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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마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실효성에 대해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실효성에 대해

 

2022. 1.

 

  오는 1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은 고 김용균의 죽음을 딛고 만들어졌다.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중대재해뿐만 아니라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2020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등 대형 참사를 경험하면서 더 이상 생명에 대한 경시와 안전 불감증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자각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 산업재해중대 시민재해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을 넘어서 처벌하도록 만들어졌다.

 

  문제는 실효성이 어느 정도 담보되느냐 하는 점이다. 최근 광주시 화정동에서 대기업이 신축하던 고층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지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아직 다섯 명의 노동자는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현장에는 394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상상조차하기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조금이라도 의식했다면 결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집어본다.

 

  노동부가 잠정 집계한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828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2020882명보다 54명이 줄었지만 여전히 8백 명대가 유지되고 있다. 이 수치는 산재사고사망 세계 최상위에 해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재해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국민 앞에 확약했다. 함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는 위의 수치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국가가 여전히 인간의 생명보다 기업의 경제활동을 우선에 둔 정책 때문에 빚어진 당연한 결과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그 실효성에 있어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한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오는27일부터 5인 이상 사업장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상시 노동자가 50명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금액이 50억 원 미만인 건설현장은 2024127일까지 2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 산재사고사망은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산재사고사망은 5~49인 사업체에서 351, 5인 미만 사업체에서 317명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2024년까지는 그 실효성이 미미할 것이고, 2024년 이후에도 그 효력이 절반밖에 미치지 않는다.

 

  둘째,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할 최고 경영자들은 이 법의 적용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외면하고 대신 경영계의 요구는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예컨대 동법 제5다만,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발주처나 최고 경영 책임자들은 대부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것이 예상된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은 사후 징벌적 책임을 묻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대재해의 예방적 효과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광주시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만 놓고 보더라도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시멘트가 제대로 양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위층의 타설 작업을 한 탓으로 빗어진 사고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미 김(100), 광장(60), 태평양(100) 10대 로펌은 491명에 이르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팀을 꾸렸다. 자본이 사후 대응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의 반영이다.

 

  넷째, 노동부, 검찰, 법원의 자본에 대한 온정주의도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지난 13일 수원지법은 고 이선호씨(지난해 4월 평택항에서 컨데이너에 깔려 사망) 관련 재판에서 원·하청 관련자들에게 각각 금고 4월과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다. 강화된 양형기준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어도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의 자본 편향적 온정주의는 계속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법의 실효성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반문할 수 있다. 함에도 중대재해처벌의 실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법률이 재정되면 상당기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상당기간 현행대로 유지된다면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시민재해의 피해를 막기 어렵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동시 개정을 통해 산업재해의 예방적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합법·불법을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는 다단계 원·하청 관계를 감안해 발주처(원청)의 책임을 확실하게 물을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셋째, 대부분의 중대재해가 발생되고 있는 50인 미만 사업체에도 동시적 전면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넷째,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기업체 대한 양형 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 바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본다. 또 지금부터 법 개정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함으로써 차기 정부의 노동정책에 적극 반영시키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