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감을 넘기시지만 이번달 1등이신(아무도 마감을 안 지키셨다는 뜻 ㅠㅠ) 김상철 필자님입니다. [편집자주] |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로
정치의 구성적 힘을 위해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위원회 위원장
탄핵정국은 그야말로 관점의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다. 한 쪽에선 감춰진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다른 쪽에선 가짜뉴스와 음모론으로 칭해진다. 선거과정 특히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둘ㄹ싼 신뢰성 문제는 계엄의 정당성을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 서부지법의 폭력행위를 경유하며서 20대 남성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폭발했다. 이는 남태령 대첩이라 부르는 농민들의 상경 철야집회에 20대 여성들이 주요한 연대자로 등장한 것과 비춰 세대 내의 이념 갈등으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동원된 여론조사의 결과들은 민주당과 국민의 힘 지지도 간의 역전과 탄핵 반대 여론의 지속적인 증가를 둘러싸고 다시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사회 현상의 실증적 증거로 등장한 여론조사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모호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현상이 물리적 현상과 다르게 동일한 관찰일지라도 반드시 합의 가능한 인과관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극단성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해석을 둘러싼 갈등
사회 현상에 대한 해석의 권위가 필요한 것은 이를 통해서 행동의 타당성이 사전적으로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사회적 정의보다는 당장의 먹고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해석이 득세하면 설사 투기적 이익이라 하더라도 이를 부정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것이 탄핵국면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해서 통과시킨 여러 감세 정책들이다. 이를 테면 금융투자소득세는 2020년에 여야합의를 통해서 기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는 대신 도입하기로 한 조세다. 2년간 도입을 유예하되 그 사이에 증권거래세를 점차 줄이기도 했다. 이로 인한 세수 결손은 2023년에서 2027년까지 10조원에 달한다. 이 10조원은 사회적으로 재분배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고액 주식투자자의 투기적 이익으로 유지된다.
20대의 남성과 여성 간의 정치적 이념이 극단적으로 부딪힌다고 보면 이를 중심으로 소구하는 정치적 동원대상이 나눠진다. 소위 진보적 사회운동들은 지속적으로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주요한 정치적 행사들을 개최하고 이들에게 대한 의미부여를 한다. 반면 보수적 운동세력들은 2030 남성들을 핵심적인 대상으로 동원하기 위해 이들의 공정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분석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세대별 문항을 선택해 볼 경우다. 하지만 휴대폰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생활인구 조사에 따르면 여의도-광화문 집회는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빈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서부지법 앞에서의 집회에선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최근 설문조사를 둘러싸고 과표집 논란을 고려하면 오로지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특정한 해석 만으로 정치적 동원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오히려 전국지표조사와 더불어 한국행정연구원이 수행한 직접 대면 방식의 사회인식조사 등을 교차해서 보면 세대 간의 이념 격차보다는 오히려 세대 내 경제적 지위에 따른 이념 격차가 더욱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여론조사 기관이 수행하는 전국지표조사에서는 20대 이하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이념 격차가 눈에 띄지만 8,000명을 대상으로 대면조사 방식으로 진행한 사회인식조사에서는 동일한 세대 내에서의 이념적 차이는 크게 확인되지 않는다.
