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 이야기 두 번째 글입니다! [편집자주] |
두 번째 이야기, CCTV, ‘공익 목적’과 ‘감시 욕망’ 사이의 아슬한 경계
조광복
(전)청주노동인권센터 상담활동가
1.
세계 최초의 CCTV는 1942년 독일에서 발명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보다 이른 1936년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선보인, 사장실에다 모니터를 두고 실시간으로 작업장의 노동자를 감시하는 장면은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거의 1백년 뒤 우리 사회와 별다르지 않았어요.
히치콕의 1954년 작 영화‘이창 Rear Window’. 주인공이 다리를 다쳐 아파트에 갇혀 지내는 동안 다른 동 창문으로 비치는 이웃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을 엿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훔쳐보기’의 도구로 쓰인 망원경의 렌즈가 그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CCTV 렌즈도 어떤 면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크게 나왔었죠. ‘개 대통령’이라고 칭송 받던 반려견 훈련사가 대표인 회사에서 대표 부부가 CCTV로 직원들을 감시하며 갑질을 부렸다지요. CCTV 여러 대가 직원들의 모니터를 겨냥했는데 직원 A씨한테는 "의자에 거의 누워서 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는군요.
CCTV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산업기밀 보호, 시설 보호, 범죄 예방, 이용자들의 권익 보호 등 각종 공익을 앞세워 설치하였지만 그와 더불어 노동자를 감시하고 싶어 하는 사업주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2.
꽤 오래 전 일입니다. 중소도시의 시내버스 회사 노조위원장이 찾아왔습니다. 그이는 회사가 밀던 후보와 경선을 붙어 새로 위원장이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는데요. 그 옆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어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둘도 없는 친구인데 해고됐어요. 버스요금을 횡령했다는 거예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녜요. 본인도 억울하다 하고요. 그런데 희한한 게요. CCTV를 보면 요금을 횡령했다고 의심을 살 수는 있겠더라고요. 이 친구 해고된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죠. 회사한테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본보기 삼아서 이 친구를 자른 거라 생각해요.
해고된 친구 얘기는 뒤에서 하고 버스 CCTV 얘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시내버스 안에 CCTV가 설치되기 시작한 때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무렵이었습니다. 물론 사고 예방 등의 목적도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의도가 있었어요. 기사 감시였죠. CCTV가 겨냥한 방향에는 늘 요금통과 운전석이 포함됐어요.
교통카드가 대세인 요즘에야 상상이 안 가지만 현금을 내고 타던 시절 운전기사들의 요금 횡령이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기사들도 할 말은 있었죠. 워낙 박봉이었던 데다 횡령으로 치면 회사 운영진들이 제일 심했으니까요. 하루 운행을 마치면 주주들이 직접 버스 요금통을 열어 하루 운송수입금을 정산했는데, 말이 정산이지 돈 주머니를 가져와 요금을 긁어 담았다고 합니다. 남은 돈이 회사의 수입으로 들어가는 거죠.
위아래 할 것 없이 횡령이 횡행하던 시절 기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버스회사마다 CCTV가 설치되었어요. 즉, 시내버스 CCTV는 그 태생에서 보듯 공익의 필요성과 감시의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줄곧 논란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새로 위원장이 된 이의 친구 김유관 씨가 그 사연도 기가 막힌 주인공이 됐어요. 유관 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접수했습니다. 회사가 해고의 증거로 제출한 문제의 CCTV 녹화기록을 봤어요. 분량은 10분 남짓했습니다. 아래의 기록은 녹화된 유관 씨의 동선입니다.
① 종점에서 차량을 정차하고 버스 바닥, 유리창, 벽면을 청소함. ② 요금통으로 걸어가 오른손으로 거스름돈 단추를 총 6회에 걸쳐 누름. ③ 이후 손바닥을 약간 오므린 상태에서 동전배출구를 2회 훑음. 그리고 팔을 뺐는데 손바닥을 약간 오므린 상태이었으며 동전을 움켜쥐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음. ④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요금통을 살핀 뒤 차량 문 밖으로 걸어가 담배를 피움.
