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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진보] 실손의료보험을 이대로 둘 것인가

이장규 회원님의 <건강과 진보> 입니다. [편집자주]

 

실손의료보험을 이대로 둘 것인가

 

이장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남 회원, 한의사

 

한국 의료 시스템은 손쉽게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한국 의료가 온갖 문제점만 있는 듯이 말하고, 또다른 일부에서는 한국 의료는 상대적으로 매우 좋은 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양쪽 모두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만 가져와서 그렇게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의료는 생각보다 장점도 많고 그만큼 문제점도 많다. 더 중요한 것은 장점과 단점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은 단점을 감수한 결과라는 측면이 강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우선 장점을 생각해보자. 한국 의료는 적어도 도시 지역일 경우 의료기관 접근성이 매우 좋다. 쉽게 말해 누구나 병원에 가서 특별한 대기시간 없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대형병원 등 상급의료기관도 동네 의원보다는 시간이 걸리지만 상대적으로 진료받기 쉬운 편이다. 또한 적어도 급여 항목과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진료비 부담이 높지 않은 편이다.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율도 나쁘지 않거니와, 본인부담상한제 등이 있어서 적어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부분에서는 본인부담이 많다고 말하기 어렵다.

 

본인부담이 높지 않다고 말하면, 실제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여전히 큰 병이 걸렸을 때는 상당한 의료비 부담이 있고, 가계가 파탄날 정도인 경우도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이른바 비급여 항목 때문이다. 병원에 내는 돈은 전부 한꺼번에 묶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있다. 그런데 급여 항목은 진료비(수가)가 정해져 있으며 본인부담 비율도 정해져 있다. 본인부담금 빼고는 전부 건강보험에서 나머지를 내고, 앞서 말했듯이 본인부담금도 1년에 일정금액(소득에 따라 다르다) 이상이면 다음 해에 돌려받는다.

 

문제는 비급여 항목이다.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지 않으며, 전액 본인부담이다. 게다가 이건 진료비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병의원에서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 있다. 비급여 항목도 다시 법정비급여와 임의비급여로 나누어지는데, 법정비급여는 의학적으로 효과는 있지만 필수적인 의료행위는 아닌 경우이며 임의비급여는 의학적인 효과와 관계없이 일종의 편의를 위한 행위인 경우다. 예를 들어,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 등은 주로 법정비급여이고, 간병비가 대표적인 임의비급여이다. 사실 간병비가 임의비급여인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긴 하다. 큰 병 걸렸을 때 간병은 거의 필수인데도, 가족주의를 전제로 하는 한국 시스템에선 간병은 가족이 하는 것이니까 간병인을 쓰는 것은 보호자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필수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의료비는 간병비다. 간병에 지쳐 노부모를 살해하는 등 이른바 간병살인이 종종 일어날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며, 간병비는 본인부담 비율을 높이더라도 급여 항목에 편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높은 접근성과 상대적으로 싼 급여 항목 진료비라는 한국 의료의 장점은 바로 단점과 직결된다. 우선 급여 항목 진료비가 싸기 때문에, 적어도 급여 항목만 따지면 환자 1명을 진료했을 때 병의원이 환자 및 건강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1인당 단가는 그리 높지 않다. 이른바 의료수가가 싼 편이다. 이건 의사들의 주장이지만, 이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급여 항목은 대부분 필수의료인데, 필수의료 가령 수술 등이 필요한 중증 질환이나 분만 등에 책정된 의료수가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의사들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급여 항목에 대해 1인당 단가가 싸다는 것이지, 총수입을 늘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환자를 많이 보고 자주 병원에 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3분 진료니 매일 병원에 오게 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한 번 왔을 때의 단가는 싸지만 환자 숫자와 진료 횟수를 늘리면 되니까. 또한 일단 왔을 때 급여 항목이 아닌 각종 비급여 진료 대표적으로 이런저런 검사 등을 권한다. 비급여 항목은 고스란히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효과가 있긴 하지만 급여 항목일 필요까지는 없는 것들이 있다. 가령 정형외과의 도수치료나 안과의 노인성 백내장 수술 같은 것이다. 도수치료는 사실은 일종의 마사지다. 물론 의사의 지시에 따른 물리치료사의 마시지이므로 일반인의 마사지보다는 효과가 좀 더 좋긴 하지만, 비싼 진료비를 내면서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노인성 백내장도 심한 경우는 수술이 필요하지만 가벼운 백내장은 사실 수술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런 것들을 모두 급여 항목 즉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기는 어려우므로 이런 의료행위들은 비급여 항목으로 되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비급여 항목의 진료를 많이 하면 이는 고스란히 병의원의 수입이 된다. 특히 가격을 병의원에서 정하므로 환자만 많으면 막대한 수입도 가능하다.

