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네 가족이 이사를 갔어요! 이사 후유증으로 수영아빠는 마감을 한참 넘겨버렸답니다^^; [편집자주] |
이사를 했다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살던 등촌3동을 떠나 이사했다. 이사를 준비하고, 집을 옮기고, 짐을 정리하는 모든 과정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이사 한 번 하는데 심신이 갈려 나가는 것 같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집안 곳곳이 어수선하다. 여기서 더 정리할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살지 매일매일 고민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고민의 결과가 바뀐다. 이러다 다음 이사 갈 때나 짐 정리하는 건 아닌지.
이사를 가장 아쉬워한 이는 어머님이다. 수영이가 태어나고 거의 2년을 등촌3동 주민으로 사셨다고 할 수 있다. 1년은 꼬박 지니와 수영이를 돌보셨고,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는 일주일에 2번씩, 아니 수시로 파주와 서울을 왕복하면서 수영이와 사위를 돌보셨다. 어머님은 특유의 붙임성으로 동네 힙스터가 되셨다. 수영이를 포대기에 업고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성당 옆 채소 노점을 하는 할머니께는 계절마다 바뀌는 채소를 사서 반찬거리를 만들었고, 아파트 후문 붕어빵 노점에서는 딸과 사위에게 줄 붕어빵을 사셨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면 경비아저씨들과 계단청소 아줌마에게 드릴 유산균음료를 한 바구니 사셨다. 그래도 가장 돈독한 사이는 자식들 대신해서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또래 집단에 동병상련이라, 가던 길을 멈추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곤 하셨다. 대게는 자식 흉에서 시작해서 손주 자랑, 그리고 육아 정보까지 쏠쏠하게 공유하셨다. 사라졌던 포대기를 주공 5단지에 다시 유행시킨 건 확실히 어머님 공이였다. 한동안 내가 수영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나는 도통 누군지 모르는)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수영이 오늘은 아빠랑 나왔네’라며 인사를 건네곤 해서 많이 당황하기도 했다. 삭막하다는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어머님은 수많은 ‘이웃사촌’을 만들었다. 사실 긴 시간 등촌3동에 살면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발산역 ‘원당곱창’을 빼곤 아는 맛집도 없었다. 한 마디로 동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어머님의 조직화(!) 방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어머님은 2년 남짓 딸네 집에 오고 가면서 나름의 커뮤니티를 구축하셨는지 놀랍다.
새로운 동네에 기대도 크다. 이사하면서 강서·양천 민중의 집 회원들 도움이 컸다. 이사 전에 이미 수영이가 다닐 어린이집 리스트를 받았을 정도다. 커뮤니티의 힘이라니! 동네 맛집은 벌써 몇 곳 찾았다. 차례로 갈 예정이다. 첫 번째 맛집은 동네 청년의 도움이 컸다. 우리 동네에 엄청 맛있는 닭개장 집이 있다! 사실 이 동네 식당은 그냥 들어가도 맛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에 든 것은 주변에 공원과 놀이터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 캠퍼스만큼 넓은 공원이 있다. 수영이가 마구 뛰어다녀도 다 뛰지 못할 정도로 크다. 놀이터는 선택해서 갈 수 있다. 수영이 혼자 독차지할 수도 있다. 민집 회원들 말처럼 아이 키우기에는 최고인 것 같다. 아마도 수영이 입장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지나가는 버스를 맘껏 볼 수 있다는 것일 거다. 수영이가 하루 중에 ‘엄마’,‘아빠’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이 ‘이~이’다. 예전에 지나가는 버스에 숫자 ‘2’가 적힌 걸 보고 난 다음부터 수영이에게 버스는 ‘이~이’가 됐다. 길 건너에 버스차고지가 있다. 유아차를 끌고 나가면 원 없이 ‘이~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님은 두 번째 방문 때, 손자들 키우는 동네 할머니들과 안면 트셨다. 어떤 활약을 하실지 기대된다. 여기서도 포대기를 다시 유행시키실지.
마침 7월이다. ‘상평하계’ 시기다. 아직 폭탄 맞은 집안 꼴이지만 이사는 마무리됐다.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기 딱 좋을 때다. 잠깐 한숨 돌리고 난 후에 하반기엔 수영이랑 어떻게 지낼지 고민해야겠다. 그동안 고마웠다 등촌3동! 그리고 잘 부탁한다 방화...3동 이던가? 아직은 새로운 동네가 낯설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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