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노동정치에 대한 손호철 교수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다행 중 불행'인 2020년 선거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정치학
“운 좋은 사람은 못 당한다.”
문재인정부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다. 현정부는 임기 초 기대감과 소통노력 덕으로 지지율이 고공행진했지만, 민생하락과 잘못된 인사, 뭐가 잘못이냐는 오만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 등 미래통합당이 막말파동 등으로 문재인정부를 살려줬다. 한마디로, 야당복 덕을 봐 온 것이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는 1) 인류사적인 사건인 코로나 사태와 2) 황교안에서 차명진으로 이어진 막말시리즈라는 ‘야당복’덕분에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일단 미래통합당이라는 냉전적 보수 내지 수구세력이 승리하는 최악의 결과는 피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는 ‘촛불항쟁’의 거의 유일한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뒤 치러지는 첫 선거로 거대보수양당의 독점체제가 약화되고 진보정당 등 소수세력의 약진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거대양당이 꼼수를 부려 위성정당을 설립하고 말도 되지 않는 이 같은 촌극을 이들이 지배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용함으로써 이번 선거는 구도와 쟁점과 정책이 사라지고 의원 꿔주기 등이 난무한, 민주화이후 최악의 선거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일부 소위 ‘진보정당’들까지도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비판적지지 소위 ‘사회원로’의 위성정당 만들기에 놀아나는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다. 냉전적 보수세력이 승리하지 못한 것은 다행이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거대양당의 독점은 오히려 심화됐고 소수세력은 더욱 배제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니라 ‘다행 중 불행’이다.
구체적으로, 정당지지율에서 거대양당은 70%미만의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은 94%를 차지해 지난 국회의 82%에서 오히려 거대양당의 독점율이 높아졌다. 반면에 사실상 유일한 ‘원내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지난번의 7%에서 상당히 오른, 근 10%의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수는 2%에 그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거대양당은 지지율의 근 1.4배의 의석을 차지한 반면 정의당은 지지율의 5분의 1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함으로써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에 투표한 표는 거대보수양당에 던진 표의 7분의 1로밖에 평가받지 못하고 말았다. 헌법재판소가 표의 가치가 2배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을 고려하면 말도 되지 않는 위헌적인 결과이다.
정의당을 넘어 ‘진보정당’ 전체(진보정당의 구체적 외연에 대해서는 논쟁이 가능하다)로 확대해 보면 그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진보진영’은 9.57%를 기록한 정의당이외에도, 민중당 1.05%, 노동당 0.125, 녹색당 0.21%, 여성의당 0.74%, 미래당 0.25% 등 12.04%를 기록했지만, 의석수는 정의당이 차지한 6석이 전부이다. 즉 12% 득표에 의석수 2%에 그친 것이다.
진보정당 득표현황
정의당 | 민중당 | 노동당 | 녹색당 | 여성의당 | 미래당 | 총계 |
9.57% | 1.05% | 0.12% | 0.21% | 0.74% | 0.25% | 12.04% |
진보정당의 의석차지율을 득표율과 대비한 ‘진보대표율’만 후퇴한 것이 아니다. ‘진보의원’이 ‘수적’으로도 후퇴했고, 당선자의 경우도 ‘질적’으로 후퇴했다. 우선 수적 보자면, 지난 2016년 총선의 경우 정의당 6명, 울산지역의 무소속 2명(이후 민중당 입당) 등 모두 8명이 당선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의당 의원 6명만 당선됨으로써 의원수가 2명 줄었다.
'진보후보' 당선자 비교
선거 | 비례대표 (정의당) | 지역구 | 총계 |
2016년 (20대) | 4석 | 4석 (정의 2 / 무소속 2) | 8석 |
2020년 (21대) | 5석 | 1석 (정의 1) | 6석 |
질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주목할 것은 지역구 의원이 4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정의당을 살펴보자면, 의석수가 6석을 차지해 현상유지를 한 것 같지만 질적으로는 후퇴했다. 구체적으로, 정당투표지지율이 2016년의 7.23%에서 9.57%로 높아져 비례대표의원수가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지만, 지역구의원은 2명에서 오히려 1명으로 줄었다. 즉 지역구의 경우 250선거구중 75개 선거구에 출마해 평균 5.2%의 득표를 했지만 심상정의원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특히 노동자지역인 창원에서 여영국의원이 패배한 것이 뼈아프다. 구체적으로, 강기윤(미래통합당) 47.3%, 여영국(정의당) 34.9%, 이흥석(더불어민주당) 15.8%, 석영철(민중당) 1%의 득표율이 보여주듯이, 창원조차도 자유주의세력과의 연대가 없는 진보세력의 ‘독자적 승리“는 아직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창원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뼈아픈 것은, ‘울산의 몰락’이다. 즉 ‘한국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 진보후보, 노동자후보가 전멸하고 미래통합당후보들이 싹쓸이를 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민중당과 노동당 후보가 함께 출마한 동구의 경우 두 후보 표를 다 합쳐도 미래통합당 후보의 표보다 못 미쳐 분열 때문에 망했다고 서로 손가락질 안 해도 된 것이라고나 할까?(물론 이를 뒤집으면, 두 후보의 표를 더해도 미래통합당에 질 정도로 진보후보들의 지지율이 낮다는 슬픈 이야기지만).
