸다. 그에 따라 자연상태의 인간들은 저마다 고립적 원자(原子)로 존재했다. 그런 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원자들에게 단지 두 가지 자연적 본성만 부여하였다. ‘육체성’과 ‘이성(=정신성)’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본성도 ‘아무개의 자식’이라는 본성도 벗어던지게 된다.
홉스가 상정한 자연상태에서 인간원자들 사이의 마주침은 우연적으로 발생했으며, 필연적으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로 치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상태는 아무도 자신의 생명을 안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에 따라 노동도 사유재산도 기술도 산업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근로의 여지가 없다. 토지의 경작이나 해상무역, 편리한 건물,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기계, 지리에 관한 지식, 시간의 계산도 없으며, 예술이나 학문도 없다. 사회도 없다. 끊임없는 공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다. (홉스, 리바이어던, 172쪽)
이런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계약을 통하여 절대권력을 가진 통치자를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이라고 이름붙인 절대권력자는 심지어 국민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하여 국민들은 통치자에게 저항할 권리가 없었으며, 통치자가 허용해주는 범위 안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런 뜻으로 홉스는 통치자 한 사람만 ‘주권자’(sovereign)로 보았고, 나머지 모든 인간들은 ‘통치대상’(subject)으로 보았다.
이처럼 통치자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면서 홉스는 자신의 주장이 여러 가지 반론에 부닥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홉스가 모든 반론에 맞서서 미리 제출한 대답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었다. “생명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덜 소중한 것들은 모두 포기할 수 있다.”
주권자의 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권력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것은 주권이 군주정처럼 한 사람의 손에 있건, 민주정 혹은 귀족정처럼 합의체에 있건 다르지 않다. 이처럼 무제한적 권력이라면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권력의 부재로 인해 생기는 결과들, 즉 만인이 자기의 이웃과 전쟁상태에 있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더 낫다. (홉스, 리바이어던, 277쪽)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도달한 종착점은 다시 절대군주제였다. 이런 점을 두고 보자면, 그의 사회계약론은 중세 정치질서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근대사회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정립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요구되었다. 두 번째 사회계약론을 들고 나온 사람은 존 로크였다.
로크가 <통치론>을 쓴 시기는 영국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소용돌이치던 때였다. 크롬웰이 죽자 공화정도 무너지고, 반동의 시대가 시작된다.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돌아온 찰스 2세는 왕정을 복고하면서 다시 왕권신수설을 치켜들었다. 그를 세습한 제임스 2세도 절대군주로 자처했다. 그가 죽은 뒤 영국은 다시 한 번 자연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때 왕당파와 의회파는 한 세대 전에 그들이 넘었던 시체의 산과 그들이 건넜던 피의 강을 기억하였고,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권력을 나눠먹기로 타협한다. 입헌군주제 정치질서를 정립하기로 한 것이다. 그에 따라 구세력은 세습재산을 보존할 수 있게 되고, 신흥세력은 영업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얻게 된다. 이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정치질서의 전환에 성공했다고 하여 역사는 이 사건에 ‘명예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크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에 담겨 있는 오류를 비판하는 데서 자신의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정립해나간다.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세계의 유일한 지배형태로 간주되는 절대군주제란 실로 시민사회와 양립불가능하며, 따라서 결코 시민적 지배형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 절대군주제의 상황은 마치 인간이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상태로 들어가면서,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법률의 구속 하에 있어야 하지만, 그 한 사람만은 자연상태에서 누리던 모든 자유를 여전히 보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권력에 의해서 증대시키고 또 무절제하게 사용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인간이 스컹크나 여우로부터 받을 수도 있는 작은 해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을 하면서도,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데는 만족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안전하다고 여길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크, 통치론, 90절, 93절)
로크는 절대권력자가 없는 세상을 건설하고 싶었다.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정립하자면 먼저 자연상태를 새로 설명해야 했다. 로크는 구약성경 <창세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을 짬뽕하여 자연상태를 설명하였다.