 

필수의료는 상대적으로 싸고 비급여 진료가 오히려 돈이 훨씬 더 되니까, 의사들이 대부분 그 쪽을 희망한다. 그래서 외과나 산부인과 등은 별로 인기가 없고 성형외과나 정형외과, 안과 및 피부과 등 비급여 진료가 많은 진료과목들에 전문의가 몰린다. 해당 과목 전문의가 아닌 사람들조차 개업하면 이런 분야의 진료를 위주로 하는 경우도 많다. 즉 정말 필요한 필수의료나 지역의료에는 오히려 의사가 부족한데, 비급여가 가능한 비필수의료 쪽으로 의사가 집중되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공공병원의 비중이 극히 적으며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인 한국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결국 한국 의료의 장점이 이런 문제점 내지 단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을 더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임에도 별로 논의가 되고 있지 않은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실손의료보험의 문제이다. 각종 검사나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은 사실은 지금처럼 대폭 팽창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비급여 항목은 가격 통제가 없으므로, 원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병원비 부담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게 별 부담이 아니게 되었다. 노인이나 저소득층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해있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은 비급여 항목도 보장해주므로 (다만 간병비 등 임의비급여는 실손에서도 보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보험회사에서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각종 비급여 진료를 손쉽게 선택한다. 이 중 상당수는 사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아예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임에도 자신이 돈을 내지 않으니까 별로 신경 안 쓰고 병의원은 수입을 위해 이를 쉽게 권한다.

한 마디로 실손의료보험은 과잉의료의 주범이다. 그러다보니 총의료비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총의료비는 아직은 OECD 평균 수준이지만, 그 증가속도가 OECD에서 가장 빠르다. 물론 이는 꼭 실손의료보험 때문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노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비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노인들인데,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기 때문에 총의료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는 하다. 하지만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른 의료비 증가는 당장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노인이 아닌 중장년 이하에서도 총의료비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상당 부분 실손의료보험 때문이다. 안 그래도 노령화 때문에 의료비 증가 속도가 빠른 판에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총의료비 자체가 증가하다보니 건강보험 보장률도 거의 제 자리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5% 좀 안 되는 수준에서 10년 이상 정체되어 있다. 일부에선 이것 때문에 보장률을 좀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실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져서 80%를 넘는다 (물론 간병비 등 임의비급여가 제외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즉 간병비를 제외한다면 큰 병 걸렸을 때의 보장률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문제는 지금까지 말했듯이 총의료비 즉 분모 자체가 빠르게 증가하다보니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 즉 분자를 늘려도 전체 보장률은 제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다.

 

실손의료보험에 의한 과잉의료를 통제해야 한다. 오히려 정말 문제가 되는 간병비를 급여 항목으로 포함시키기 위해서라도, 건강보험 재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 즉 실손의료보험을 들게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더 낼 생각을 해야 한다. 게다가 실손의료보험은 노인이 되면 보험료가 너무 비싸져서 들지도 못한다. 정말 필요할 때는 들지도 못하는 실손의료보험에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공공보험인 건강보험을 제대로 강화시키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도 훨씬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