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회원님의 <건강과 진보> 입니다. [편집자주] |
한국은 의료 과소비 국가이다
이장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남 회원, 한의사
지난 번 칼럼에서 실손보험 등으로 인한 지나친 의료수요 증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한국의료와 관련된 각종 문제점들 중 매우 중요한데도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지나친 의료수요 증가이다. 의사도 총수입이 올라가므로 별로 언급하지 않고, 국민들도 병원 가서 이런저런 의료서비스 받기가 편하니까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실손보험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가격 부담도 별로 없으므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의료수요를 억제하지 않으면 결국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교육 문제에서 잘 드러났다. 학벌이 최우선되는 사회에서, 대학교육의 수요는 폭증했으며 그렇다고 사교육비 부담이 준 것도 아니었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사교육의 수요는 예전보다 더 늘어났다. 한국의 사교육비를 포함한 교육비 부담은 전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저출생 현상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식이 자립할 때까지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너무 많으니까 아이 낳기를 꺼리게 된다.
의료에서도 이미 교육과 비슷한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진료일수 등 의료수요 관련 지표는 OECD 최고 수준이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4.7회로서, OECD 회원국들의 평균 5.9회의 2.5배에 달한다. 입원일수도 입원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수가 19.1일로서, OECD 평균인 8.3일의 2.3배이다. 실손보험으로 들어가는 돈을 합치면 평소에 의료 관련 대비용으로 지출하는 비용도 결코 적지 않다. 게다가 상급종합병원에 상대적으로 가기가 쉬우므로 사람들의 대부분은 웬만하면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진료받기를 원한다. 병원도 확실히 서열화되어 있어서, 대형병원은 수요가 폭증하고 지방의 중소병원은 유지에 급급한 상황이다. 수요 증가와 서열화 및 사적 비용 증가라는 구조는 교육과 의료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의료비 증가는 급속한 노령화 때문에 상당 정도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의료 소비는 일종의 과소비라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 번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각종 비급여 행위가 너무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각종 미용 시술이나 성형 등도 외국에 비해 매우 많이 이루어지는 편이며, 도수치료나 인공관절 및 백내장 수술 등 효과는 있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의료행위 역시 외국에 비해 매우 많이 이루어진다. 또한 각종 장비 등을 활용한 이런저런 검사도 매우 많은 편이다.
다른 건 몰라도 검사는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특히 그리 흔하지 않은 질병을 찾아내기 위한 검사는 오히려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시행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갑상선암을 찾아내기 위한 검사들이 그렇다. 갑상선암의 유병율은 대략 0.6% 정도이다. 그런데 어떤 검사든 검사는 100% 정확한 것이 아니다. 병이 걸렸는데도 안 걸렸다고 잘못된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그 반대 경우도 많다. 즉 안 걸렸는데 검사 결과는 걸렸다고 나오는 것이다.
간단한 수학 문제를 한 번 풀어보자. 만일 어떤 사람이 갑상선암에 걸렸을 경우 양성이 나올 확률은 95%이다. 한편 어떤 사람이 갑상선암에 걸리지 않아도 양성이 나올 확률은 5%이다. 한편 갑상선암의 유병률은 0.6%이다 (이 수치들은 실제 데이터와 비슷하다). 이제 한 사람에게 갑상선암 검사를 했더니 양성이 나왔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이 실제로 갑상선암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쯤 될 것 같은가?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으니 잘못 판단될 경우를 감안해도 절반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제 정답은 전혀 다르다. 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유병률이 0.6%이므로 60명이 실제로 환자이다. 이 중 95%인 57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다. 한편 환자 아닌 9940명 중 5%인 497명도 양성 판정을 받는다. 결국 양성 판정을 받은 554명 중 57명이 진짜 환자이므로 기껏 10%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굳이 검사를 받거나 그러지는 않기 때문이다. 뭔가 약간이라도 관련 증상이 있거나 그럴 때 검사를 하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기껏 10%만이 진짜 환자이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아서 우리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일부는 실제로는 환자가 아닌데도 치료를 받게 된다. 즉 유병률이 높지 않은 질환에 대해 검사를 남발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관련 증상이 뚜렷해서 확실히 의심할 정도가 될 때 검사하는 것만으로 대개는 충분하다. 갑상선암처럼 진행이 느린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갑상선암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것도 그런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들이 자주 이루어진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비급여 검사라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거니와, 급여라도 검사를 하는 것이 훨씬 수가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수가는 한국의 노동 천시를 그대로 반영한다. 의사의 노동력과 전문성에 대한 댓가 즉 1회당 진료비는 상대적으로 싸고, 뭔가 장비를 이용해서 검사를 하거나 그래야만 수가가 높아진다. 그러다보니 한국 병원의 MRI나 CT 등 고가장비 보유량도 외국에 비해 매우 많다. 기본적인 장비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판단하는 것보다 비싼 장비 사용해서 검사하는 것이 돈이 훨씬 더 되니까 다들 그렇게 한다. 게다가 환자들도 이걸 바라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검사로 질병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건 병원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심각한 질환을 제외하면 대개의 질환은 수술 등 본격적인 의료행위보다 일상적인 관리가 더 중요하다. 그냥 좀 더 쉬고 좀 더 무리 안 하고 그렇게만 해도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프다고 직장을 며칠 쉬거나 무리를 안 하는 게 어렵다. 그러다보니 평소에는 제대로 관리를 안 하다가 뭔가 안 좋아지면 돈을 들여서라도 최대한 빨리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더 큰 병원과 명의를 찾는다. 주치의 제도 등 평소에 자신의 건강관리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결국 스스로 질병을 악화시켜 가면서 돈을 벌다가 그 돈을 다시 의료비나 사보험비로 쏟아붓는 셈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의료 문제는 결코 의료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 천시와 과소비라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의료 분야에서도 그 폐해는 비슷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노동 천시와 과소비는 결국 비용 절감과 이윤 실현이라는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자본의 폭주를 제어하지 않으면 의료 문제도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은 공공의료의 비중이 극히 적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자본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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