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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교과위원
1-2) 생태위기
1-2-1) 경제성장과 생태위기
고무줄은 당기면 늘어나지만, 놓으면 줄어들어서 다시 본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탄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무줄의 탄성력은 무한대가 아니다. 너무 센 힘으로 당긴다면 고무줄은 끊어져버려서, 다시 본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연생태계도 그렇다. 외부의 힘에 의해서 균형이 깨지더라도, 다시 균형을 회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생태복원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태복원력보다 더 강한 외부의 힘이 작용할 경우, 생태계는 붕괴되어 균형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고무줄이 끊어지는 것이다. 이런 불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위기의 가장 거시적인 요인으로는 지구온난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아날로그 기계시대의 경제는 화석연료를 먹어야 성장할 수 있었다. 석유, 석탄, 가스 등이었다. 화석연료는 연소되면서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화석연료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대기 중에 지구온난화의 싹이 뿌려지게 된다.
지구생태계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육지와 해양에서 흡수하여 대기를 정화하는 생태복원력을 지니고 있다.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땅과 바다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2020년 오늘날 지구가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은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의 58% 정도이며, 나머지는 대기 중에 누적된다.
화석연료 소비량이 늘어나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흡수량을 넘어서게 되면, 초과량이 대기에 누적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누적된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로 작동하면서 대기의 온도가 높아지게 된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1850년대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이었다. 2020년 현재는 400ppm이다. 그리고 대기 온도는 1850년과 비교해서 0.9~1.0℃ 정도 높아졌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시 낮아지면 대기 온도도 낮아져서 다시 균형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대기 온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배출량을 줄이더라도 대기 온도를 낮추기 어렵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때부터는 대기 온도가 계속 높아지게 된다. 그 지점이 바로 지구온난화의 ‘티핑 포인트’이다. 생태연구자들은 1.5℃가 티핑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경제는 꾸준히 성장해왔고, 그에 평행선을 그리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증가해왔으며, 대기 중에 누적되는 이산화탄소 농도도 높아져왔다. 20세기 중후반부터는 그 속도가 눈에 띌 만큼 빨라졌다. 20세기 중후반기는 동-서 체제경쟁의 시대였으며, 양쪽에서 모두 ‘성장주의’를 최고의 전략으로 추구하고 있던 시기였다. 포드주의 ‘대량생산-완전고용-대량소비’ 체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수적이었다. 성장은 화석연료를 먹어야 했고, 그 대가는 자연생태계가 치러야 했다. 그 무렵 녹색 선각자들이 등장하여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섰지만, 성장주의자들은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동-서 체제경쟁이 끝나면서 패권을 장악한 신자유주의는 성장주의를 이어받아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그동안 성장을 가로막고 있던 경제국경선조차 사라진 마당에 성장을 멈추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 기본협약’(UNFCCC), 1995년 ‘교토 의정서’가 체결되었지만,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종잇조각 취급을 당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시대 내내 기후위기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티핑 포인트에 근접하는 곳까지 이르게 된다. 그럴수록 녹색운동 안에서는 ‘탈성장’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의 지구온도와 비교해보면, 1940~50년대까지는 온도의 상승은 별로 없었다. <성장의 한계>가 간행된 1970년 무렵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부터 올라가기 시작한 온도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까지 0.4℃가량 높아졌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무렵까지는 0.6℃가량 높아졌다. 그리고 온도 상승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2015년 파리 기후회담이 열렸을 때는 0.9℃가량 높아져 있었으며, 2023년에는 1.0℃ 눈금을 넘어서게 된다.
지구온난화는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지구온도’ 개념이 처음 도입된 2000년에는 1.5℃에 도달하는 시점을 2045년경으로 예상했으나, 2023년 10월에는 그것이 2034년 9월로 수정되어야 했다. 이런 변화를 고려해볼 때 티핑 포인트가 더 앞당겨져서 2020년대 말경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노동과 사회의 경제질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빙산과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은 해수면 아래로 잠기게 된다. 태풍, 가뭄, 혹서, 혹한 등등, 오늘날에는 드물게 발생하는 날씨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지구의 한쪽 편에서는 빙하기가 덮치고, 다른 쪽 편에서는 평야가 사막으로, 사막은 초원으로 변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인류도 대환란에 빠뜨릴 것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단순히 대기 온도 상승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지구생태계의 균형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갑자기 깨지는 문제이다. 생태연구자들을 따르자면, 지구생태계는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중 어떤 구성요소가 티핑 포인트를 넘어가게 되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구성요소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티핑 포인트를 넘어갈 수 있다.
지구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인으로는 우선 대기의 순환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적도 부근의 뜨거운 공기와 남북극 부근의 찬공기가 지속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지구의 기온은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지도 않은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대기의 순환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닷물의 순환 시스템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것은 심층 한류와 표층 난류 사이의 순환 시스템이다. 만약 이 순환이 끊어지게 된다면, 그에 상응하여 대기의 순환도 끊어지게 된다. 생태연구자들을 따르자면, 이것이 연쇄반응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1만2천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2천 년 동안 지속된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시작된 원인도 다름 아닌 해류 순환 시스템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북대서양 해류의 순환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 연구보고서를 따르자면, 바로 그 북대서양 해류가 다시 끊어지게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서 북극과 그린랜드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만약 북대서양 해류가 끊어지게 되면, 이어서 북극의 찬공기와 적도 부근의 따뜻한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대류 시스템도 붕괴하게 된다. 그 결과 북극 부근의 대기 온도는 계속 떨어지게 되고, 이어서 유럽대륙도 얼어붙어서 빙하기가 시작된다. 보고서는 티핑 포인트까지 남은 시간이 불과 수십 년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투모로우>는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영화적 과장법을 보태어 만든 작품이다. <설국역차>도 그렇다. 물론 북대서양 해류가 끊어지는 속도나 그 뒤에 벌어질 기온의 변호는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불현듯 빙하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닌 듯 보인다.
이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생태계 문제가 인간의 노동과 삶,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30년 뒤 오늘날 이 문제는 나머지 모든 문제를 압도해버릴 정도로 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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