선거관리위원회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2024년 4월에 공개된 ‘채용 비리 실태 조사’ 결과가 자리한다. 2013년 이후 291 차례 진행된 경력직 채용과정에서 선관위 전현직 직원들의 자녀들이 특채로 채용되었고 수사 외뢰 대상이 된 숫자만 49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는 관련 서류 제출을 거부하면서 감사원 감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선관위가 신뢰하기 힘들고 전문성도 낮다는 인식은 선관위의 채용 비리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선거부정 논의를 음모론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선관위를 괜찮은 기관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고 김어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선거 개표과정에 대한 신뢰가 일관되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의 음모론자들이 보기에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면 부정론을 이야기하고 유리하면 긍정론을 말하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
해석의 과잉은 곧 기득권 현상유지로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 본성이 가진 편향성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데 이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많은 경우 기존에 지속했던 판단들을 반복하는 경향이 크다. 만약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른 사실들이 확인되면 기존의 편향성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많은 경우 기존의 판단 경향을 지지하는 사실들을 선택하지만 그럼에도 그와 다른 증거들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적 평판에 기대어 볼 때 쉽지 않다. 그래서 행동의 정당성을 위해 끊임없이 사회현상에서 증거를 찾고자 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의 경합이 길어지면 역설적으로 현상유지의 힘이 더욱 커진다. 알버트 허시먼이 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에는 반동세력들이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사용한 레토릭을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로 구분한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생길 것이다 라는 역효과 명제,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무용 명제, 하면 더욱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라는 위험 명제가 그것인데, 이런 명제들은 모두 행동을 유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평평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을 정점으로 하는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려는 반동적 세력과 적어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 세력 간의 갈등을 한 축으로 하고 또한 기존 기득권 세력의 한 부분이면서도 ‘윤석열만 바꾸면 된다’고 믿는 반동적 세력과 이 참에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미뤄놓은 사회대개혁을 달성하자는 세력 간의 갈등을 다른 축으로 하는 복합적 영상이다. 현상 유지라는 반동적 전략은 당장의 우선순위에 인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작동된다. 해석을 둘러싼 경합은 최소 상호 합의 가능한 수준으로 우선순위의 목록을 걸러내고 그래서 한 측의 현상유지를 혁파하더라도 다른 측에서의 현상유지는 강화될 수 있다. 즉 복합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국면에서 더욱 고민해야 하는 것이 있다. 해석에 머문 국면은 사실상 ‘반정치적 국면’으로 고착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사회운동 내에서 반성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전문화된 사회운동이 가진 반정치적 정서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특정한 정치 그룹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한 알린스키의 사회운동 전략은 크림 브뤌레처럼 겉은 딱딱해 보이지만 안에는 말랑말랑한 속을 가진 ‘반공 자유주의 정치질서’를 전제로 했다는 평가나, 미국의 어큐파이 운동이나 흑인 목숨은 중요하다BLM 운동이 결국 보수 우파 운동의 양태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브라질의 경우에는 무상 교통 운동이 브라질 자유 운동이라는 우파 운동으로 변질된 사례들이 평가된다. 이들 사회운동은 대표의 문제와 리더쉽의 문제를 우회하면서 ‘대표가 없는 조직’이랄지 ‘정당에 개입하지 않는 비당파성’을 핵심적으로 표방했다. 이런 태도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구체적인 정치전략이 아니라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었고 이를 손쉽게 모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사회운동이 내부적으로 공동의 정치적 리더쉽을 만들어내면서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계기적인 운동의 결과가 낳을 수 있는 정치적 목표에 대한 내용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천의 경합을 고민해야
해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힘은 구체적인 현실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아무리 계산이 ‘0’으로 나오더라도 산출물이 ‘1’이면 바뀌어야 하는 건 해석이지 결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탄핵국면도 마찬가지다. 이미 조기대선을 확정하면서 기존 정당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안세력들은 해석의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다양한 다양한 과제들을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의 양식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기후정치를 고민하는 기후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탄핵광장에서 조차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기후위기 의제가 이후 정치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중요하게 등장할리 만무하다. 현재 기후위기비상행동은 4월로 예정되어 있는 보궐선거를 기후정치 실험의 경과지로 보고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5월초에 진행될 공산이 큰 조기대선을 경유해서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정치전략으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은 진보정당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2022년에 세상을 떠난 마이크 파커는 크라이슬러와 포드 공장에서 기술직 노동자로 일하고 점차 팀 생산 방식으로 바뀌는 노동 현장에 맞서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한 책을 썼고 노동조합의 민주주의 문제와 노동자들과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저항학교를 조직하기도 했던 노동운동가다. 그는 <민주주의는 권력이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람들의 참여와 관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참여 자체가 목적이 되어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하는 참여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차와 절차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민주적인 권력 행사의 실제 활동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리더십을 선택하고 요구하기
- 리더십에 도전하고 책임을 묻고 필요한 경우 교체하기
- 새로운 리더십 개발하기; 구성원들이 프로젝트의 일부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 광범위한 정치적 틀을 확립하는 데 의미 있는 참여
- 공동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학습하는 데 참여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리더쉽이 문제가 아니라 리더쉽을 구성하는 방식이 문제이고, 당연히 정치적 결과를 위해서는 새로운 대표를 구성하고 리더쉽을 만들어내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리더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모순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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