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선생님의 <노동상담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
다섯 번째 이야기, 파생상품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혹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2008년 미국을 붕괴 직전으로 몰아가고 세계 경제를 침체시킨 금융위기의 방아쇠 역할을 했죠.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이란 뜻으로, 일반 주택 담보 대출에서 심사에 통과하지 못하거나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대출을 말합니다. 미국의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은 집을 사려는 일반 개인들의 신용등급에 따라 크게 세 종류 대출로 나눴는데요.
신용등급이 높으면 프라임(Prime), 낮으면 서브프라임(Subprime), 그 중간은 알트에이(Alt-A: Alternative-A) 모기지라고 했어요.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우대금리를 적용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의 부실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었죠.
금융 기관들은 ‘서브프라임’대출에서 발생할 미래의 이자와 원금 수입을 기초로 증권을 발행하여 투자 은행 등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 은행들은 이 증권을 가지고 또다시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냈어요. 이렇게 여러 단계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면서 금융 상품의 구조가 엄청나게 복잡해졌는데 원래의 저당권이 뭔지도 모를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이렇게 된 것은 금융감독기관이 손을 놓고 방치했기 때문이죠. 결국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이자와 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되면서 여러 단계에 걸쳐 발행된 파생 금융 상품이 한꺼번에 부실해져 연쇄 폭발한 것이 2008년 미국발 금융 사태였습니다.
파생상품(派生商品, derivative, derivative securities),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새로운 현금흐름을 가져다주는 증권을 말합니다. 파생상품은 위험 회피, 수익 추구 그리고 파생상품을 합성하여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따위를 주요 기능으로 삼고 있어요.
이 기법에 금융자본의 탐욕이 스며들어 서민들의 주택을 담보로 각종 파생상품을 조합하여 팔고 또 그것을 조합하여 다시 팔기를 거듭했고 자본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폭발했습니다. 집값을 갚을 수 없는 서민들은 거리로 나앉았습니다. 미국 금융 사태의 황량한 풍경이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내가 누구한테 고용된 건지, 고용되기는 한 건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쪼갬과 합성을 반복하며 진화하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가 파생상품을 닮아 있지는 않은지 말이죠.
2.
뒤늦게 간호조무사 자격을 딴 성숙 씨는 오래 전부터 하얀 간호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이 오십을 앞둔, 경력 단절 여성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취업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덕에 오매불망하던 하얀 가운을 입게 됐지요.
원하던 병원 일이 아닌 게 아쉽기는 해도 간호복을 입는 멋이 있었습니다. ‘제대혈 코디네이터’라는 직종이었어요. 그런데 ‘제대혈 코디네이터’와 하얀 가운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제대혈을 산모로부터 위탁받아 보관하는 A회사가 있습니다. 이런 회사를 제대혈은행이라고 하는데 법정 용어입니다.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제대혈(이하 "제대혈"이라 한다)”이란 산모가 신생아를 분만할 때 분리된 탯줄 및 태반에 존재하는 혈액을 말한다.
7. “제대혈은행”이란 제대혈기증으로 기증된 제대혈(이하 “기증제대혈”이라 한다)의 제대혈관리업무를 하는 제대혈은행(이하 “기증제대혈은행”이라 한다) 또는 제대혈위탁으로 위탁된 제대혈(이하 “가족제대혈”이라 한다)의 제대혈관리업무를 하는 제대혈은행(이하 “가족제대혈은행”이라 한다)으로서 제11조제1항에 따라 허가받은 기관을 말한다.
A사는 산모와 제대혈위탁계약(보통 10년~15년 이상)을 체결하여 그 대가로 제법 큰 비용을 산모한테서 받습니다. 이때 산모에게 제대혈의 좋은 점을 홍보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일을 누군가가 하게 되는데요,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제대혈 코디네이터’입니다.
