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근래 미조직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직장갑질119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주] |
2022년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고를 통해 보는 노동현장
신지영
직장갑질119 상근활동가
대표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을 들으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단톡방에서 지속적으로 저에 대한 인신공격 및 폭언을 합니다. 본인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 정도면 동물도 알아먹겠다”, “1년 동안 뭘 배워먹은거냐”며 반말로 인신공격합니다. 전화상으로 개새끼, 시발과 같은 욕설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cctv로 지속적인 업무지시와 근태에 대해 폭언으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일상생활이 힘듭니다. 괴롭힘 신고를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2022년 10월, 이메일 상담)
한국은 2019년 7월 16일, 동양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보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법률로 명시 및 금지하고,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의무 등을 규정함으로써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한다고 법의 취지를 명시하고 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일터의 인권 보호법이다. 임금체불, 해고와 같은 근로조건 위반과 마찬가지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도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그런 취지를 고려하면, 위에 제시된 사례의 일방적인 반말, 폭언과 욕설, 업무 감시는 명백히 직장 내 괴롭힘이다. 게다가 대표, 즉 사용자의 괴롭힘이다. 우리 법은 일터에서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괴롭힘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가진 사용자가 오히려 괴롭힘을 했을 때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 사례의 상담자에게 우리는 “증거를 모아 노동청에 신고하면 사용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니 신고하세요”라고 대답해줄 수 없었다. 바로 상담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일터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이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인권은 보호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인걸까? 아니다.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2022년 12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비율은 5명 중 1명꼴이었다(23.5%). 핵심은 괴롭힘의 양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괴롭힘을 한 행위자는 사용자가 28.9%로 가장 많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장의 괴롭힘은 더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뿐만 아니라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장이 괴롭혀도 해고를 당할까봐 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장인 설문조사에서 괴롭힘 경험자를 대상으로 괴롭힘 수준에 대해 물어 본 결과 ‘심각하다’는 응답은 평균 44.6%였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은 47.4%로 평균보다 높았다.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의 22.1%는 회사를 그만뒀는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절반(47.4%) 가까이가 퇴사해 대기업(11.3%)의 4배가 넘었다. 또 괴롭힘을 경험한 직장인 중 7.1%는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 그런데 ‘극단적 선택’ 경험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15.8%)이 대기업 노동자(3.2%)에 비해 거의 5배였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신고도 할 수 없고, 해고를 당해도 다툴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저항도 하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법의 보호 밖에 있다.’
5인미만 사업장 정신 스트레스(욕. 횡령교사)로 산재보험 신청 불가인가요? 진단서는 받으려고 합니다. 5인미만도 가능하죠? 청심환 먹고 근무하려고 했는데, 계속 떨려요. 욕이 반복되고, 사과하고. 이게 4회째라서요. 승인이 늦게 나더라도 신청하고 싶은데, 5인미만도 승인 가능하죠? 5인미만은 괴롭힘 금지법에 해당 안 된다고, 산재가 안 된다고 어디서 들어서요. (2022년 12월, 카카오톡 상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습니다. 사장이 늦은 시간에 연락하고, 성희롱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한 후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제 인사도 안 받고, 저를 해고할 거라고 직원들에게 말하고, 온갖 잡일을 시켰습니다. 나중에는 제 업무 능력에 대해 “넌 씨발 나랑 일한 게 몇 년이냐 지금”, “답답하다. 죽는다 진짜” 등 욕설을 섞어 가며 비하하고 폭언했습니다. 결국 해고를 당했는데, 성희롱, 괴롭힘 신고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을까요?(2022년 9월, 이메일 상담)
위 사례는 모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상담 사례다. 이들은 모두 법이 적용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다툴 수조차 없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일하는 곳이 어디든 일하는 사람이라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하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일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5인 미만 사업장을 계속해서 법의 사각지대에 두는 것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용자들에게 자기 노동자들의 인권정도는 무시해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2023년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햇수로 4년이 되는 해다. 2022년 법 적용조차 되지 못해 일터에서 욕설을 들어도, 모욕을 당해도 버텨야했던 일터의 약자들이 적어도 올해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루빨리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에서 겪는 갑질과 부당한 대우를 상담하고 공론화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직장인들이 스스로 모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합니다. 직장갑질119는 2017년 11월 1일 출범해 현재 180여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공식상담은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 또는 공식 이메일을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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