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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펭수가 우리 회사 신입으로 들어온다면?

펭-하!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글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EBS 연습생 '펭수'에 대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도 펭수를 매우 사랑합니다:) 고생해주신 하민지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펭-바! [편집자주]

 

펭수가 우리 회사 신입으로 들어온다면?

 

하민지

저술활동가, 옥바라지선교센터 운영위원

 

신입사원 펭수가 부담스러운 당신, 라떼를 끓이고 계시는군요

 

  상상해 보자. 우리 회사에 신입사원이 하나 들어왔다. 일단 겉모습으로는 여잔지 남잔지 알 수가 없다. 치마를 입는 날도 있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날도 있다. 화장도 하고 머리에 핀도 꽂는데 목소리는 굵은 저음이다.

 

  근데 이 친구, 회사 대표 이름을 막 부른다. 예를 들기 위해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대표의 이름을 빌려 보자. 회의 중 한 동료가 예산이 많이 들 텐데. 누구 돈으로 집행해요?”라고 물어보면 이 신입사원이 단병호라 대답한다. 직함 같은 건 안 붙인다. 이름만 막 부르는 것도 모자라 단병호 대표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편하게 말을 건다.

 

펭수는 EBS 연습생이고, 김명중은 EBS 사장이다. [편집자주]

 

  앞서 묘사한 것들은 전부 펭수 이야기다. 펭수는 EBS에서 만든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이다. 최근 203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직통령(직장인들의 대통령)’이라 불리고 있다. 위에 언급한 사례를 보면 펭수가 왜 직통령인지 알 수 있다. 이분법적 성별 고정관념과 수직적 상하 구조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모습에, 2030대 직장인이 통쾌함도 느끼고 위로도 얻고 있다.

 

  상상이 끝났으면 곱씹어 보자. 펭수 같은 신입사원, 괜찮을까? 여잔지 남잔지 알 수도 없는 외양을 하고 회사 대표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는 친구다. 감당할 수 있을까? 감히 주장하건대, 펭수 같은 신입사원이 부담스럽고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라떼를 끓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꼰대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나 때는 말이야가 있다. 이를 풍자하는 말 라떼는 말이야가 생겨났다. “Latte is horse”, “라떼를 끓이다등으로 변주된다.).

 

고기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단병호! (고기 사달란 말입니다 위원장님) [편집자주]

 

노동자 펭수와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면 안 되는 이유

 

  성별이 뭔지 구분하기 어려운 펭수의 외모부터 이야기해 보자. ‘쟤는 여자야, 남자야?’라는 의문을 품고 심지어 여자예요, 남자예요?”라고 직접 물어보기까지 한다면, 이는 회사 내 성 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할 수 있다, 혹은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성애자시스 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기준의 생각이다. 회사엔 다양한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지닌 성 소수자가 입사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성 소수자가 당신의 옆 테이블에서 근무하고 있을 수 있다.

 

  또한 남성은 수염, 여성은 치마 등 특정 성별에 특정 외양과 역할이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일은 회사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태도다. 남성이 치마를 입고 회사에 오면 그는 크로스 드레서(다른 성별이 입는다고 여겨지는 옷을 착용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치마나 화장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성도 화장을 할 수 있는 데다가, 여성만이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성 사원에게 미적 노동을 강요하는 일이다. 각 성별에 어울리는 외양은 애초에 없다. 각자의 개성만이 있을 뿐이다.

 

아이라인이 잘 어울리는 펭수입니다. [편집자주]

 

  상사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에게 사석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심상정 의원, 직함을 꼬박꼬박 붙여 존칭을 쓰라고 윗사람이 지시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모셔야 한다고 강요받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상사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직급이 나뉘어 있다. 이는 더 큰 책임을 지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적은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지, 아래 직급이 위 직급을 모시기 위해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다. 아래 직급의 사원이 위 직급의 상사를 모셔야한다는 발상은 수직적이다. 위 직급은 수직적으로 아래 직급에게 군림하고, 대접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더 많은 책임을 지기 위해 존재한다.

 

 

한국 사회의 편견과 금기에 도전하는 펭수, 언제든 당신의 동료가 될 수 있다

 

  펭수는 한 번도 자신의 성별이 무엇인지 밝힌 적이 없다. 다양한 옷을 두루 즐겨 입고, 아이라인도 그렸다가, 턱수염도 붙였다가 한다. 그러나 많은 이가 펭수의 성별을 남성으로 추정한다. 그의 굵은 목소리 때문이다. 여자친구 있냐고 질문받는 일은 예사다. 작년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는 펭수가 남자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성별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 펭수 콘셉트를 제작진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이에 펭수는 보란 듯이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전 거기(남자 신인상 후보에) 들어간 줄도 몰랐어요라고 의아해하며 말했다.

 

성별이 없는 펭수를 MBC가 남자신인상 후보에 올리자, 보란듯이 드레스를 차려입고 간 펭수! [편집자주]

 

  이렇듯 펭수는 자신의 성별이 무엇인지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그의 성별을 특정한다.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은 펭수가 여자와 남자의 존엄한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며 악마화하기까지 한다. 화장하는 남성을 이방인처럼 여기고 여성에게는 고정된 미의 상징만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별 이분법의 경계는 이렇게 공고하다. 얼마나 공고한지는 펭수를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펭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경계를 흩뜨리고 있다.

 

  펭수는 위계 구조 또한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부장, 차장, 과장 등의 직급을 전부 없애고 모두 평사원이 되자는 게 아니다. 갑질과 꼰대질을 거부하며 위 직급이 아래 직급을 하대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인이 자주 하는 어떻게 사장님 이름을 함부로 불러?”라는 말에는 마치 조선 시대 임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정서가 만연해 있다.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권력위력을 모두 가졌다고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태도다. 펭수는 이 또한 아랑곳하지 않고 일개 사원이 아니라 무려사원입니다라며 아래 직급의 사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펭수는 그저 펭수입니다. 남극에서 온 자이언트 펭귄이라고만 생각해주세요. [편집자주]

 

  한국 사회의 편견과 금기에 도전하는 펭수. 신입사원으로 어떨까? 펭수에 열광하며 펭수를 닮은 수많은 펭수들은 언젠가 당신의 동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