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 월에 연재되는 이장규 회원님의 <건강과 진보> 입니다. [편집자주] |
몰라도 대개는 괜찮다
이장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경남 회원, 한의사
이른바 진상 학부모의 악성민원으로 인해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는 식으로 이 사건을 이념대립으로 몰아가려는 보수파들의 주장은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교사의 노동권 특히 과도한 감정노동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필요성이라든지, 교육의 서비스화와 결부된 일부 학부모의 지나친 소비자주의적인 행태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틀림없이 필요하다.
한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비자주의 및 그로 인한 각종 감정노동자의 피해는 단지 교육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면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모든 업종 및 콜센터 등 소비자의 민원을 직접 응대하는 거의 모든 업종에서 이런 일은 발생한다. 의료기관도 예외는 아니며 특히 소아과의 경우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해서 보호자의 악성민원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이게 과연 일부 학부모 또는 소비자들이 ‘갑질’을 하는 것 즉 어떤 개인의 잘못된 행태 때문만일까? 물론 그런 측면이 틀림없이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너무 심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를 구조나 조건 탓, 가령 공동체 내지 사회를 생각지 않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탓이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하는 것도 또다른 편향이 될 수 있다. 또한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장점은 있지만, 당장의 문제해결에는 오히려 무력한 측면이 있으므로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무조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그게 어떤 개인의 인성이 문제이며 그들에게 강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식의 손쉬운 비난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다. 개인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또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일종의 불안이다. 뭔가 정보 부족으로 인해 나 또는 내 아이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이런 갑질의 배후에 깔려있다. 가령 내가 보지 못하는 학교에서 뭔가 내 아이가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라는 불안이나 아이가 열이 나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 심각한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라는 불안 등이다. 이른바 ‘정보비대칭’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로 인한 불이익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극성스런 소비자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는 소비수요 창출을 위해 이런 불안을 더 자극한다. 각종 광고나 인터넷에 범람하는 각종 과잉정보 및 극단적인 사례에 대한 기사 등등이 모두 뭔가 내가 더 많이 알고 더 좋은 선택을 해야지 그냥 평소대로 하면 큰 불이익이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고객은 왕’이라는 식의 서비스 강조 내지 소비자주의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더 많은 소비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한국의 의료과소비 또한 이것과 관련이 있다. 평소의 휴식 등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온갖 건강정보는 넘쳐나니까, 뭔가 이런 정보를 제대로 알고 더 좋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배후에 깔려있다. 꼭 병원에 자주 가는 것만이 아니라도 이런저런 영양제나 건강식품의 소비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더 돈을 들인다고 그만큼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리 큰 차이 없다. 가령 밤에 아이가 열나면 바로 응급실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그냥 집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해열제 먹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열이 지속되면 그 다음날 병의원에 가더라도 그 몇 시간 동안에 갑자기 어떻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련이나 호흡곤란을 동반하거나 온 몸이 처지는 등 전신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 그냥 열이 좀 심하다는 이유로 응급실에 갈 필요는 없다. 가봐야 해열제 처방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슨 영양제나 피로회복제도 마찬가지다. 정 필요하다면 비타민B,C를 섭취하는 정도로 대부분 충분하다. 온갖 좋은 성분을 넣었다고 그만큼 효과가 더 좋은 게 아니다. 대부분의 영양성분은 음식에서 섭취하는 정도로 충분하며, 그보다 많이 먹는다고 그만큼 효과를 더 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숙취해소제 같은 것도 따로 사먹을 필요없다. 수분과 당분 가령 꿀물 같은 것을 섭취하는 정도로 충분하며 푹 자는 게 더 중요하다.
사실 건강비결이란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 골고루 먹되 많이 먹지 않는 것, 각종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등이 돈 들여서 병원 가거나 영양제 및 피로회복제, 숙취해소제 등을 먹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물론 이런 게 더 쉽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푹 쉬거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바쁘게 살다보면 골고루 적게 먹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고.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건 거의 신경쓰지 않으면서 온갖 건강정보를 파악하고 자주 병의원 가고 무슨 제품을 섭취하고 그런다고 그 노력과 비용만큼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지나친 건강정보가 오히려 더 문제다. 몰라도 대개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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