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PRISM>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최윤식 선생님의 경제정세 분석 하편을 싣습니다. 결국 두편을 마감해주신 최윤식 선생님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편집자주] |
다시 경제공황이 다가온다
최윤식
건국대 경제학 강사
대안정기와 세계화: 신자유주의 물가안정의 작동방식
우리는 전편에서 지금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에 맞서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까지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있고, 이러한 통화주의 긴축정책은 이미 1970년대 스테그플레이션의 위기 속에서 실행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금융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재편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수립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신자유주의를 폭압적인 노동자 탄압과 극심한 부의 양극화로 기억하는 진보진영과 달리 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시기를 경기불안이 종식된 긍정적인 시대로 평가해 왔다. 예를들어, 미국 연준 의장을 지낸 바 있는 벤 버냉키는 세계적 금융공황이 발생하기 불과 몇해 전인 2004년에 신자유주의 금융주도 축적체제가 형성된 1980년대 이후부터를 세계경제가 완만한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을 유지해온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라고 표현한 바 있다.
지금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고금리 통화긴축은 과거 80년대 초의 미국과 유럽, 그리고 금융위기를 겪던 남미 국가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주로 자본 자유화에 기초한 금융주도의 자본질서가 수립되던 신자유주의 초기에나 실행되던 정책이다. 그 이후 2007년 금융공황 직후의 몇몇 유럽국가를 제외하고 지난 40여년 간 고금리 통화긴축이 실행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고금리 통화긴축을 통해 억제하고자 하는 인플레이션이 1980년대 이후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파괴된 노동자 민중의 피폐해진 삶과 극심해진 양극화의 문제를 차치한다면 ‘완만한 성장과 안정된 물가’를 ‘대안정기’라 표현해온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유물처럼 치부하며 ‘대안정기’라고 불릴 수 있었던 거시경제적 현상의 이면에는 전지구적 부의 양극화가 존재했다. 90년대 초, 소련과 동구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세계가 미국의 단일 패권 하에 재편되고, 자본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동유럽의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중국이 세계적 가치사슬을 통해 초국적 자본의 순환과정에 연결되는 하위 생산공장으로 편입되자 중심부 패권국가들은 인플레이션의 걱정 없이 저개발국가에서 저임금에 기초해 생산된 재화들을 값싸게 소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부 저개발 국가들로 생산기지를 이전해 생산하고 이를 저가로 수입해 소비하는 한 미국과 같은 중심부 국가들에서는 무역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었고 중심부 국가들은 해외로 수출하지 않는 한 만성적인 수요부족에 시달리며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인 틈을 메워준 것 또한 금융과 통화주의에 기초한 유연한 통화정책이었다. 저금리를 통해 통화를 확대하여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은 화폐가 자산시장에 흘러들게 하여 자산가격을 부풀림으로써 온전히 중심부 부자들에게 부가 집중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의 집중과 물가안정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민간부채와 자산가격의 거품, 그리고 저개발 국가 노동자들의 저임금 과잉노동 위에 불안하게 지탱해올 수 밖에 없는 불안한 ‘안정기’였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는 지난 시기 이미 두 차례의 금융버블 붕괴를 통해 그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을 드러낸 바 있다. 첫번째 붕괴는 2000년 ‘닷컴버블’ 붕괴였다. 끝없이 오르기만 할것 같던 기술주들의 처참한 사업실적이 확인되며 실물경제와 괴리된 과도한 주가 버블이 하루아침에 붕괴한 것이다. 물론 잽싸게 부동산 시장과 관련 파생상품 시장으로 이동한 금융자본들의 빠른 대처로 대규모 금융공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도 앞으로 들이닥칠 더 거대한 금융공황을 키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토지와 주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임대소득의 분명한 한계를 넘어 더 비싸게 구매할 구매자의 지속적인 유입에 의존하는 주택시장 거품 역시도 분명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붕괴한 금융시장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던 부실채권들을 연준이 떠 안아준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축적체제의 최종붕괴 만큼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 덕에 자산시장으로 흘러들 더 많은 유동성을 확보하게된 금융자본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다시 주식과 주택시장에서 2000년 닷컴 버블과 2007년 금융공황을 넘어서는 거대한 자산가격 거품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더 큰 버블을 키움으로서 체제 연장을 지속하던 신자유주의는 또 다시 거대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의 재림
신자유주의 하에서 경제위기는 다음 위기로 붕괴를 전가하며 버블을 더 크게 키워왔기에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경제위기가 이전보다 더욱 심각할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만, 누적된 버블의 규모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커다란 문제는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 체제의 작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다.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민간부채를 팽창시켜 자산시장의 버블을 키움으로써 과잉축적이 실물경제를 우회해 자산시장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실물경제의 총수요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생산라인을 저개발국으로 확대해 강도 높은 노동착취를 통해 값싸게 상품을 생산해 중심부에 공급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금까지의 금융위기들이 자산시장의 부실을 감당하지 못해 발생한 주기적 붕괴였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경제위기는 자산시장 부양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던 또 다른 한축인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의 세계화가 종식되며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위기는 지금까지의 버블 붕괴에 의한 금융위기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즉, 이 위기는 보다 근본적이며 본질적이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국제적인 물류이동이 제약되고 국제적인 생산연계가 깨어지면서 물건가격이 상승하고 이에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해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오르는 우연적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 일시적 현상처럼 보이지만, 이미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미-중 무역갈등이 보여준 바와 같이 세계화에서 하위 생산기지 역할을 하던 중국을 위시로한 저개발 국가들이 더 이상 신자유주의 생산-무역 질서 하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지탱하는 지정학적 질서를 러시아가 더 이상 수용하지 않으려 한데서 발생한 사건이다. 