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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구조개혁 논의,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홍원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기 회원,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다층연금 vs 단일연금?
지난 6월 연금개혁을 위해 설치된 국회 연금특위가 결국 국민연금 모수개혁에 대한 합의에 실패하고 갑자기 연금 구조개혁 논의를 방향을 선회한다고 발표했다. 모수개혁이란 보험료율과 급여대체율, 급여 지급 시기나 의무가입기간을 몇 프로 또는 몇 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구조개혁은 국민연금 및 특수직연금(공무원연금 등), 기초연금, 퇴직연금, 민간연금 간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금 특위가 구조 개혁 논의로 주제를 선회한 이후 다층연금 체제 강화에 대한 논의가 더욱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재정안정을 강조해 국민연금을 축소하자는 입장이더라도 노후 소득보장 문제는 (설혹 말뿐일지라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그래서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주장하면서 부족한 노후 소득 보장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다층연금체제 강화를 제시한다.
다층연금 체제란 공적연금과 민간연금을 적절히 섞어서 노후 보장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3층, 4층 여러겹으로 구성해 보다 높은 보장성에 사각지대 해소에도 유리할 수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 강화를 주장하는 입장은 이러한 장점을 외면하고 단일연금 체제를 주장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 강화론자들도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적절한 보완을 주장하고 퇴직연금의 기능 재조정을 요구한다. 두 주장의 차이는 다층연금과 단일연금의 차이라기보다는 다층연금 중에 어떤 연금에 더 비중을 두느냐의 차이다.
국민연금 강화 필요성 ① 기초연금 강화로 충분한가?
한국의 경우 공적연금에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또는 특수직연금)이 있고, 민간연금으로 퇴직연금과 민간보험(연금저축 등)이 있다. 기초연금은 기여와 상관없이 소득·자산을 기준으로 70% 하위 노인에게 일괄 지급하는 연금이다. 국민연금은 기여(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급여를 지급하며 보험료 납부액과 기간에 따라 급여 수준이 달라진다. 퇴직연금은 법으로 규정된 연금으로 1년 이상 재직 노동자에게 퇴직금과 퇴직연금 중 하나는 반드시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 의무연금이나, 그 운영주체는 민간 금융사이기 때문에 민간연금이다. 그래서 의무 민간연금이라고 한다. 의무 가입이지만 공적 보험은 아닌 것이다. 자동차 보험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민간보험은 말 그대로 금융자본이 운영하는 보험 상품이다.
국민연금은 기여 기반 보험이다. 보험료를 내야 급여를 받는다. 이같은 보험 방식 사회보장 제도의 문제점은 사각지대다. 경제활동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실업자인 경우 또는 (부업 같은) 비공식노동시장 종사자나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같이 취약한 노동시장에 종사하는 경우일수록 사회보장이 더 필요하지만, 보험료 납부가 어려워 오히려 배제되거나 급여 수준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사회보장의 역진 현상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게다가 노후를 대비하는 장기보험인 국민연금은 도입한 지 불과 30여년에 지나지 않아 아직 급여 수급자가 충분하지 않다. 당연히 현세대 노인 중 사각지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 기초연금이다. 그런데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가급적 넓게 보장하는 탓에 재정부담이 크고 보장 수준이 낮다. 기초연금 도입 이후 빈곤율 변화 및 전망은 기초연금의 이런 특성을 매우 잘 보여준다.
국민연금 연구원이 발간한 노인빈곤 실태 및 원인분석을 통한 정책방향 연구(안서연, 2022)에 따르면 2011년과 2020년 사이의 65세 이상 빈곤율은 49.18%에서 38.97%까지 10.21%p로 큰 폭으로 감소하여, 2020년 30%대에 진입하였다. 이 두 시기 사이에는 노인소득 변화에 영향을 미친 제도적 변화는 기초연금 도입·인상과 국민연금 수급자 확대가 있었다. 두 요인 모두 노인빈곤율 감소에 크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노인집단을 연령대별고 구분해 보면, 65세~74세 노인의 빈곤율 감소가 15.15%p로 가장 컸고 75-84세 노인의 빈곤율은 7.90%p 감소한 반면, 8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오히려 6.0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연금이 대다수 노인(70%)에게 지급되는 반면, 89년에 시작된 국민연금의 경우 가입기간 등을 고려할 때 60~70대 노인 수급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60~70대 노인빈곤율 감소가 더 컸다는 것은 지난 10년 노인빈곤 감소에 국민연금의 영향이 더 컸기 때문이다.
