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 아빠의 세번째 육아일기입니다! 코로나 난리로 편집자도 수영이를 못 보아서 사진으로나마 수영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수영이랑 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편집자주] |
코로나19 난리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난리도 아니네!”
계산대 앞 꼬마 아이 말 한마디에 주변 어른들이 빵 터졌다.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눈에도 슈퍼마켓 풍경이 이상했나 보다. 확실히 평소와 다른 풍경이었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꽉꽉 들어차 있던 매대 몇 곳은 텅 비어 있었다. 마스크가 있던 생활용품 매대는 다시 채워질 것 같지 않았다. 라면 매대에는 오뚜기 진라면과 낯선 이름을 가진 라면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 코로나19 때문에 식료품 매대가 비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바꿔놓고 있었다.
육아 전선에도 비상상태가 선포됐다. 매일 올림픽 메달 소식처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생중계 되고, ‘재난경보문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헛똑똑이 딸과 사위에게만 손자를 맡길 수 없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린 조치들이다. 제일 먼저 단행된 조치는 일주일에 이틀 수영이랑 놀아주기 위해서 왔던 조카(수영이 사촌누나)의 방문을 중단한 것이다. 조카가 우리 집으로 오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왕래 중에 감염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조카가 집에 오면 수영이와 나는 두 팔 벌려 기뻐했다. 나는 다른 집안일을 할 수 있었고, 수영이는 서툰 아빠보다는 누나와 하는 블록 놀이와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조카도 수영이와 놀아주는 것을 즐겼고, 잘했다. 정말 진지하게 유아교육 진출을 권했다. 그런데 3주 동안 서로를 못 보고 있다. 어른들이 사촌누나 이야기를 하면 (누나가 들어왔던) 현관문을 가리키며 ‘누(나), 누(나)’하고 부른다. 집에 꼭 붙잡혀 있는 조카도 고모에게 ‘언제 고모네 집 갈 수 있어요? 수영이 보고 싶어요.’ 하소연 한다. 애절하다. 코로나19가 사촌 사이를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
가장 강력한 조치는 수영이 외출금지다. 앞선 조치보다 수영이에게 더 치명적이다. 설 연휴 A형 독감을 앓고 나서 바깥세상에 대한 열망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놀이터에 나가면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종일 집에만 있으라니! 순순히 따를 수영이가 아니다. 경찰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로, 국회로 향하는 전문데모꾼처럼 악을 쓰고, 옆으로 돌아서 아빠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한다. 사지가 들려 돌아오지만, 진정시키기 위해 온갖 간식으로 회유해야 한다. 수영이가 항상 강경한 것만은 아니다. 분위기 좋다 싶으면 나갈 때 입는 겉옷과 모자를 들고 와서 나가자고 애교를 부린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옷 입히고, 신발 신겨서 나가야 한다. 그래 봤자 문 앞 복도다. 엘리베이터 타고 1층까지 내려간 적은 예방 접종하러 병원 갈 때 단 한 번뿐이었다. 고작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지만 옆집 형아 유아차도 구경하고, 끝 집 할머니 장독도 만지작거린다. 운이 좋으면 옆집 형아를 만나 빠이빠이 인사도 하고, 끝 집 할머니를 만나서 ‘많이 컸구나’ 칭찬도 듣는다. 하지만 이 마저도 복도에서 더 놀려고 하는 수영이의 악쓰는 소리로 끝나고 만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대책 없이 불안과 공포를 생산하는 것들이 문제다. 조심하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뭐라 토를 달겠나! 충실히 따르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이다.
…… 그래도 꽃 피는 춘삼월인데, 수영아! 우리 놀이터 산수유꽃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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