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편집자가 오랜만에 수영이를 보러 갔습니다. 편집자 삼촌이 수영이에게 처음 들은 말은 "가!" 였습니다. ㅠㅠ [편집자주] |
사자의 발톱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 한 장면 같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어느 쪽이든 수영이 손까지 가까이 가는 것에 성공한다면 가위를 든 엄지와 검지에 미세하게 힘을 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멈춘다. 관자놀이에서 땀 한 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아주 작게 ‘틱’하고 손톱 파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참았던 날숨을 쉰다. 떨어져 나간 파편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다. 바로 다음 작업으로 들어간다. 한 번에 손톱 하나씩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손톱 하나에 3번은 손이 가야 한다. 손톱 위치를 확인하고, 가위를 들고, 들숨과 멈춤, 싹뚝! 그리고 참았던 날숨을 쉬는 것이 한 과정이다. 이것을 최소 스무 번 이상 반복해야만 수영이 손톱 자르는 것이 끝난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나는 숨 막히는 액션 영화를 찍는다.
어른 손톱 자르는 일은 정말 일도 아니다. 아침에 세수하면서 똑깍 똑깍! 고작 1~2분이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22개월 아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영이가 영아였을 때는 나름 수월했다. 엄마가 잠든 수영이를 힙시트에 안고 서 있으면 내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면서 손톱을 자르면 됐다. 수영이도 편안했고, 손톱을 자르는 나도 편안했다. 1~2분 정도는 아니지만, 후딱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영이 덩치가 커지면서 작업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힙시트 대신 방바닥에서 엎드려 자는 사이에 손톱을 잘라야만 한다.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일단 수영이는 어떤 손가락도 내어줄 수 없다는 자세로 잔다. 눕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엎드려서 두 손과 두 발을 꼬~옥! 모은다. 결정적으로 수영이는 정말 랜덤으로! 뒹군다. 심지어 장거리로 뒹군다. 아주 멀리까지! 수영이 손톱을 자르는 것은 난이도가 높다.
작업환경만큼 어려운 것은 ‘제때’ 하는 것이다. 그냥 손톱 자르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두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유튜브 자장가 연속 듣기다. 수영이 잠들라고 틀어주는데, 아빠에게 더 치명적이다. 수영이 재우려고 같이 누워있다가 먼저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수영이가 깨워서 일어나게 된다. 숙면은 했지만, 임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갔다. 다음 걸림돌은 아빠인 나다. 어느 땐 수영이가 잠이 들면 피곤했던 내 몸 상태가 갑자기 말똥말똥해진다. 당연히 각성 된 상태에서 임무에 들어가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갑자기 보고 싶은 TV프로그램 생각이 나고, 먹고 싶은 뭔가가 확 땡기기도 한다. 흡연 욕구가 치솟기도 한다. 이쯤 되면 임무는 잊어버리고 누워서 TV를 틀거나 냉장고 문을 연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현관문을 열고 후다닥! 주차장으로 달려가 폭풍 흡연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임무를 망각한 아빠가 자유시간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수영이가 부스스 일어나 아빠를 빤히 보고 있다.
무슨 이유든 간에 제때 손톱을 자르지 못하면 되돌아오는 결과는 무시무시하다. 수영이 손톱은 사자 발톱이 되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생채기를 낸다. 아빠 멱살 잡고 목에 실선을 만들고, 안기려다가 엄마 목에 오선지를 그린다. 등에 업혀 바둥거리면서 할머니 뒷목에 밭고랑도 만들고, 기차 없는 기차놀이 세트를 사 왔던 외삼촌 어깨엔 빨간 기찻길을 만든다. 이 정도 사태까지 벌어지면 아차 싶다. 다른 무엇보다 수영이 손톱 자르기가 제1과제가 된다. 어떻게든 잠과 놀고 싶은 욕망을 참는다. 그리고 자그만 손톱 가위를 들고, 숨 막히는 액션 영화 한 편을 찍는다. 그제야 (늦었지만) 피비린내 나는 수영이의 공격을 멈출 수 있다. 당분간이지만!
솔직히 다음에 ‘제때’ 수영이 손톱을 자를 수 있을지 장담할 자신이 없다. 또 잠이 들고, 또 리모컨을 찾을 확률이 높다. 수영이 낮잠 잘 때 같이 자는 것이나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거다. 아마도 이런 악순환은 수영이 스스로 손톱을 자를 때까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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