장래 빈곤 추계도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국민연금 연구원이 발간한 NPRI 빈곤전망 모형 연구(안서연, 2022)에서 소득원천에 따른 빈곤율 개선 정도를 추정했는데, 공적연금에 의한 빈곤감소의 상대적 기여(2020년 15.7% → 2080년 23.5%)가 기초연금에 의한 상대적 기여(2020년 4.9% → 2080년 7.3%)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자면, 기초연금이 현세대 노인빈곤 해소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국민연금의 역할이 더 크고, 향후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날수록 기초연금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재정안정론자들이 다층연금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기초연금 차등 인상을 이야기한다. 대상을 축소하는 대신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기초연금을 더 많이 (사실은 최소한의 보장 수준) 주자는 것이다. 현재 연금특위에서는 대상을 40%까지 축소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일부 진보진영의 연금개혁 요구도 기초연금 대상을 3~40%로 줄이고 금액을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국민연금, 전반 5골 넣고 후반 10골 먹는 구조」, 국민일보, 23.2.11)
국민연금 강화 필요성 ② 퇴직연금 의무화로 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
국민연금의 낮은 보장성을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계층 중심으로 지급하게 되면 중상위층 소득계층의 노후 소득 보장이 별도로 필요하다.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그러니까 복지제도가 약한) 나라들에서는 통상 이 부분을 공적연금 대신 기업연금과 민간연금으로 보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연금과 유사한 제도가 퇴직연금이다.
한국에서 재정안정과 더불어 다층연금 강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지로 주장한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 정부 모두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층연금제도 확립과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동시에 추진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직후 「새정부 경제정책」을 통해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개인연금(퇴직연금+연금저축) 소득공제 한도를 600만원에서 900만원까지 올렸다.
퇴직연금의 경우 매월 급여의 8.3%를 납입하고 연금 종류에 따라 정해진 액수 또는 운용실적에 따라 급여를 지급받는다. 국민연금에 비해 보험료율은 다소 낮지만 현재 보험료(95%)와 거의 유사한 수준이고 국민연금과 달리 소득인정액 상한이 없어 고소득자의 경우 더 많이 내고 그만큼 나중에 더 받을 수 있다. 재정안정론을 강조하는 이들은 소득비례라는 점, 보험료율이 낮지 않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기능의 일부를 퇴직연금으로 대체하고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동결 또는 축소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퇴직연금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에는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아니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할 정도다. 우선 가입 대상 문제다. 국민연금이 특수직연금 가입자(약 140만명)를 제외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퇴직연금은 (1년 이상 재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장범위가 대폭 축소된다.
2020년 기준 퇴직연금 가입자는 모두 665만 명인데(「2020년 퇴직연금통계」, 통계청), 이는 2020년 경제활동인구(2,892만명) 대비 23.0%, 임금근로자(2,045만명) 대비 32.5%, 퇴직연금 적용대상자(1,187만명, 1년 이상 근속 노동자) 대비 56.0% 수준이다. 2,250만명에 달하는 국민연금을 보완하기에는 가입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자본이 플랫폼 노동 등 특수고용 사용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특단의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퇴직연금의 가입범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낮은 가입률만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퇴직연금은 ‘노후 연금’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고 있다. 한국의 퇴직연금은 퇴직금 제도에서 전환된 것인데, 퇴직금은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이연임금(나중에 지급하는 임금)의 성격으로 노후보장 제도가 아니었다. 또한 주요 직장에서의 조기 은퇴를 강요받는 노동시장의 특성과 빈약한 실업자 소득지원 및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인해 생활비/자녀 학자금/결혼비용/주거 마련 비용 등을 위해 일시금 수령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연금으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2021년 기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 비중은 계좌 수 대비 4.3%, 금액 대비 34.3%다. 연금 수령 계좌 비중이 매우 낮은 것은 대부분의 퇴직자가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는 의미며, 그럼에도 금액 비중이 큰 것은 그나마 퇴직연금을 많이 쌓아둔 사람들이 주로 연금으로 수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퇴직연금을 노후소득의 주요 원천으로 하게 되면 노후보장의 빈익빈 부익부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퇴직연금의 법적 의무이긴 하지만, 민간 연금이라는 점이다. 민간연금은 당연히 운용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리스크 계산이 어려운 종신연금보다는 기간을 정해놓은 연금 지급을 선호한다. 또한 매해 국민연금과 유사한 수준의 기금이 쌓이지만 공적인 통제를 거의 받지 않으며, 국민연금과 달리 수수료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이 운용사에 지급된다. 운용실적 또한 국민연금에 비해 퇴직연금 실적이 낮다.
국민연금 중심의 다층연금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퇴직연금을 지금처럼 그대로 방치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가입 범위와 연금제도로서의 한계, 기금 운용에 대한 공적 통제 강화 등 산적한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의 대체제 또는 보완책으로 제시하기에는 무리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층연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연금을 축소하자는 것은 국민연금을 축소한 만큼 민간보험 시장을 키우기 위한 의도로 밖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마치 건강보험 보장성이 축소되면 민간 실비보험 시장이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보수정권에서 다층연금정책이 예외없이 늘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과 함께 제시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전국민의 절반이 노인인 시대, 국민의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 개혁은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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