따라서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에 의한 자원이동의 제한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표면적 이유보다 보다 심원한 축적체제 운동의 교란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1970년대 스테그플레이션의 장기불황 때처럼 장기적으로 고착되어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체제의 이행 없이 이 위기는 타개될 수 없다
지금 직면해 있는 경제위기의 심각성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위기에 대응하는 지배세력의 지금의 경제정책들이 지니는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성격에 있다. 지금 세계 각국 정부들은 당면한 경제위기에 맞서 두 가지 전통적인 거시경제정책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과 같은 케인즈주의적 경기부양 정책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물가 상승에 대응해 의료비·에너지 가격 인상 억제를 통한 물가안정과 함께 세액공제를 확대하여 직접적인 가계지출의 축소를 도모하고 청정 에너지 산업에 국가가 대규모 직접투자를 단행함으로써 일자리 창출 및 가계소득 안정화를 꾀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에대한 재원마련을 위해 연간 수익 10억 달러 이상의 대기업들에게 최소 15%의 최저 법인세를 부과하고 자사 주식가격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구매하는 것에 대해 1%의 세금을 부과하여 정부지출을 위한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 이 법안의 주요 골자이다.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적인 통화주의 거시경제정책에서 벗어나 다시 1970년대 이전의 케인즈주의적 경기부양과 기업 증세로 회귀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대응이 지금의 경제위기에 효과적일지는 의심스럽다. 우선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애당초 바이든이 집권 시 계획했던 3조 5000억 달러 규모의 국가재건법(BBBA, Build Back Better Act)에서 한참 후퇴한 7400억 달러 규모의 축소 법안이란 점에서 ‘케인즈주의로의 강력한 선회’일 수 없다. 더불어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연준은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통한 전통적인 통화긴축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와 통화당국 간의 상반된 정책은 서로의 효과를 상쇄해 정책 효율성을 약화시킬 여지가 크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정책방향이 미국 주도의 세계화를 통해 형성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운영을 미국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는데 있다. 국제적인 생산연계와 가치사슬을 끊어내기 시작했던 트럼프 집권시절부터 미국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운영 포기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러한 방향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일관되게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지탱하는 것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다른 전통적인 거시경제적 대응은 통화주의 긴축을 통한 인플레이션의 대응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 역시 금리인상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문제는 전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 금리인상이 실물경기를 강하게 압박하여 경제위기를 유발할 것은 불보듯 뻔 하지만,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는데 있다. 스테그플레이션에 대응했던 1970년대의 통화긴축이 부자와 자산가들의 이익에 치우친 명확히 계급편향적 정책이었지만, 이 정책의 편향성의 효과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욱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의 부채는 정부가 아닌 민간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강력한 고금리 긴축은 정부가 아닌 민간을, 특히 자산시장 부양을 위해 동원되었던 서민들의 부채를 압박하게 된다. 이러한 압박에 대응하고자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하는 미국과 달리 일방적인 보수적 통화정책에 경도되어 있는 한국의 경우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5년간 60조원의 법인세 감세를 계획하고 있을 뿐, 서민 경제의 타격에 대한 어떠한 대응도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태다. 경기후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발생하는 스테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경우,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실물경제로 통화가 팽창되는데 있는 것이 아닌 세계화의 종식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있는 한 통화긴축이라는 전통적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행은 인플레시션을 잡을 수 없을 뿐더러 민중생존권을 처참하게 파괴할 뿐이다.
결국 우리가 직면해 있는 것은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근본적인 위기이며 지금의 정책방향들은 위기의 모든 하중을 노동자와 서민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출구없는 위기를 지속하며 체제 유지를 이어나가려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체제의 근원을 향한 저항과 투쟁만이 유일한 선택이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전 > PR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PRISM] 한미일 대 북중러, 진짜로 온다 (0) | 2022.11.23 |
---|---|
[PRISM] 노란봉투법과 파업권 (0) | 2022.10.24 |
[PRISM] 다시 경제공황이 다가온다_ Part.1 (0) | 2022.08.22 |
[PRISM]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성격과 노동운동 과제 (0) | 2022.06.22 |
[PRISM] 노동자 투쟁으로 보수양당 ‘노답’ 정치 균열내야 (0) | 2022.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