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부터 격월로 경남 이장규 회원의 <건강과 진보>를 연재합니다. 이장규 회원은 민주노동당 경남도지부 정책위원장,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건강정보가 아닌 사회권으로서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숱한 요청에 못이겨(?) 연재를 시작해주신 이장규 선배님께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편집자주] |
건강은 사회적이며 평등과 직결된다
이장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남 회원, 한의사
건강 칼럼이지만, 단지 개인의 건강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건강과 관련된 정보는 넘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확실하거나 비과학적인 정보도 많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과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지나친 건강염려증 및 그로 인한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윤을 쫓는 의료산업 및 각종 건강 관련 산업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물론 그렇다고 건강 관련 정보가 아예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 가령 정신적인 문제 등은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데도, 사회 분위기 등으로 인해 제대로 상담 및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 외에도 일상적인 과로나 스트레스 등 건강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선 역시 사회적인 분위기 등으로 인해 평소엔 큰 관심이 없다.
평소의 관리가 중요한데도, 그런 건 별로 ‘돈’이 되지 않으니까 크게 이야기되지 않고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약이나 영양제 등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질병이 본격화하기 전에 다스려야 함에도 방치하고 있다가 아프고 나서는 ‘명의’ 내지 ‘최고의 병원’을 찾는다. 이것 또한 사실은 예방 내지 일차의료보다 더 돈이 되는 치료 내지 고급의료 위주로 의료체계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평소의 관리와 관련해서, 한 가지를 우선 강조하고 싶다. 흔히 담배가 만병의 근원이라지만 담배만큼 해로운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건 각종 스트레스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코르티졸 등의 항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런데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게 지속적으로 분비되면 우리 몸의 온갖 부분에 악영향을 미친다. 혈압이 오르고 각종 심장병의 위험이 높아진다. 식욕이 증가하여 비만을 유발하며, 쉽게 지치게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호르몬의 농도가 높으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이 저하므로, 각종 감염성 질병이나 자가면역질환에 잘 걸리게 된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기능 저하가 온갖 질병을 불러오는 것이니, 가히 만병의 근원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이런 스트레스는 성격 등 개인적인 요인도 작용하지만, 불평등한 인간관계 등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본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이다. 불평등한 사회나 인간관계가 지속되고 공동체가 아닌 개인적 책임만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그만큼 스트레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형식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입증된다. 사회의학의 대가인 월킨슨이 쓴 ‘평등해야 건강하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각종 데이터로 보여주는 것이다. 불평등의 피해자인 가난한 사람들만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부자들조차, 기본적인 의료시설이 충분하지 않거나 생활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보다 소득이 적더라도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의 사람들보다 건강이 더 안 좋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인 윌킨슨은 불평등하고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그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에선 부자들조차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격렬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좋은 인간관계 따위는 아랑곳없이, 모두를 경쟁상대로 보면서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과도한 육체적 및 정신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가 부자들조차 병들게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로 ‘로세토 효과’라는 것도 있다. 로세토는 미국 펜실바니아주 북부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이탈리아에서 온 이주민이 대부분인 가난한 마을이었는데도 건강과 관련해서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심장병 위험도가 높은 연령대인 55세에서 64세 사이에 로세토 사람들이 심장병으로 사망한 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65세 이상의 사망률 역시 전국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았으며 전체 사망률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낮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기존의 의학상식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로세토 사람들은 매일 기름진 음식을 먹었고 음주와 흡연도 심한 편이었다. 흔히 심장병에 안 좋다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로세토 사람들이 심장병 등 각종 성인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마을 공동체의 힘이었다. 로세토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 협동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정신적인 평온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각종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나쁜 생활습관에도 불구하고 건강했던 것이다.
이후의 결과도 흥미롭다. 60년대 이후 로세토에서도 그간의 생활방식이 쇠퇴하고 다른 미국사회처럼 경쟁과 성공을 좇게 되면서 마을 공동체가 사라졌다. 그 결과 로세토 효과는 사라지고 건강 등 각종 사회지표는 다른 동네와 비슷한 수준으로 후퇴했다. 공동체의 파괴로 인한 삶의 불안과 각종 스트레스가 건강도 파괴한 것이다.
소개한 두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평등한 사회관계 특히 마을 공동체 등 서로를 지지해주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런저런 개인적인 건강관리보다도 건강에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평등한 공동체적 관계 즉 좋은 사회가 구성원의 건강도 지켜준다.
건강은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며 평등한 사회가 곧 건강한 사회이기도 하다. 평등한 사회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본인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지는 않는 것이 꼭 필요하다. 브레히트의 시 구절대로 ‘친절함의 바탕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이 스스로에게는 친절하지 못했다’면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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