CCTV 화면으로는 요금 횡령으로 의심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요금 횡령 사실이 인정된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승산이 거의 없었습니다. 노동위원회나 법원 모두 ‘운송수입금은 버스회사의 존립 기반으로 버스요금 횡령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중대한 귀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손을 들었습니다. CCTV 녹화기록으로 요금횡령이 인정된다는 거였어요. 말수가 적은 유관 씨는 정말 억울하다고, 절대 요금을 착복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어요. 유관 씨를 믿어보기로 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나는 고민을 하다 회사에 전화해 노무 총괄 책임자인 상무를 찾았어요.
안녕하세요. 유관 씨 해고사건 대리인인데요. 저도 사실 횡령을 의심하는 실정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회사에 가서 그날 CCTV 원본 전체를 보고 싶은데요. 만약 원본에도 문제가 없으면 제가 유관 씨 사건에서 손을 떼려고 합니다. 가서 볼 수 있도록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뜻밖에도 상무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회사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상무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상무) CCTV 원본이 여기 없어요. 저기 중앙노동위원회에다 제출해서 없어요... (그리고 약간의 횡설수설)
(나) 무슨 말씀이세요? 거기엔 10분짜리 편집본만 있고 원본은 없는 것 알고 왔는데요?
중앙노동위원회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삭제하거나 편집하지 않은 CCTV 녹화기록 원본을 제출받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회사가 원본을 제출했어요. 유관 씨와 노조위원장이 원본을 확인하러 올라갔고 곧 연락이 왔어요. 흥분한 목소리로.
종점에서 차가 출발해서요, 처음으로 1000원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간 승객이 있었는데요. 이때 거스름돈 단추를 안 누르고 이미 배출구에 있었던 돈을 가져갔어요. 동전이 거기 있었던 거죠. 요금통이 설치된 지 얼마 안 돼 돈이 잘 나오나 시험해본 거였어요.
유관 씨는 해고된 지 6개월 만에 복직했습니다. 그러나 유관 씨 인생에서 6개월은 이미 망가졌습니다. “제가 6개월 동안 회사 돈 훔친 놈이라는 말 들을까봐 집 밖에 나가질 못했어요. 집에서 술만 먹었어요.”
회사는 정보를 관리하는 우월하면서도 독점적인 권한의 힘으로 ‘진실’을 조작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감시·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조작이 뒤따른 것이죠. 감시·사찰하려는 욕망과 조작하려는 욕망은 그 뿌리가 같습니다.
‘정보 관리 주체가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고 정보의 관리가 불투명할 때’
3.
버스에 설치된 CCTV는 분명한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사고 원인 규명, 사고 예방, 교통정책 수립 등에 필요한 정보 제공 등이죠. 버스 내 CCTV는 무슨 근거로 적법하게 설치될 수 있었을까요? 「개인정보보호법」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ㆍ운영 제한)
①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된 장소에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ㆍ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경우
2. 범죄의 예방 및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3. 시설안전 및 화재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4. 교통단속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5. 교통정보의 수집ㆍ분석 및 제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7조의3(영상기록장치의 설치 등)
① 운송사업자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에 사용되는 차량의 운행상황 기록, 교통사고 상황 파악, 차량 내 범죄예방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의 사업용 자동차에 영상기록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이하 생략)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7조의3이 신설된 때는 2018년 9월 18일이었습니다. 2019년부터 버스 사업자는 영상기록장치인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에 근거해서 적법하게 CCTV를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2011년 9월 30일 제정됐는데 그 전에는 공공기관에 한정하여 적용되는「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버스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곳곳에 CCTV는 얼마든지 설치됐어요. 즉, 법이 현실을 뒤늦게 쫓아가는 형국이었죠. 개인 정보에 대한 법적 관심은 뜻밖에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4.
시내버스 CCTV와 얽힌 이야기를 하나 더 할 게요. D운수의 영수 씨는 며칠 동안 찜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회사가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배차과장이 불렀습니다.
영수 너! 요즘 왜 노조 임금 합의한 거 불평불만 퍼뜨리고 다녀? H운수 조합장하고는 왜 통화했어?
