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PRISM>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관한 분석글을 싣습니다. 글을 기고해주신 정욱식 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
한미일 대 북중러, 진짜로 온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냉전 시대부터 우리에겐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익숙한 문법이 있다.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대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의 대결 구도로 바라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이해와 표현은 허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사를 복기해보면, 이러한 대결 구도는 없었다고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이 실제로 부상하고 있다.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난 것과 6월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번개팅’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가장 큰 전환은 북한에서 일어났다. 1990년대 초반 이래 한반도 문제의 다양성의 핵심에는 북핵 문제와 한미일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미일의 군사협력 강화의 원인이면서도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외교적 과제이기도 했다. 북한 역시 때로는 벼랑끝 전술로, 때로는 대화와 협상으로 한미일과의 관계를 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쉽사리 부상하지 않았던 핵심적인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랬던 북한이 2019년 말부터 대화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허망한 결과만 낳았다고 판단하고는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북한의 선택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북한을 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들 나라는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대북 제재에 동참했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제재 불가를 외치고 있다. 왜 그럴까? 전통적으로 북핵 문제는 미중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적 의제였다. 이견도 있었지만 핵비확산이라는 국제규범의 규정력은 강했었다. 하지만 신냉전의 기운이 확연해지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비확산보다 세력균형이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중러가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북핵을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인도의 핵무장을 묵인했던 것처럼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만 해협의 불안정, 윤석열 정부의 등장,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태평양 동맹 네트워크 등장 움직임, 일본의 대규모 군비증강, 한미일 안보협력의 공식화 등이 맞물리고 있다. 처음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실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미일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면서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이 공식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일동맹은 북한·중국·러시아를 명시적이거나 잠재적인 적대국으로 상정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3자간의 군사적 결속을 도모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최소한의 균형을 도모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균형을 잃고 미일동맹 쪽으로 깊숙이 기울어지고 있다.
한미일 3자의 대북 군사공조에서 가장 눈에 띠는 부분은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의 가속화이다. 이와 관련해 공동성명에는 “날아 들어오는 미사일로 야기될 위협에 대한 각국의 탐지·평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한다”고 명시되었다.
미일동맹은 한국이 북한과 가장 근접해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해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자고 줄곧 요구해왔다.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보호약정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그리고 경북 성주에 사드(THAAD) 배치 결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일의 MD 추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증강 및 북중러 결속의 명분으로 작용한 점에 주목해 이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자체적으로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미국과의 MD 협력 강화는 추구했지만, 한미일 MD로 가는 것은 꺼려했었다.
그런데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키로 함으로써 3자 MD는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당장 이지스함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MD 훈련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가 미일동맹의 MD와 연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성주에 배치된 AN/TPY-2 레이더는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다른 MD 자산에도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미일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미일이 공식적인 3자 동맹조약을 체결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북한의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미사일 요격 작전에 나서겠다는 것 자체가 동맹 수준의 군사력 결속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러시아와 관련된 부분도 미일동맹의 입장이 매우 강한 어조로 담겼다. 먼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은 안정적이고 안전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와 인도-태평양 전력을 연계시키려는 미일동맹의 전략적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공동성명은 러시아를 강력히 비난하는 내용만 담았을 뿐, 미국 내에서조차 고개를 들고 있는 평화협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3국 정상은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강압적 활동을 통한 것을 포함하여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는데, 이는 남중국해 및 대만 문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특히 3국 공동성명 차원에선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하나같이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케 하는 대목들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미일은 이번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중러를 사실상의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최근 북중러 결속 움직임과 맞물려 한국전쟁 이래로 없었던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가시화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위치에 있는 한반도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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