울산 진보후보 득표현황
지역구 | 순위 | 정당 |
동구 | 2위 | 김종훈 (민중당) 33.9% |
3위 | 하창민 (노동당) 2.5% | |
북구 | 3위 | 김진영 (정의당) 9.9% |
중구 | 3위 | 이향희 (노동당) 9.4% |
이번 선거와 관련해, 두 가지는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나는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소동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플랫폼정당’이라는 이름아래 위성정당을 만들기로 하면서 ‘비판적 지지파’의 재야원로 등이 중심이 되어 정치개혁연합을 출범을 시켰지만, 정의당은 처음부터 참여를 거부했다. 하지만 민중당은 이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민주당이 오히려 같이 하기를 거부해 스타일만 구기고 말았다. 녹색당, 미래당도 당내논란 끝에 참여했다가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연합대신 자신들의 ‘직할위성정당’인 시민을 위하여를 파트너를 택함으로써 사실상 팽당하고 말았다. 명분을 버리더라도 실속을 차리려다가 둘 다 잃고 만 것이다. 이번 소동은 아무리 어려워도 운동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반면에 구 사회당파가 주도하는 기본소득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해 비례 국회의원 한명을 배출했다. 그러나 시민을 위하여가 제명을 해주기 전에는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비극을 넘어서 희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이번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 소동이 ‘긍정적’인 결과도 있다. 이는 군사독재시절의 민주화투쟁 경력을 무기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하며 우리의 운동과 정치를 왜곡해온 ‘비판적지지’ 원로들이 그들이 지지해온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팽당하고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만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조차도 이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이다.
두 번째 정의당의 행적이다. 정당 지지율은 올랐고 의원수도 현상유지를 했지만 이번 선거의 최대패자는 (미래통합당이 아니라) 정의당 일지도 모른다. 이 모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진보진영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조국사태에 침묵한 데에서 연유한다. 조국사태이후 정의당을 기존 거대양당을 대체할 ‘정의로운’ ‘진보대안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크게 줄었다. 결국 정의당도 연동형이라는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렸다가 둘 다 잃은 꼴이 되고 말았다. 정의당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아래로부터 풀뿌리를 만들어 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어려운 ‘아래로부터의 길’(‘좌파 포퓰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상층부연합에 의한 ’위로부터의 길‘인데 이중 ’편한 지름길‘인 후자를 택했다가 더불어민주당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무엇보다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위성정당을 금지하고 비례를 늘리는 등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봐서 제대로 된 연동형으로 만들도록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준연동형 도입에 반대했던 미래통합당 등을 중심으로 선거가 엉망이 된 것은 준연동형 탓이라며 옛날로 돌아가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독일 등 선진국의 대부분은 연동형을 도입하고 있으면서도 잘 운용하고 있다. 이를 악용한 거대양당이 문제인 뿐 연동형은 죄가 없다. 사실 제대로 된 연동형을 도입했다면, 미래통합당은 20석 미만(17석)으로 졌을 뿐 지금처럼 참패하지 않았다. 수도권 등 경합지역에서 미래통합당이 간발의 차이로 짐으로써 그 표들이 모두 사표가 된 것인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도입했다면 그 사표들이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선거제도에 대한 무지에서 참패를 자초한 것이다. 이제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현 제도를 유지하자거나 옛날로 돌아가자고 주장할 수 있다.
이번 지역구 몰락, 특히 울산에서의 참패가 보여주듯이, 지역커뮤니티와 결합하지 못하는 노동운동, 진보운동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따라서 지역커뮤니티와 결합하기 위해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은 인류사적인 사건인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제 노동운동도 진보운동도 결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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