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집자가 이제 글도 씁니다. 정기연재는 아니고 원고가 빵꾸(..)날 경우 땜빵으로 비정기 연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
눈물의 운동일기_(1)
예준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나는 운동이 싫다
나이부터 까기는 좀 뭣하지만 대충 30년 비슷하게 살았다. 그 중 절반정도는 운동(Movement-사회운동)을 좋아하며 살았고, 1/3정도는 실제로 운동을 했다. 내년이면 첫 간부로부터 십년이 된다. 이젠 뭐 다른거 할 것도 없고..
하지만 이렇게 사회운동을 하면서도 운동(Exercise-신체운동)은 매우매우매우 싫어했다. 별로 일관된 것 없는 인생에서 몇 안되는 일관성을 가진 것은 운동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10대 초반엔 골목에서 뛰어놀았고, 10대 후반엔 육체노동을 했으며, 20대 초반에는 차벽 뚫고 들어가기, 경찰 저지선 뿌수기, 이제는 공소시효가 지나 말할 수 있는 기동대 후드려패기 등의 신체활동을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의 움직임은 일상생활에서 충족되는 것으로 충분하였고, 아까운 시간과 돈을 써가며 운동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몇살을 더 먹고 300미터를 걸어가기 귀찮아서 15분간 버스 환승을 기다리는 인간이 되었다. 통풍, 고지혈증, 지방간은 덤이다.
불안한 징조들
나보다 몇 살 많은(본인은 한참 많다고 하시지만 나는 몇 살 안 많다고 생각하는) 여자친구는 언젠가부터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힘들어하면서도 꾸준히 다니는 것을 보고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는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운동같은걸 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돈 줘도 안움직일 판에 돈을 내고 움직인다고? 어차피 내려올 산을 힘들게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산은 멀리서 볼때가 예쁘다. 나는 산 알러지가 있어 산 근처에 있으면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기분이 매우 불쾌해진다.
몇 달인가를 꾸준히 운동을 하던 여자친구는 어느날부터 근력운동의 필요성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술먹는게 힘들었는데 근력운동을 하니 술도 잘 먹게 되었다거나, 밤 새는 것 같은걸 근래에는 못했는데 운동을 하니 밤도 샐 수 있게 되었다거나.. 듣고있던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하늘같은 애인의 말에 대꾸를 하기는 어려웠다. "건강은 의학으로 챙겨야지.."라는 소심한 반박을 읊조릴 뿐이었다.
언젠가의 화이트데이에, 보통은 사탕을 주는 날이지만 단걸 안 먹는 여자친구에게 국화차를 만들어 주었다. 직접 따다 말린건 아니고 말린 국화를 벌크로 사다가 티백으로 포장한것 뿐이지만.. 정성은 들어갔지만 완성품은 그냥 그랬고 이후엔 커피 등으로 대체했다.
선물을 받은 여자친구는 갑자기 상으로 PT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기겁하며 아니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왜 벌을 주냐며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의 억울함이 잘 인정되어 PT는 없던 일이 되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이 무사히 지나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요통이야 십년묵은 나의 몸의 일부였지만 이렇게 아픈 적은 별로 없었다. 디스크가 온 것인가 하여 입원까지 해가며 검사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판독은 척추뼈와 디스크와 물렁뼈가 모두 건강한 상태라는 황당한 답이었다. 그럼 이 통증의 정체는 무엇이냐 물었더니 의사는 작은 검은 부분을 가르키며 "이것이 등심(!)이다, 여기에 근육이 이만큼 있어야 하는데 너는 요만큼밖에 없다, 근육이 없으니 신경이 무게에 눌려서 아플것이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세상에 별 희안한 질병이 다 있구나 하며 발전된 현대의학이 나를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에 "그럼 치료는..."하고 물었다. 나는 신경차단술이나 근육강화주사, 혹은 내가 모르던 최신의 의학기술을 이용한 치료를 기대했으나 돌아온 답은 가서 PT를 받아 운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것인가 하여 "헬스장에 그 PT요?"라고 되물었고 의사는 그렇다고 했다. '돌팔이다 돌팔이'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병원을 나온 나는 난데없는 불치병 진단에 어찌할 줄 모르고 진통제를 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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