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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 되짚어보기

[민주노조운동 되짚어보기]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그리고 노동 연구자

 [편집자주]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그리고 노동 연구자

 

노중기

한신대학교 교수(노동사회학)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그리고 노동 연구자필자는 최근 민주노조운동이 진정한 구조적 위기에 빠졌다는 논문을 작성한 바가 있었다(‘민주노총 30,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비판과 성찰’, 비판사회학회 편, [경제와 사회], 148). 1990년대 초 일각에서 제기된 민주노조운동 위기론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박사논문을 썼던 기억이 나면서 반대편에 선 자신을 보며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

 

당시 진보 연구자 일부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투적 노동조합주의노동해방운동노선이 과도하게 급진적이며 투쟁적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다수의 여론에 맞지 않고 국가와 자본의 반발을 불러 탄압을 자초했다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 역사, 곧 민주노총 건설과 1997겨울 총파업’,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조직의 성장은 이런 비판이 연구자의 섣부른 오판이었음을 잘 보여주었다. 필자는 이들이 ‘1987년 노동체제의 특성과 구조적 한계, 또 그 모순을 충분히 분석하지 못한 데 있었다고 오랫동안 반 비판해 왔다.

 

그런데 위기론 내용보다 여기서는 그 생산자들, 곧 연구자에 주목해 본다. 당시 명망이 있었던 세 명의 진보 연구자, 곧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형기 경북대 교수, 노동운동가 박승옥 그리고 노동사회학자 정승국 박사가 위기론의 대표 주창자였다. 나중에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도 최대 강령주의’(maximalist strategy)라는 개념으로 동참했으나 중심은 아니었다. 70년대 초반 학번 세 연구자, 활동가의 삶은 그 자체가 노동운동 역사이자 연구 대상이다.

 

먼저 김형기는 최근 박정희 대통령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단장으로 활약해 극에서 극으로 변절하였다. 같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박사이자 위안부 발언으로 이름을 알린 서울대 이영훈 교수에 버금가는 반노동자적 행태였다. 위기론 이후 민주당 및 수구 정당들을 섭렵하며 권력을 추구했으나 모두 실패한 결과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병영적 노사관계라는 학술 개념을 남길 정도로 뛰어난 진보적 노동 연구자의 끝은 처참했다.

 

박승옥은 노동 현장에 투신한 학생 출신 노동운동가 1세대였다. 90년대 위기론 이후에도 민주노조운동에 쓴소리를 계속하던 그는 2005년에 다시 민주노조를 비난하였다. 위기론 새 버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문제가 새로운 논거로 제시되었다. 다수 국민이 요구한 소위 개혁과 사회통합’, ‘사회적 대화를 거부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이 새로 만들어낸 귀족노조론과 궤를 같이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는 지금 퇴락한 민주당 인사와 함께 태양광 패널을 강매하는 환경(파괴)운동가, 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최악은 정승국이다. 그는 2010년대 이명박 정부 이후 자본단체를 드나들며 음지에서 민주노조를 공격했다. 그 논거는 분절노동시장론이었는데 다른 이의 연구 성과를 세탁·왜곡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시장에 내다 판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활약은 자본·수구세력의 눈에 띄었고 그는 갑자기 수구·냉전 대선 후보의 노동 과외교사가 되었다. 대통령 윤석열이 내려준 낙하산을 타고 차관급 공공기관 원장이 됐고 이재명 정부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레퍼토리는 늘 바뀌었다. 국민 여론, 경제 위기, 일자리·비정규 문제, 양극화·불평등 심화, 4차산업혁명과 AI 등등. 기생하는 연구·활동가 문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니 크게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