그런데 시중에 나도는 구인광고를 들여다보면 제대혈은행이 제대혈 코디네이터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이들을 모집하고 채용하는 쪽은 대부분 용역업체이지요. 용역업체의 주 종목은 청소`경비`시설관리 인력을 파견하는 일인데 이 업체가 ‘제대혈 코디네이터’를 고용하는 것입니다. 인력을 파견하는 용역업과 ‘제대혈 코디네이터’라니. 어색한 조합이지요? 그러니 용역업체가 ‘제대혈’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소명의식 혹은 산모에 대한 유대감을 가질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성숙 씨 역시 제대혈은행인 A사에게 고용되지 않고 용역업체인 B사에게 고용됐습니다. 게다가 1년 계약직이었어요. 즉, 간접고용에다 기간제인 이중의 비정규직인 셈이지요. 문제는 또 있어요. 그녀가 일하는 곳은 제대혈은행도 아니고, 용역업체도 아닙니다. C산부인과 병원이이예요.
성숙 씨는 C산부인과 병원에 상주하면서 하얀 가운을 입고 산모들에게 제대혈이 얼마나 유익한지 홍보하고 다녔어요. 산모와 제대혈 보관 계약을 성사시키는 게 그녀의 업무니까요. 여기서 문제가 있어요. 성숙 씨가 이 직종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약도 많이 성사시켜야 하지만 병원한테도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해요. 이를테면 병원이 제대혈은행에다 “이 사람 산모들이 싫어하니 교체해 달라”고 하면 꼼짝 없이 나가야 할 판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숙 씨는 본래의 업무인 제대혈위탁계약을 성사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병원 일까지 수발합니다. 병원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뿐더러 대놓고 부려먹기도 해요. 그건 산모도 마찬가지예요. 산모로선 하얀 가운을 입고 병실을 드나드는 사람을 용역업체 직원이라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즉, 그녀는 일을 하면서 A사, B사는 물론이고 C병원과 산모의 눈치까지도 살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 해서 급여가 오르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묻습니다. 제대혈 코디네이터 성숙 씨의 업무를 지휘 감독할 권한 있는 사업주는 도대체 누구인가? A(제대혈은행)인가 B(용역업체)인가 C(산부인과병원)인가? 그도 아니면 산모인가?
3.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제대혈 코디네이터는 지역에서 이름께나 있는 대형 산부인과 병원에 상주하는데 당연히 병원의 동의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어요. 달리 말해서 제대혈은행과 병원 사이에 거래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 거래라는 것이 꽤 수상쩍습니다. 성숙 씨는 리베이트라고 말했습니다. 한 건 당 수십만 원을 병원에 준다는 것이죠. 실제 이런 리베이트 계약의 실체가 언론과 방송을 통해 공개되어 물의를 빚기도 했고 여러 해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루기도 했습니다. 리베이트 비용 부담은 결국 산모 몫이에요.
성숙 씨가 일하는 제대혈은행 A사는 산모들에게 팜플렛을 배포하면서 제대혈을 진공 상태에서 특수 운반한다고 홍보했어요. 물론 성숙 씨에게도 그렇게 홍보하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거짓말예요. 택배서비스를 불러 운반해요.” 이 제대혈은행은 다른 산부인과 병원에도 코디네이터를 보내는데 간호조무사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얀 가운을 입혀 의료인 행세를 하도록 시키기도 했어요.
성숙 씨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제대혈은행 측에게 ‘제대혈을 어떻게 보관하는지 직접 견학하고 더 성심껏 홍보를 하겠다.’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어요. 이런 일이 몇 번 있은 후 제대혈은행은 그녀가 상주하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철수했어요. 그녀는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됐어요. 그녀에게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 즉, 해고통보서를 보낸 쪽은 제대혈은행이 아니라 형식상 고용주인 용역회사였습니다.
근로계약 해지 사유는 원청회사(제대혈은행)의 철수로 근무처가 없어졌고 인근에 전보 가능한 근무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묻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녀는 이제 누구를 붙잡고 일자리를 달라고 호소해야 하는가. 제대혈은행 사장에게 해야 하는가? 용역업체 사장에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산부인과 병원의 원장에게 해야 하는가?
법적으로는 성숙 씨의 고용관계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만약 근로자파견에 해당하고 그것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용사업주(원청회사)인 제대혈은행 측이 성숙 씨를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법 제6조의2). 그런데 성숙 씨의 업무는 같은 법 제5조가 허용하는 근로자파견대상 업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만약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면 불법파견에 해당합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성숙 씨의 복직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법적 다툼을 포기하는 대신 용역업체와 소정의 보상을 받기로 합의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여전히 제대혈 코디네이터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산부인과 병원으로 출근합니다. 이들의 상당수는 성숙 씨처럼 용역업체 소속입니다.
