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의 노동상담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연대의 손길 학대의 발길

[편집자주]

 

세 번째 이야기, 연대의 손길 학대의 발길

- 노동 약자를 대하는 동료들의 상반된 태도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용어에도 변천사가 있습니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정신박약’이라는 용어를 썼어요. 아무 생각 없이 다들 ‘정박아’라고 했죠.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정신지체’라는 용어를 씁니다. 세월이 지난 2007년 「장애인복지법」이 ‘정신지체’를 ‘지적장애’로 변경했어요. 그 후로도 ‘지적장애’와 ‘정신지체’를 혼용했어요. 2016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정신지체’를 ‘지적장애’로 변경하면서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법령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용어의 변천사만 보더라도 지적장애인들의 ‘사회적’ 설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내면에는 여전히 ‘지적장애’와 ‘정신박약’이 공존할 수도 있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은 노동 약자이기도 합니다.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설령 진입하더라도 일터에서 자기를 보호할 힘을 갖기 어렵지요. 이번 이야기는 평범한 노동자들 얘기입니다. 그들이 지적장애를 가진 노동 약자인 동료에게 어느 쪽은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어느 쪽은 학대의 발길질을 했습니다. ‘지적장애’와 ‘정신박약’의 공존처럼 말이죠.

 

 

2.

진형 씨는 봉사활동에 진심이었습니다.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매주 일요일마다 자원봉사를 나갔지요. S복지원이라는 장애인생활시설이었습니다. 중증의 신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거주하고 있었지요. 진형 씨는 졸업과 동시에 S복지원에 이력서를 냈어요.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해 수습 과정도 거쳐 생활재활교사로 정식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생활재활교사’는 장애인들의 생활을 돕습니다. 과거의 명칭이 ‘생활보조원’, ‘보육사’였어요. 주된 하루 일과는 세면시키기, 옷 입혀주기, 식사 지도하기, 방 청소하기, 장애 아동을 등교시켜주기, 보육일지 작성하기 등이지요. 정신노동이라기보다는 정형화된 육체노동에 가까운 업무였습니다.

 

S복지원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사회복지시설과 마찬가지로 복지원 역시 설립 초기에는 극도로 노조를 싫어했는데 온갖 평지풍파 끝에 노동조합을 인정했어요. 복지원에 근무하는 많은 구성원들이 노조에 가입했고 진형 씨 역시 조합원이 됐어요.

 

진형 씨는 1년 2개월 탈 없이 근무한 뒤 휴직하고 군에 입대했는데요, 군의 검사 결과 ‘경계선지능 및 정신지체7급’을 받았어요. 재검사에서도 ‘경계선지능 및 정신지체5급’을 받아 진형 씨는 최종 군 면제를 받았어요. 여기서 일이 생깁니다. 군 면제를 확정 받고 복직원을 제출했지만 근무를 시킬 수 없다는 ‘복직불허통지서’를 받은 거지요.

 

노동조합도 진형 씨의 복직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만, 결국 복지원은 진형 씨를 ‘직권면직’ 즉, 해고했습니다.

 

 

3.

진형 씨는 선해 보이는 인상에다 정서적으로도 안정돼 보였어요. 함께 찾아온 직장 동료들은 진형 씨가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마치 자기 일처럼 설명했어요. 일 잘 하던 사람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조금 부족한 점은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어요. 동료들은 ‘진형 씨가 복직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어요. 노조위원장이 울컥 하며 자기 얘기를 하더군요. “저는 원래 사진관을 했어요. 다른 사람을 돕는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복지원에 들어왔죠. 노조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진형 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접수했어요. 당연히 ‘경도의 정신지체 및 경계선 지능’ 판정이 진형 씨의 해고 사유로 정당한 것인지가 쟁점이었지요. 진형 씨가 노동조합 조합원으로서 적용받는 단체협약은 해고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어요.

 

단체협약 제30조(해고의 제한)

법인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고할 수 없다.
1. 정신 및 신체장애로 직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회복이 불가능할 때

 

 

진형 씨 문제는 복잡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라보는 방향’의 문제였어요. 복지원의 주장은 간명했습니다. ‘장애인이 어떻게 장애인을 보살피느냐, 일 시켰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 우리 쪽 주장도 간명했습니다. ‘진형 씨가 설령 경계선 지능이나 경도의 정신지체가 있었다 하더라도 1년 2개월의 근무를 보면 그 정도가 단체협약의 해고 사유인 직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므로 해고 사유로 부당하다.’ 동료들은 발 벗고 나섰어요.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주었고 24명의 동료들이 진형 씨를 위해 확인서를 작성하고 증언했어요.

