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연금개혁에 대한 익숙한(?) 홍원표 동지의 글을 싣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기고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
연금개혁, 어떻게 볼 것인가?
홍원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기 회원,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소득의 1/3을 보험료로 낸다고?
국민연금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단연코 기금 고갈이다. 지난 해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대로 가다간 90년대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 연금개혁 시급 : 주요국 고령화 실태 및 연금제도 비교」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2055년 65세가 되는 90년생부터는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과격한 주장을 그대로 제목에 달았다. (참고로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경련 산하 연구소다.)
한국경제연구소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와 동일한 맥락의 주장은 일부 전문가와 언론을 통해 매우 빈번하게 접할 수 있다. 기금이 고갈된 이후에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최대 35%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35% 보험료는 부과방식비용률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부과방식비용률이란 연금기금이 완전히 소진된 이후 연금급여 지급을 위해 필요한 돈을 모두 보험료로만 충당한다고 가정했을 때 필요한 보험료율이다.
2018년 4차 재정계산(국민연금법에 의해 5년 마다 재정계산을 하도록 되어 있다)에 따르면, 2070년 및 2080년 부과방식비용률이 각각 29.7%, 29.5%로 추계되었으며, 올해 진행된 제5차 재정계산에서는 이 비율이 2080년 34.9%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나왔다. 2055년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예상되니 그 이후에는 연금급여 지급을 위해 20% 후반, 많게는 30% 초반대까지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연금보험료만 소득의 1/3을 차지한다는 건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건강보험 등 나머지 4대 보험의 보험료, 소득세 등을 포함하면 그 부담이 상당한 게 사실이다. 국민연금을 이대로 두면 결국 세대간 착취라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다. 이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이 수치는 일단 팩트다. 아니 팩트라기보다는 추계 방법에 크게 오류가 없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국민 절반의 소득 보장에 쓰이는 돈이 GDP의 1/10!!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수치 역시 존재한다. 부과방식비용률이 개인에게 주어지는 부담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전체 사회가 지는 부담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GDP 대비 총연금급여 지출 비중이다. 보험료율이 3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2080년 GDP 대비 연금지출 비중은 9.4%다. 이 정도는 (2080년이 아닌) 현재 유럽 주요국의 연금 지출 수준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게다가 2080년 노인 인구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47.1%에 달한다. 인구 절반의 소득을 보장하는데 쓰이는 돈이 전체 사회적 부의 1/10이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개인의 부담은 1/3인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1/10 부담 밖에 안 된다는 다소 모순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이 두 추정치는 모두 같은 자료에 근거에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반된 (해석을 유도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이 전체 소득의 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1/3이 대부분 노동소득(과 그에 연동된 사용자 부담, 지역가입자의 경우 사업소득)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10%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 소득의 35%를 부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대로 두면 미래세대의 1/3이 빈곤층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연금급여로는 국민 노후를 책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독보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전체 빈곤율은 15~16% 내외로 OECD 평균인 11~12%에 비해 4%p내외 높아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노인빈곤율의 경우 2020년 현재 38.9%로 OECD 평균인 13.5%의 3배나 된다. 이나마 기초연금 도입 및 국민연금 수급권자 확대로 낮아진 수준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45% 내외를 기록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높은 노인빈곤율이 향후에도 크게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연구원에서 발간한 「NPRI 빈곤전망 모형 연구」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자가 85%까지 확대되는 2085년의 빈곤율이 25.49%(기초연금 40만원 가정)에서 30.09%(기초연금 30만원 가정)까지 달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지금보다는 빈곤율이 줄어들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 빈곤율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빈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연금이 충분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 노인가구 소득에서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5.5%다. 그런데 이 비중은 2080년이 되어도 34.1% 정도에 그친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비교적 높은(20%대) 일본과 호주의 경우에도 가구 소득 중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대에 육박한다. 결국 공적연금 급여 수준이 문제다.
연금개혁, 보장성 강화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럼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야 할까? 남찬섭 교수에 따르면 노후 최소 필요생계비를 충당하고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목소득대체율을 50%까지는 올려야 한다(남찬섭, 2023, 「연금개혁의 쟁점과 과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기자간담회 자료).
국민연금공단 연구원이 2021년 조사한 노후 최소생활비가 1인 가구 기준 월 124.3만원, 적정생활비가 198.7만원이다. 그런데 실가입기간 27년을 가정해 현행 40% 대체율을 적용하면 연금보험료 산정소득 평균값(A값)에 해당하는 경우와 노동자 평균소득에 해당하는 경우 연금급여가 각각 68.6만원, 87.2만원이다(현재 가치 기준, 이하 같음). 여기에 기초연금 40만원을 더 한다 해도 노동시장 평균 소득자의 연금이 최저생활비에도 못 미친다. 반면,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가정하면 각각의 경우 연금급여는 85.7만원, 109만원 정도로 기초연금을 포함하면 최소생활비에 근접하거나 다소 웃도는 수준이 된다.
가입자 소득수준 | 국민연금급여 | OECD 평균 대체율과 비교(%) |
상대적 수준(%) | ||||||
금액 (천원) |
A값 또는 평균임금 대비 |
금액 (천원) |
대체율 (%) |
1인 기준 | 부부 기준 | ||||
최소대비 | 적정대비 | 최소대비 | 적정대비 | ||||||
현행 (40%) |
2,540 | 1A | 686 | 27.0 | 50.8 | 55.2 | 38.7 | 34.5 | 24.8 |
3,918 | 1AW | 872 | 22.3 | 52.7 | 70.1 | 49.2 | 43.9 | 31.5 | |
50% | 2,540 | 1A | 857 | 33.8 | 64.8 | 69.0 | 69.0 | 43.1 | 30.9 |
3,918 | 1AW | 1090 | 27.8 | 65.9 | 87.7 | 87.7 | 54.8 | 39.3 |
주 1. 가입자 소득수준 : 연금가입자 평균소득(A값) = 2,540천원, 평균임금(AW값) = 3,918천원
2. 기초연금은 월 40만원으로 가정. 연계감액으로 실제 수령액은 월 20만원 가정
3. 노후최소생활비는 월 1,243천원(1인), 1,987천원(부부); 노후적정생활비는 월 1,773천원(1인), 2,770천원(부부) (2021년, 연금연구원)
재정안정론자들은 명목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가입기간을 늘리고 사각지대를 없애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는 일부 맞는 이야기지만 반만 맞는 이야기다.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면, 항아리 크기는 그대로 둔 채 채우는 시간을 넉넉히 하자는 것이다. 반도 못 채우던 이전보다는 물의 양이 늘어나지만, 결국 항아리 크기 이상 물을 채우지는 못 한다. 반면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연금개혁론자들은 물 채우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항아리를 큰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다 채워도 노후 대책으로 매우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역사는 보장성 강화와 재원 확보의 역사 – 연금개혁도 마찬가지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연금급여 수준과 보험료 부과 소득 범위를 고정시킨 채,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를 그대로 맞게 되면 개별 소득의 35%를 보험료로 부과하는 그야말로 폭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역사는 보장성 확대뿐만 아니라 보장성 확대에 필요한 재원 확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이 국민소득의 1/3에만 연금부담을 부과하면서 세대간 형평성만을 강조하는 입장은 이같은 복지국가 논리는 외면한 채 재정부담만을 형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노인의 적정 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그 부담이 사회적 부의 1/10이 과연 과도한 것인지, 이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어떻게 나눠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세대간 부의 분배 문제가 아니라 계급간 부의 분배 문제이고, 무엇보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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