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대선이 끝났습니다. 결국 트럼프가 이기는 암흑의(?) 상황이 되었지만, 과연 민주당이 되었으면 뭐가 나았을 것인지 생각해볼 면이 많은 글인 것 같습니다. [편집자주] |
선라이즈 무브먼트라는 프리즘으로 미국 대선 보기
- 기후정치의 탈민주당화는 가능할까?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 위원장
지난 11월 5일 미국의 역사적 대선이 끝나고 유력한 기후위기 운동단체인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상당히 오랫동안 2024년 대선 캠페인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자체적으로 발표한 활동 백서에 따르면 선라이브 무브먼트는 이번 대선의 선거운동 기간 3개월 동안 4조 회(!)가 넘는 유권자 접촉을 진행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가가호호 방문이 2천억 회, 전화 홍보가 7천억 회, SNS를 통한 홍보가 2조 회, 온라인 홍보물의 활용에서 1조 6천 회에 달했다. 실제로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35세 이하의 유권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정치운동단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대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일 이슈 운동단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단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이번 미국 대선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기후정치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사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 동시에 나와 트럼프에 투표했나”는 질문
선라이즈 무브먼트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뉴욕의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약칭으로 AOC라고 불리는 이를 들 수 있다. 2018년에 하원의원이 되어서 현재까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고, 이번 대선이 진행된 11월 5일에 선거를 치뤘고 재선이 되었다. 선거 이후 AOC는 자신의 유권자에게, 특히 하원의원으로 자신을 지지했지만 대통령 후보로는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왜 그랬는지를 묻는 조사를 진행했다. 자신의 SNS에 질문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인데, 여기에는 다양한 답이 쏟아졌다. 여기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real, 즉 현실이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트럼프와 당신이 모두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은 그 둘이 스스로 생각하는 진짜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답이다. 실제로 AOC에 대해서 “어떤 면에서는 트럼프의 포퓰리즘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유형의 답이 나왔다. 한국에서 real은 현실주의적인 것, 즉 급진적이지 않고 절충적이거나 타협적인 것을 의미하는 뉘앙스가 강하지만 여기서 발견하는 현실의 문제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트럼프와 AOC가 그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전혀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특정한 유권자에겐 AOC와 해리스 보다 AOC와 트럼프가 더 비슷하다고 인식했다.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대선 외에도 8명의 하원의원 후보를 지지후보로 선정하여 발표했다. 그리고 단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물론 해당 지역구가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센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지지 후보들은 한편으로는 아예 이슬람 후보로 분류되는 유형과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주의자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즉 사회의 보수화로만 접근하면 이들 의원이 지역에서 당선되었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서두에 소개한 대선 직후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긴급 토론회에서는 ‘생활임금 인상에 찬성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것은 유권자의 잘못이 아니라 민주당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태도는 미국 급진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샌더스가 선거 직후 ‘노동계급이 민주당을 버린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노동계급을 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고 지적한 것과 공명한다. 이 때문인지 대선 직후 토론회는 우울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과제를 다루는 데 집중되었다. 놀랍게도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대선기간 동안 독자 후보로 출마한 미국 녹색당의 질 스타인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후보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해리스에 대하 전략적인 지지 활동을 해왔던 단체다. 우리 식으로 보면 완전 과몰입에 일정 기간 동안 자포자기에 가까운 분위기가 팽배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스라엘 전쟁과 기후위기 문제의 연결
올 해 초 미국 민주당의 예비선거 과정에서는 ‘백지투표’ 운동이 중요한 전략으로 등장했다. 이스라엘 전쟁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입장을 민주당 예비후보들에게 요구했고 그것이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으면 아예 백지 투표를 함으로써 선출되는 예비후보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 주류 뿐만 아니라 AOC와 같은 급진주의자들 조차도 파괴적이라면서 우려를 표했지만 대학가 중심으로 벌어진 백지 투표 운동은 이스라엘 전쟁을 대선의 주요한 의제가 되도록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런 캠페인은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중요한 전략이기도 했다. 즉 이스라엘 전쟁의 문제를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연결시킨 것인데, 단순히 전쟁 반대라는 낭만적인 주장에서 벗어나 국가 자원 투자의 우선순위 문제로 접근함으로써 전쟁 반대가 기후위기를 중요하게 다루기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문제로 이해시켰다. 