 

그러나 진형 씨의 해고를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했습니다. ‘일 시켰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 이 말 한 마디는 노동위원회 판정위원인 저명한 법학 교수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어요.

 

진형 씨는 행정소송을 포기했습니다. 그 후로 진형 씨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진형 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아낌없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동료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진형 씨의 말과 행동에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마음 따뜻한 동료들은 진형 씨 해고를 자기 일처럼 아파하며 진형 씨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형 씨는 그 경험을 밑거름 삼아 잘 살아갔을 겁니다.

 

 

4.

윤정 씨와 함께 온 모친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애 아버지가 지능이 떨어졌어요. 같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애 어렸을 때 집을 나왔어요. 혼자 먹고 사느라 애한테 신경을 못 썼죠. 오랫동안 연락도 못하고 지냈어요. 애가 좀 모자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인지 몰랐어요.”

 

윤정 씨가 직장에서 겪은 어려움의 실체가 어렴풋이나마 짐작됐습니다. 일머리와 일하는 속도 모두 남들보다 떨어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모자랐을 테지요. 가정환경도 불우했어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우호적인 사회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받은 전문 기관의 검사 결과 윤정 씨의 지능지수는 65, 지적장애 3급이었습니다.

 

아마도 윤정 씨의 어떤 행동이 직장 동료들한테 밉상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 직장 동료들이 보기에 윤정 씨는 변변찮았고 만만했습니다. 고립된 소수자는 원래가 만만한 법이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그들은 해도 너무 했어요.

 

 

5.

M회사에서 윤정 씨는 TV액정 검사 일을 했습니다. 일은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작업 속도는 동료들의 70~80% 수준이었어요. 같은 공정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작업자가 윤정 씨 빼면 12명이었습니다. 이들은 180명가량 근무하는 회사에서 작은 공동체였어요. 함께 밥 먹고, 간식도 나눠먹고, 오늘은 누가 잔업을 할 것인지도 상의해서 결정했습니다. 이 작은 공동체에서 여덟 명이 윤정 씨 괴롭히는 일을 주도했거나 가담했어요.

 

동료들은 윤정 씨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챘어요. 윤정 씨보다 네 살 많은 박성옥이라는 이가 집단의 실세였는데요. 어느 날부터 그이의 입에서 “야 이년아”라는 호칭이 나왔어요. “야 이년아 너는 머리가 돌이야”, “비유를 하면 너 머리는 바위하고 서로 부딪혀도 안 깨질 거야” 집단의 우두머리가 이러니 윤정 씨보다 두 살 어린 사람이 나섰습니다. 그이는 다른 동료들한테는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면서 윤정 씨한테는 “야”, “너”라고 불렀어요. 이게 전염성이 있어서 더 어린 동료들까지 따라 했어요.

 

동료들의 요구가 점점 늘었고 거절하면 괴롭히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윤정 씨는 운전면허를 따서 자기 차로 출퇴근을 했어요. 박성옥 씨는 자기를 출퇴근시켜 달라고 했어요. 기름 값은 늘 윤정 씨 몫인데다 한참을 돌아가야 했어요. 두 달을 태워주다 거절했지요. 그러자 박성옥 씨가 “얘가 이제 차를 안 태워준댄다.” 큰 소리로 떠들었어요. 한 동안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왜 차를 안 태워 주냐’고 몰아세웠어요.

 

동료들은 윤정 씨한테 밥과 간식을 사달라고 요구했어요. 일처리를 잘 몰라 물어보면 그 대가로 밥과 간식을 사달라고 하거나 여러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어요. 간식은 작업 도중 쉬는 시간에 사다 먹었어요. 2년 넘게 그렇게 하다 윤정 씨가 그 일을 못하겠다고 하니 동료들의 태도가 더 사나워졌어요.

 

파레트를 함께 옮기다 윤정 씨가 파레트를 놓쳐 박성옥 씨 손가락을 다쳤어요. 그 뒤로 동료들이 돌아가며 ‘너 때문에 다쳤는데 네가 치료비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다그쳤어요. 박성옥 씨가 병원비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십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회사에 산재 처리를 요구할 배짱은 없었어요. 강자에게 약할수록 약한 사람한테는 모진 법일까요? 윤정 씨를 닦달한 덕에 박성옥 씨는 10만원을 받아냈어요.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는 일은 부지기수였어요. 회사 급여 받는 것 자체가 아깝다며 면박,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다고 면박, 얘기 들을 때 빤히 쳐다본다고 면박, 심지어 휴게실에서 차를 많이 마신다고 면박을 주었어요. 경비부장이 ‘쉬는 시간인데 남이 차를 마시건 물을 마시건 왜 간섭하느냐’며 윤정 씨를 거들어주기도 했지요. 면박이라기보다는 공공연하게 ‘모욕’을 준 거죠. 작업 탁자 아래에 놓아둔 윤정 씨 소지품을 뒤지기도 했어요. 그걸 주위 사람들이 모여 웃으며 구경했어요.