4.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를 통과하면서 비정규직이 빠르게 확산되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만큼 비정규직은 양적으로 크게 늘었는데 그 못지않게 비정규직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습니다. 성숙 씨는 그 중 일부의 사례이지요. 사업주는 소속 노동자에 대한 고용 보장 의무와 노동법 준수 의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그들의 고용형태를 쪼개거나 합성해 전혀 새로운 모습을 창조해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볼까요? 휴게소는 원래 도로공사가 직접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외부업체에 관리를 위탁하기 시작했어요. 도로공사 소속 노동자는 전부 휴게소를 위탁받은 업체 소속으로 신분이 변경됐어요.
위탁받은 업체는 휴게소를 다시 코너(국수가게, 커피가게 등등) 별로 쪼개어 개인에게 임대를 주고 고용주는 어느 날부터 개인사업자인 코너 별 입점업주로 변경됐어요.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각 코너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대개 5인 미만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지 않아요. 업주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고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며 연차유급휴가를 줄 의무도 없어요. 점포 주인이 사업주이므로 사내복지제도가 있을 리 없지요.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100명 넘는 인원이 말끔한 근무복을 입고 근무하지만 이들은 코너 별로 쪼개져 5인 미만인 사업장에서 일하므로 비정규직의 신분을 가지면서도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예요. 소비자인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몰라요.
학교 생활하는 아들이 요즘 알바를 다닙니다. 파트타임이지요. 총인원 30명이 근무하는 꽤 큰 식당이에요. 여긴 근무일과 시업·종업시각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사장이 직원들한테 다음 주에 희망하는 근무일을 미리 받는답니다. 그런데 희망하는 대로 결정되지 않아요. 결국은 사장이 일정을 조정해서 최종 결정하는데요.
아들이 하는 말. “아빠 우리 사장 머리 잘 써. 그 많은 인원을 말이야 절대 15시간 안 넘게 만들어. 돈 안 주려는 거지.”
5인 이상 사업장이라도 주 15시간미만 일하는 노동자는 주휴일, 공휴일, 연차유급휴가, 퇴직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3개월 이상 계속 근로하는 경우는 적용)을 적용받지 않습니다. 즉, 사업주는 이윤을 최대치로 늘리기 위해(혹은 지출을 최소치로 줄이기 위해) 단기 알바라는 비정규직에다 ‘그때그때 부르면 달려오는’ 호출 노동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비정규직의 또 다른 고용형태를 합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전통적 방식의 간접고용, 기간제, 단시간제, 특수고용에 더하여 다양한 방식의 합성을 거듭하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급성장하고 코로나 시절까지 통과하면서 플랫폼 노동(Platform Labor)이라는 새로운 일자리가 확산됐습니다.
사업주와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경계가 더욱 불분명해졌습니다. 그럴수록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일하는 사람과 그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의 관계, 일하는 사람과 그 편익을 누리는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고 일하는 사람 자체가 고립될 가능성도 더 커졌습니다.
5.
기업은 경영환경으로부터 위험을 분산·감소시키고 이윤을 최대로 늘릴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합니다. 파생상품과 닮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여러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쪼개거나 합성해서 새로운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본래의 고용주가 누군지, 고용되기는 한 건지, 나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쪽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갈수록 불투명해졌습니다. 이것도 파생상품과 닮았습니다.
통제하지 않으면 더욱 탐욕을 부립니다. 위험을 분산·감소시키는 목적이 있으나 그 위험을 없앤 것이 아니라 파생상품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 약자에게 ‘전가’한 것이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의 위험 요소는 커지고 사회 공동체를 위협합니다. 그 점에서 또 파생상품과 닮았습니다. 미국의 파생상품은 적절히 통제 받지 못하고 고삐가 풀려서 종국엔 폭발했지요.
폭발할 것이라 단정하기엔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일반 현상으로, 마치 공인된 제도처럼 자리를 잡았어요. 그렇더라도 방치할 경우 사회 공동체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겠지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러므로 법과 제도와 사회 공동체의 힘으로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요? 고립·단절되어가는 서로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또 어떤 ‘관계망’을 만들어 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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