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작가님의 <젠더미술사> 입니다! [편집자주] |
우리에게 익숙한 재현은 무엇일까?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여러분은 미술교과서에서 여성화가의 그림을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저는 없답니다. 아마도 20세기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분들은 저와 같을 거예요. 여성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20세기의 저는 어릴 적 위인전기에서 보았던 거의 유일한 여성 ‘퀴리 부인(‘마리 퀴리’도 아니고!)’을 떠올리며 예고에 가지 않겠냐는 중학교 미술 선생님의 제안을 뿌리치고 일반고에 진학해서 이과를 선택했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미대에 가는 여학생이 많았으나 대부분 미술교사나 학원 강사가 되었고, 이름을 남긴 미술가는 모두 남성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는 데 보탬이 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무엇을 보며 자랐는가, 무엇을 ‘현실’이라고 배웠는가 는 오랫동안 저에게도 큰 영향을 준답니다. 저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이미지의 힘은 강력해서 어릴 때부터 누가 재현한 이미지를 보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제작한 이미지에 익숙한지는 의식과 무의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재현한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지 살펴보려고 해요.
예술과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서 가장 큰 변혁이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에 ‘누드화’라는 장르가 탄생했다고 하는데요, 누드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날씨가 좀 따뜻해질 때쯤(누드화는 보기만 해도 추워요^^;) 편집자님께 허락을 받은 후에 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던 유디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디트는 성경 유딧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데요, 개신교 성경에는 없고 가톨릭 성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앗시리아 군대에게 포위당했을 때,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과부 유디트가 충직한 하녀와 함께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 술에 취해 잠들게 한 후 목을 벱니다. 그리곤 하녀가 가져온 주머니에 머리를 넣어 숨겨서 적진을 빠져나와 성벽 가장 높은 곳에 효수합니다. 다음 날 장군이 죽은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진 앗시리아 군대를 이스라엘 군대가 물리쳐서 포위망을 뚫게 되는데요, 이렇게 위기에 빠진 민족을 구원한 영웅 유디트의 이야기를 르네상스 시기 많은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왼쪽 그림은 유럽의 가장 신비로운 천재 화가 중 한 명으로 이야기되는 조르조네(Giorgione, 본명 조르지오 바바렐리(Giorgio Barbarelii), 1478∼1510)가 그린 유디트입니다. 유디트 이야기의 절정은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목을 베는 순간이지만, 많은 화가들은 조르조네처럼 목을 벤 이후를 그렸습니다. 당시 교육의 기회는 남성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거의 모든 화가는 남성이었는데요, 남성을 해치는 여성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겠지요. 그리고는 이야기의 주인공 유디트의 입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기보다 홀로페르네스의 입장에서 ‘전쟁 중에 장군이 정신을 놓고 술을 마시다니, 유디트가 대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랬을까? 유디트가 어떻게 유혹했을까?’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조르조네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그리거나, 아예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끄는 팜 파탈로 그리곤 했답니다.
유디트가 장군의 목을 베는 장면을 그린 그림도 있기는 한데요, 폭력 사건에 수없이 연루되고 결국 살인까지 저질렀던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그림입니다. 카라바조는 금기를 깨는 주제를 다루거나 흔한 소재를 특유의 광기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곤 했는데요, 이 그림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인상을 찌푸린 어린 소녀로 등장하고, 장군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그림 안의 다른 사실적인 묘사들과 다르게 아무렇게나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여성 영웅을 담은 ‘유딧기’는 말이 안 된다고 조롱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폭군이기는 했지만 카라바조는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이 인물에게 중점적으로 빛을 주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배경 공간은 어둠 속에 두는 방식으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Lomi Gentileschi, 1563~1639)도 카라바조의 명암대비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요, 그의 딸이 바로 아르테미시아입니다. 아르테미니아는 당시 드물었던 여성 화가 중 하나로서 엄청난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로 유명합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어릴 적 아버지의 화실에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오라치오는 딸 아르테미시아의 독립을 원하지 않아 결혼까지 반대했다는데요, 아래가 바로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유디트랍니다.
아르테미시아(Artemisia, 1593년~1652– 1656 사이)도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빛을 극단적으로 사용해 극적인 효과를 잘 살렸습니다. 그리고 카라바조처럼 유디트가 장군의 목을 베는 바로 그 순간을 재현했어요. 하지만 아르테미시아는 다른 남성 화가들처럼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아니라 유디트의 입장에서 상상을 했습니다. ‘어떻게 여성의 몸으로 장군을 죽일 수 있었을까? 목을 몸에서 분리해냈다고 쓰여있는데 그 과정이 어땠을까?’
우리도 상상해볼까요? 좀 끔찍하지만, 살과 근육과 뼈를 분리하려면 물리적인 힘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유디트는 강인한 여성이었을 겁니다. 또 목을 분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을 장군이 아무리 취했어도 잠에서 깨어날 텐데 당연히 저항을 했을 거에요. 장군의 저항에 유디트가 무슨 특공부대처럼 단박에 제압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몸싸움이 벌어질 때, 하녀가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겠죠? 하녀와 유디트의 연대로 결국 장군의 목은 베어지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출혈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아르테미시아 그림의 해석과 표현이 훨씬 사실적이고 역동적이지만, 화가들은 아르테미이사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화가들도 유디트가 목을 벤 후의 장면을 그릴 뿐, 목을 베는 순간을 그리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몇몇 여성 화가들을 제외하고는 유디트를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이나 팜 파탈로 그립니다. 사실 유딧기에는 유디트가 당시 드물게도 유산을 상속받은 엄청난 부자였다고 쓰여있어서 성적으로 유혹했다기보다 협상을 제안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더 많지만, 남성 화가들은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라도 성별이 여성이라면 당연히 성적으로 유혹했을 것이라는 게으르고 구태의연한 해석을 한 것이지요.
적진에 침투해서 장군을 죽이고 목을 베어가지고 나와서 성벽에 효수하는 계획을 세울 만큼 지략도 뛰어나고 용감한 유디트를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년 ~ 1641년)는 마치 실수로 큰 일을 저지르고 멍하게 있는 사람처럼 그려놓았어요. 그림 전체에서 가슴을 가장 부각시켜서 성적인 사건을 상상하게 만들었고요.
그 유명한 클림트(Gustav Klimt, 1862년 ~ 1918년)도 자신이 죽인 장군의 머리를 들고 황홀경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그려 유디트를 살인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처럼 그려놓았고요, 역시 불필요하게 가슴을 노출시켜서 관객들로 하여금 유디트를 주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보게 만들어놓았죠.
아직도 주류 미술사책에는 여성 미술가를 거의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그림은 남성화가들의 것이고요. 권력을 가진 남성이 보고 싶어했던 모습으로 재현된 여성을 현대 대중매체가 고스란히 이어받아 우리에게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동료 여성들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민족을 구원한 영웅조차도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행위의 주체로서 상상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성적인 대상으로만 그려냈던 무지한 남성 화가들의 관점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참, 그거 아시나요? 유딧서는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 욥기처럼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든 픽션이지만, 그에서마저도 주인공 여성에게는 이름을 주지 않았어요. 유디트는 이름이 아니고 ‘유대인 여성’이라는 뜻이거든요. 어떤 경우에도 여성에게 동등한 자리를 줄 수 없었던 과거 권력자 남성들의 편협한 시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음을 인정하고, 모두를 동등한 주체로 생각하기 위해 우리가 누구의 눈에 익숙해져 있는가 끊임없이 성찰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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