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
그래도 송구영신
2021. 12.
세월은 하 수상한데도 시곗바늘은 돌고 돌아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시기임에도 미로에 갇힌 듯 마음이 무겁다. 올해의 사자성어에 오른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의 인곤마핍(人困馬乏)이 가슴에 와 닿는다.
코로나19와 시름한 지 만 2년이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일상을 파괴하는 공격의 끝이 어디인지 가름조차 되지 않는다. 확진자가 8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장은 12월 중 1만명, 내년 1월에 2만명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위중증자가 하루에 1천명가까이 나오고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환자도 있다. 우석훈 교수는 “확진자 4~5천 명에 의료체계가 이렇게 무너진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방역 방침을 믿고 충실히 따랐던 국민의 인내가 한계점에 닦아서고 있다.
국민은 국가의 역할을 의심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 점이 한둘 아니다. 예컨대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천명당 병상수가 12.3으로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반면에 공공병상은 1.3으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또 임상의사는 2.4명으로 OECD 평균 3.5명에 한참 모자란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공공의료기관과 의료진을 확충하라는 국민의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정부가 귀를 막아온 게 오늘의 위급상황을 초래했다.
위드 코로나 45일 만에 거리두기 4단계 수준으로 전환했다. 소상공인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소상공 업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채 2년째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정부도 사회도 별반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경제는 지표를 들어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국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언제쯤 이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희망을 줘야할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코로나의 답답함에 더 짜증을 보태고 있다. 한 사람은 너무 영민(?)해서 그런지 너무 변화무쌍해 쫓아가기 힘들고, 한 사람은 너무 무식(?)해서 그런지 하는 말마다 해설자가 필요하다. 카멜레온의 변화가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제 그만 현기증을 걷어줬으면 좋겠다.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와 에리크 드 몽골피에 검사를 모방한 놀이로 공정과 정의를 더는 모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능시험에 답이 없는 문제를 출제해 큰 혼란을 빗게 했다. 대선 정국이 그와 다르지 않다. 국민은 어떤 후보가 더 나쁜지, 답이 없는 답을 찾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 했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한 번의 사과할 일에도 크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대선 후보라는 자들이 “유감스럽다” “송구하다” “사과한다”는 말을 경쟁하듯 뱉어내고 있다. 이미 자격 상실이다. 그것도 양심과 가치에 따른 진솔한 사과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이라는 영혼 없는 사과를 습관처럼 하고 있다.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참이라면 그렇게 미안하고 송구한 일이 많다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게 상식과 도리에 맞다. 그게 국민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더는 일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사의 한 구절이다.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묶은 것 낡은 것을 털어내야 할 때다. 새롭고 참신하고 더 좋은 것을 소망하는 것은 인류의 특권이다. ‘그래도 송구영신’이라는 말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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