신은 인간을 다음과 같은 피조물로 만들었다. 그는 인간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필요, 편리, 성향이 강력히 요구하는 것을 통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생활을 하도록 만들었으며, 나아가 이해력과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생활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도록 만들었다. 최초의 사회는 남편과 아내의 사회였으며, 그로부터 양친과 자식 간의 사회가 비롯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기에 주인과 노예 간의 사회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회들이 통상 한데 합쳐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하나의 가족이 형성되었다. 그 안에서 가족의 주인과 여주인이 가족에 적합한 모종의 지배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회의 각각이나 또는 한데 합쳐진 것이나 각 사회의 목표, 결합방식 및 한계를 고찰해보면 정치사회에는 미흡한 것이었다. (로크, 통치론, 77절)
앞서 말한 적이 있듯이, 자연상태에 대한 설명은 실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한 설명에 다름 아니다. 홉스는 인간에게서 두 가지 자연적 본성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육체성과 이성이다. 그는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로 보았다. 그에 반하여 로크는 인간에게서 세 가지 자연적 본성을 찾아내었다. 육체성, 이성, 사회성이다. 그는 인간을 ‘생각하는 사회적 동물’로 보았다.
홉스를 따르자면, 사회계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동물적인 자연상태만 존재했다. 거기에는 가족도, 산업도, 노동도, 재산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하여 로크를 따르자면, 사회계약이 체결되기 전에도 이미 사회가 존재했다. 노동과 산업과 재산도 존재했다. 다만 거기에는 개인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평화를 보장해줄 수 있는 공적인 제도와 기관이 없었을 뿐이다.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결사체를 결성한 자들로서, 그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공통의 확립된 법과 재판소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시민사회에 있다. 그에 반하여 지상에서 그처럼 공통된 호소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은 달리 재판관이 없으므로 여전히 각자가 자기를 위한 재판관이자 집행자인 자연상태에 머물러 있다.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각자 모두 자연법의 집행권을 포기하여 그것을 공공체(the public)에게 양도하는 곳에서만 비로소 정치사회(political society) 또는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존재하게 된다. (로크, 통치론, 87절, 89절)
이런 이유로 로크는 홉스와 전혀 다른 사회계약론을 제안한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전쟁상태를 끝내고 평화상태를 조성함으로써 개인의 생명권을 보장받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중세-근대 전환기를 주도하고 있던 신흥세력은 요런 정도의 사회계약에 만족할 수 없었다. 로크는 신흥세력의 기대에 맞추어 사회계약의 목표를 확장하였다. 그는 ‘재산권의 보장’을 새로운 사회계약의 목표로 내세웠으며, 생명권도 재산권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로크의 새로운 사회계약 사상은 그 뒤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근대 국가의 이론적 토대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그 뼈대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개인의 생명, 자유, 자산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을 국가의 존재이유로 삼아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상이다.
만약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이 그토록 자유롭다고 한다면, 만약 그가 자신의 인신과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며, 가장 위대한 사람과도 평등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체 왜 그는 그러한 자유와 결별하는 것일까? 왜 그는 그와 같은 지배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타인의 권력의 지배와 통제하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 자연상태에서 그는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향유가 매우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침해할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와 마찬가지로 왕이고, 모든 사람이 그와 평등하며, 그들 대부분이 형평과 정의의 엄격한 준수자들이 아니므로, 그가 그런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의 향유가 매우 불안하고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비록 자유롭지만 두려움과 지속적인 위험으로 가득 찬 이런 상황을 기꺼이 떠나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결합되어 있는 또는 그럴 생각이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생명(life), 자유(liberty), 자산(estate), 즉 내가 ‘재산(property)’이라는 일반적 명칭으로 부르는 것의 상호보존을 위해서 사회를 결성할 것을 추구하거나 기꺼이 사회에 가입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스로를 정부의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가장 크고 주된 목적은 그들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로크, 통치론, 123~124절)
로크의 새로운 사회계약론은 의회주의, 다수결주의, 삼권분립, 저항권 등을 새로운 정치질서의 주요원칙으로 제안하였다. 실제로 근대 자유주의 정치질서는 로크가 정리한 이런 원칙들을 주춧돌로 삼아 세워졌는데, 그 원칙들은 약간의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하나하나 모두 인류 역사의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들이지만, 나의 관심은 오히려 딴 데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만 해두고 건너뛰기로 하자.
노동해방의 관점에서 보자면, 로크에게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으로는 그가 서양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을 모든 가치와 재산의 원천으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논증하려고 했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로크의 노동가치론은, 아마 그는 그 의미를 마저 깨닫지 못했겠지만, 실은 중세의 정치질서뿐만 아니라 경제질서를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일대사건이었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사회의 상부구조를 건드리는 데 머물렀다면,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구조를 뿌리까지 뒤흔드는 것이었다.