영수 씨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에 지역 버스 사업자들과 각 회사 노조위원장들이 공동으로 임금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협약 가운데 기존의 임금 조건까지 양보하는 내용이 있어서 버스기사들의 원성이 들끓었어요. 영수 씨도 그 축에 끼어 직장 동료들과 여러 얘기를 나누고 친분이 있던 인근의 H운수 노조위원장하고도 통화를 했던 겁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회사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 회사는 영수 씨가 타던 고정배차를 해제하고 소위 ‘땜빵’이라고 불리는 예비기사로 내려 앉혔어요. 버스 기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고정’을 내리고 ‘땜빵’을 태우는 겁니다. ‘고정’은 정해진 차량으로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것을 말하고 ‘땜빵(예비)’은 ‘고정’ 기사가 쉬는 날에 배정되는 그때그때 다른 차량으로 다른 노선을 운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후 회사가 감춰놓은 증거가 유출됐습니다. 영수 씨의 모습과 음성이 고스란히 녹화·녹음된 파일이었어요. 회사는 버스 안에 설치된 CCTV의 녹음 장치를 가동시켜서 영수 씨가 교대시간에 버스 안에서 동료들과 대화하는 소리,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통화하는 소리를 녹음해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을 별도로 취합해서 보관해왔던 겁니다. 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이지요.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
①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ㆍ운영 제한)
⑤ 고정형영상정보처리기기운영자는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춰서는 아니 되며, 녹음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7조의3(영상기록장치의 설치 등)
③ 운송사업자는 영상기록장치와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3. 녹음기능을 사용하여 음성기록을 하는 행위
버스업계에서는 그 전부터 기사들 사이에서 CCTV를 이용해 녹음을 한다는 의혹이 파다했습니다. 그러다 D운수에서 제대로 증거물이 유출되면서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의혹이 ‘엽기적인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파장이 커서 방송에도 여러 번 오르내리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과연 없어졌을까? 알기 어렵습니다. 사업주와 균형을 유지해야 할 노동조합의 많은 수가 버스 사업주와 ‘예속적으로 결탁’해 있는 게 현실입니다.
5.
영화 ‘모던타임즈’의 공장주는 모니터로 작업자들의 개별 노동을 감시하지만 21세기 한국사회의 일터에서 CCTV는 더 나아가 노동조합을 제압하는 용도로도 사용됐습니다.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사장은 소속 노동자 전부를 용역으로 돌리고 싶었습니다. 노조는 저항했죠. 예고도 없이 CCTV가 대폭 설치됐습니다. 사람 발길이 뜸한 곳까지요. 곧바로 젊고 건장한 용역 경비들이 투입됐습니다. 명분은 시설 보호였어요. 이들은 몰려다니면서 몇 달 내내 휴게소 곳곳에서, 인적 뜸한 후미진 곳에서까지 대부분 여성들인 노조 조합원들과 시비를 벌였어요. 회사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해고했는데 용역 경비들과 충돌한 영상물을 증거로 사용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노조 파괴 열풍이 전국 사업장들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조 파괴의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만들어졌는데 CCTV도 한몫을 하지요. ① 노사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킨다. ② 파업 등 노동조합의 쟁의를 유도한다. ③ 경비 용역을 투입하고 곳곳에 CCTV를 설치한다. ④ 회사와 노동조합 간의 물리적인 충돌을 야기한다. ⑤ CCTV 녹화기록 등을 증거로 노동조합 간부들을 해고하고, 고소고발, 재산 압류,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제기한다. ⑥ 동요하는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탈퇴시키고 친회사 노조에 가입시킨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초토화되었거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노동조합만 어려움을 겪은 게 아닙니다. 유성기업의 경우 노조 파괴 기간 동안 3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도 CCTV는 노조 탄압의 최일선에 섰습니다.
6.
요즘 CCTV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험해졌고 믿지 못할 곳이 됐기 때문일 테죠. 주택가, 놀이터, 학교, 길거리 곳곳에서 CCTV는 당연한 것이 된 지 오래 됐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요양시설 등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일터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CCTV 화면의 어디서부터가 공익의 영역이고 어디서부터가 감시의 영역인지 경계 자체도 모호해졌습니다.
물론 관계 법령이 설치와 운영 과정을 규제하고 있습니다만 사례에서 보듯이 일터 안에서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균형이 확보되지 않는 한 사업주가 노동자를 감시하고 싶은 욕망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CCTV는 줄곧 ‘공익 목적과 감시 욕망’ 사이의 아슬한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정보 관리 주체가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고 정보의 관리가 불투명한’ 일터에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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