 

따돌림도 심해졌어요. 다들 한 푼이라도 벌려고 잔업을 원하는데 윤정 씨한테 기회는 오지 않았어요. ‘일을 못하니까 잔업을 할 필요가 없다’며 동료들이 막았어요. 윤정 씨가 도맡아서 간식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돌아가면서 간식을 사게 됐는데요, 같은 작업 공간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윤정 씨를 빼고 먹었어요. 누구도 같이 먹자고 하지 않았어요. 부서 회식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앉으려 하면 다른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어요. 윤정 씨는 혼자 외진 곳으로 가 앉았어요. 보다 못한 부서 책임자가 모여 앉으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회사 생활 6년 중 3년 동안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고 나니 마음에 병이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혼자 누워있는 시간이 옵니다. 윤정 씨는 그날 자기를 괴롭혔던 동료들을 떠올렸어요. 이 사람들이 차에 치여 죽던가, 사고 나서 죽던가 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요. 자기가 죽으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약을 먹고 죽으면 괜찮지 않을까.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매일 잠을 깊이 들지 못했어요. 윤정 씨는 출근할 때도 기도했어요. 오늘은 제발 아무 일 없이 넘어가 달라고 기도하고 스스로 다짐도 하고 집을 나섰어요.

 

세상사가 기도와 다짐으로 안 되는 일이 많지요. 입사한 지 6년 하고도 8개월이 더 흘렀어요. 윤정 씨는 버텨낼 기력을 잃었어요.

 

 

6.

윤정 씨의 경우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가해자들과 ‘격리’하는 것이죠. 일단 병가를 쓰도록 했어요. 상담을 계속 하면서 윤정 씨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물었어요. “저를 괴롭힌 사람들 다 처벌 받았으면 좋겠어요.”

법적인 문제를 생각해봤어요. 「근로기준법」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조항이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본조신설 2019. 1. 15.]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에 신고하였을 때 회사가 조치해야 할 사항도 법이 정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으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해야 하는데요, 직장 생활 내내 고립되어 있었으므로 윤정 씨를 위해 증언을 해주거나 증거물 제출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일도 난망하겠지요.

 

셜령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음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가해자인 동료를 처벌할 수 없어요.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반면 단순한 상급자이거나 동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처벌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조치를 하는 대신 회사와 대화를 하는 등의 시도는 했으나 결국 윤정 씨는 사직했어요. 일터에서 윤정 씨가 가진 힘은 꺼질 듯 가물거리는 불씨만도 못했습니다. 다행히 윤정 씨의 표정이 좀 밝아지긴 했어요. 어쩌면 상담자가 윤정 씨 입장에서 평생 처음으로 자기 얘기를 들어준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행운, 사회생활에서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행운은 윤정 씨의 것이 아니었어요.

 

 

7.

평범한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선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어떤 환경에서는 작당을 해서 학대의 발길질을 일삼았습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극단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노동약자인 진형 씨와 윤정 씨의 개인 성향도 무시할 순 없겠죠. 그러나 호감 또는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의 요인이 소수자인 약자를 동료로 받아들일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의 기준으로 용인된다면 얼마나 잘못되고 불행한 일인가요?

 

진형 씨와 윤정 씨가 처한 환경 요인은 확실히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S복지원엔 노동조합이 있었고 그 노조의 결속력은 꽤 강한 편이었으며 진형 씨는 그 울타리 안에 있었어요. 복지원의 동료들은 아무래도 장애인을 보살피는 일을 하니 장애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더 발달했을 수도 있겠지요.

 

집단의 리더의 차이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진형 씨가 가입했던 노동조합의 위원장은 동료가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서로 도우며 함께 가야 한다는 소신이 분명한 사람이었어요. 윤정 씨가 속한 집단은 어떤가요? 리더 격 되는 이가 함부로 대하자 다른 동료들이 따라 했죠. 만약 그이가 ‘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우리가 감싸주면서 일하자’라고 했다면 영향력 있는 사람의 뜻에 반하여 누구도 함부로 윤정 씨를 대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렇게 환경 요인의 차이를 나열하고 보니 부끄럽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노동약자로서 진형 씨가 가질 수 있는 행운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극히 제한적이거든요. 더 큰 우리 사회의 ‘내면’에는 여전히 ‘정신박약’의 관념과 태도 즉,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죠. 일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 또한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