로크는 노동가치론을 독립된 이론으로 전개한 것이 아니라 실은 새로운 사유재산이론을 논증하기 위한 부속이론으로 개발하였다. 사유재산이야말로 중세-근대 전환기의 신흥세력이 기득권세력을 능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재산을 모으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힘을 키울 수 있었으며, 마침내 기득권세력에게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사유재산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유재산권 이론이야말로 당시 신흥세력이 가장 갈구하던 것이었다.
중세 천 년 동안 유지되어온 재산권은 세습재산권이었다. 왕의 신분이 핏줄을 따라 세습되었듯이, 재산도 신분과 핏줄에 따라 세습되었다. 달리 말해서, 신분과 핏줄이 재산권의 유일하고 정당한 근거였다. 그런데 신분과 핏줄은 신흥세력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도, 자신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신흥세력에게는 새로운 근거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때 로크가 그것을 제시하며 나선다. “모든 재산의 정당한 근거는 노동이다!”
이 주장은 매우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그때까지 세상의 지배세력이 누려오던 모든 재산은 실은 부당한 재산으로 고발당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세습재산은 불로소득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유재산은 도둑질한 것이다.” 뒷날 프루동이 수행하게 되는 저 유명한 고발도 그 연원을 따라서 올라가보면 로크의 노동가치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해방의 역사에서 로크가 남긴 불멸의 공적으로는 노동을 인간본성의 표출로 간파한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서슬 푸른 칼날을 피하기 위하여 여전히 <구약성경>의 권위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노동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조건으로 파악하였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로크는 노동을 소유권의 유일하고 정당한 원천으로 주장함으로써 중세 불로소득 지배계급의 정당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하느님께서 세계를 모든 인류에게 공유로 주셨을 때, 또한 그는 인간에게 노동할 것을 명했고, 인간은 자신이 처한 궁핍한 상황으로 인해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과 인간의 이성은 인간에게 대지를 정복할 것, 곧 삶에 이익이 되도록 그것을 개량하고 그것에 그 자신의 것인 노동을 첨가할 것을 명하였다. 하느님의 이러한 명령에 복종하여 토지의 일부를 경작하고 씨를 뿌린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그의 소유인 무엇인가를 그 토지에 첨가한 셈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은 그것에 대한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고자 한다면 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로크, 통치론, 32절)
로크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자연적 본성에 따라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이 곧 소유권이 발생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면 지금부터 그가 노동을 근거로 삼아 소유권을 논증하는 대목을 읽어보자.
자연의 이성은 인간이 일단 태어나면 자신의 보존에 대한 권리, 따라서 고기와 음료, 기타 자연이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제공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가르친다. 또한 다윗 왕이 “하느님께서 땅은 사람들에게 주셨다”(시편 115장 16절)라고 말한 것처럼, 신이 그것을 인류에게 공유물로 준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점을 가정하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느 사물에 대해서 어떻게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질문인 것처럼 보인다. … 나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공유물로 준 대지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그것도 공유자들간의 명시적인 협정이 없이 그것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
대지와 그것에 속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부양과 안락을 위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대지에서 자연적으로 산출되는 모든 과실과 거기서 자라는 짐승들은 자연발생적인 작용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에 인류에게 공동으로 속한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자연적인 상태에 남아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사적인 지배권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용하도록 주어진 이상, 특정한 사람이 그것들을 특정한 용도에 맞게 사용하거나 그것들로부터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수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마땅하다. 야생의 인디언을 먹여 살리는 과일이나 사슴고기가 그의 삶을 지탱하는데 유용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떠한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는, 곧 그 자신의 일부인,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