실제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바이든이었던 6월까지도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이스라엘 전쟁에 대한 태도 문제로 바이든 지지에 대한 보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21세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행동의 사례인 선라이즈 무브먼트가 기후위기 문제 외의 문제 즉, 인종주의 문제나 전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논쟁이 있었음에도, 전쟁 문제가 국가 수준의 자원 배분을 왜곡시킨다는 점에 주목하고 무엇보다 기후운동의 정의로운 도덕적 감각이 이스라엘 전쟁과 같은 사태에 대해서 갖는 도덕적 감각과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의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주요한 주장들은 다양한 경로로 수용되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확대부터 새로운 그린뉴딜 전략과 인플레이션방지법에 포함된 대규모 재정투자의 확대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가진 모호한 태도에 대해, 특히 대규모 석유 재벌에 대한 규제를 주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해왔다. 지난 9월에는 아직 부통령이었던 해리스의 브렌트우드 자택 밖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상징하는 불타버린 소파와 산불의 재를 가져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의 목적은 당시 확산되던 산불가 더불어 해당 지역의 기후계획을 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산불의 피해자를 조직해서 ‘해리스는 우리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모습을 진지하게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도록 했다. 결국 해리스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분명한 계획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해당 시위의 결과로 2명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선라이즈 무브먼트가 트럼프의 당선에 의해 중대한 도전을 겪게 되었음에도 활동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정치전략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관건은 탈-민주당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미국 녹색당의 질 스타인 후보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녹색당 연합 역시 주요 국가의 녹색당 연명을 통해서 트럼프의 패배를 위해서라도 질 스타인이 사퇴해야 한다는 압력을 넣었다. 곤란함과 스트레스는 미국 민주당과 해리스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큰 좌절과 환멸을 느끼면서도 이들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기후운동에 전가 되었다. 이런 감정은 선거 이후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논쟁에서 확인된다.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 간의 갈등이라는 가짜논쟁에서 벗어나 점차 민주당-공화당의 양당체계에 대한 질문들이 진지하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중요한 맥락 중 하나가 캠페인 과정에서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들이 포퓰리즘의 계기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평가다. 여기서 포퓰리즘은 앞서 소개한 AOC-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말하는 real에 대한 관심 여부로 이해해볼 수 있다. 포퓰리즘은 기존 제도화된 정치에서 수용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문제들이 제도 바깥에서 등장하게 되는 계기들로 구성된다. <자코뱅>이 소개하는 대선 기간 동안 해리스 정치 캠페인에 대한 분석기사에서는 흥미로운 표 하나가 등장한다. 해리스 및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대선 캠페인과 발언 그리고 연설문을 통해서 분석한 결과, 9월 까지만 하더라도 재벌에 대한 문제나, 엘리트주의, 그리고 기업의 탐욕이나 빅 테크, 거대 은행, 월스트리트 문제가 주요하게 언급되었지만 그 이후 본 선거가 시작된 이후에는 법치나 헌법, 견제와 균형과 같은 전통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가 더욱 많이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해리스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연장선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고 외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는 여전히 도전자의 이미지, 즉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일지라도 선택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또한 현재의 문제를 구체적인 대상, 즉 기업의 탐욕이나 빈부격차를 만드는 부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추상적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보수주의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해리스 후보자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미국 민주당, 특히 클린턴 이후 ‘신 민주당노선’이 주류화된 이후 일반적인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선라이브 무브먼트가 모색하는 다양한 고민들은 미국 민주당에 인질화된 정치운동의 변화, 그것은 한편으로 민주당 자체의 개혁을 추동하는 당내 투쟁의 관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를 벗어나 정부 자체의 일관된 변화를 촉구하는 좀 더 보편적이고 독립적인 운동을 만들어가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고민들은 이제 일반적인 정치 구호가 되어버린 ‘윤석열 퇴진’과 기후위기 운동이 어떤 접면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명확한 것은 우리 운동이 특정한 당파의 인질이 되는 순간, 양보해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입장이 된다는 것이다. 한번 유예된 입장은 반복적으로 유예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물러서지 않는 완강함을 보이는 감세 세력들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이 들이라고 금융투자 과세가 매우 일부분에만 적용된다는 걸 모르겠는가, 오히려 한번의 성공을 통해서 최근 여야가 합의한 전자화폐와 같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시키는 것을 이뤄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탈-민주당에 대한 고민은 한정된 정치세력에 인질화되어 핵심적인 주장들을 유예하는데 익숙해지지 않는 운동의 갱신과 이어진다. 이것이 이번 미국 대선을 선라이즈 무브먼트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본 기후정치운동의 과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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