비록 대지와 모든 열등한 피조물은 만인의 공유물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person)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관해서는 그 사람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신체의 노동과 손의 작업은 당연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 둔 것을 그가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엇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탠다면, 그럼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서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엇인가를 가지게 되며,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타인의 공동된 권리가 배제된다. 왜냐하면 그 노동은 노동을 한 자의 소유물임이 분명하므로, 타인이 아닌 오직 그만이, 적어도 그것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공유물들이 충분히 남아있는 한, 노동이 첨가된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떡갈나무 밑에서 주운 도토리나 숲속의 나무에서 딴 사과를 섭취한 사람은 확실히 그것들을 그 자신의 것으로 수취한 사람이다. 그가 섭취한 것이 그의 것임을 어떤 사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묻겠다. 언제부터 그것들은 그의 것이 되었는가? 그가 소화했을 때? 아니면 그가 먹었을 때? 아니면 그가 삶았을 때? 아니면 그가 그것들을 집에 가져왔을 때? 아니면 그가 그것들을 주웠을 때? 그런데 그가 그것들을 처음으로 주워 모았을 때 그의 것이 되지 않았다면, 그 밖의 다른 어떤 행위도 그것들을 그의 것으로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한 노동이야말로 그것들과 공유물 간의 구별을 가져온다. 노동이 만물의 공통된 어머니인 자연보다 더 많은 무엇을 그것들에 첨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그의 사적인 권리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수취한 도토리나 사과에 대해서, 그가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인류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어느 누가 말할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속하는 것을 자신이 그렇게 차지하는 것은 강탈인가? 만약 그런 동의가 필요했다면, 인간은 신이 모든 것을 충분히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굶어 죽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성의 법에 의해서 사슴은 그것을 죽인 저 인디언의 것이 된다. 그 전에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권리였지만, 이제 그것에 그의 노동을 첨가한 사람의 재물이 되는 것이 허용된다. 그리고 이른바 문명화 된 인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온 사람들, 곧 소유권을 결정하기 위해서 실정법을 제정하고 증가시켜 온 사람들 간에도 소유권의 시작에 관한 이러한 원초적 자연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로크, 통치론, 25~28절, 30절)
로크가 볼 때, 노동은 소유권의 유일하고 정당한 근거일 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인간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이다. 가치의 형성에서 자연이 차지하는 몫은, 또는 달리 말해서, 자연을 창조한 신이 차지하는 몫은, 10분의 1은커녕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실로 모든 사물에 상이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노동이다. 어느 누구든 담배나 사탕수수를 심고, 밀 또는 보리의 씨를 뿌린 1에이커의 땅과 아무런 경작도 없이 방치된 동일한 크기의 공유지 간의 차이를 고려해보라. 그러면 그는 노동에 의한 개량이 가치의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에 유용한 토지 생산물 중에서 10분의 9가 노동의 결과라고 말해도 그것은 대단히 낮추어 잡은 계산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사물이 우리의 사용에 이바지하는 바에 따라 그것들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순전히 자연에 속하는 것과 노동에 속하는 것들에 관한 몇 가지 비용을 계량해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100분의 99가 전적으로 노동에 의해 발생한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좀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생활의 일상적인 필수품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게 되는가를 살펴보고, 그것들이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가치를 얻게 되는가를 알아보도록 하자. 빵, 포도주, 직물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자이며 풍부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이 우리들에게 그같이 유용한 필수품들을 제공해주지 않았더라면 도토리, 물, 잎사귀나 가죽이 우리의 빵, 음료, 옷으로 남아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빵이 도토리보다, 포도주가 물보다, 직물이나 비단이 잎사귀, 가죽, 또는 이끼보다 얼마나 더 가치가 나가든, 그것은 전적으로 노동과 근면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들 중 한 편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한 식품과 옷이며, 다른 한 편은 우리의 근면과 노고가 우리에게 마련해준 것이다. 그런데 후자가 전자를 그 가치 면에서 얼마나 많이 초과하는가를 계산해보면, 노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향유하는 사물의 가치 중 얼마나 큰 부분을 창출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자원을 생산하는 땅은 얼마나 적은 가치만을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먹는 빵의 가치를 계산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경작하는 자의 수고, 수확하는 자와 타작하는 자의 노고, 그리고 제빵공의 땀뿐만 아니라, 황소를 길들인 사람들, 철과 광석을 캐내어 제련한 사람들, 쟁기, 제분소, 화덕 그리고 곡물의 씨를 뿌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빵이 될 때까지 필요한 다른 많은 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를 베고 다듬은 사람들의 노고가 모두 노동으로서 평가되어야 하며, 그 결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자연과 대지는 그 자체로서는 단지 거의 무가치한 재료를 제공할 뿐이다. 모든 빵 조각에 대해서 그것이 사용될 때까지 노동이 제공하고 활용한 물자들을 우리가 추적한다면, 그것은 실로 사물의 엄청난 목록이 될 것이다. 철, 나무, 가죽, 나무껍질, 목재, 돌, 벽돌, 석탄, 석회, 옷, 염색약, 역청, 타르, 돛대, 밧줄, 그리고 노동자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을 작업장까지 가져오는 배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들 등등, 그 목록은 너무 길어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로크, 통치론, 40절, 42~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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