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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수잔 발라동

화사 작가님의 그림이야기 입니다. [편집자주]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수잔 발라동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쯤 거울을 보시나요?

어떨 때 거울을 보시나요?

거울을 볼 때 주로 어디를 보시나요?

거울을 보며 보통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점점 거울을 보는 일이 줄어들어서 문득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듦에 따라 사회적 기준의 아름다움과 멀어져서 거울을 덜 보게 된 것인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거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어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전자와 후자가 맞물리는 일일 것 같기도 하지만, 여튼 저는 거울을 보는 시간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다시금 거울을 보며 저의 변화하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거울 속 자신을 한참 들여다보곤 하는데요,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 중에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 1938)이라는 프랑스 화가가 있답니다. 수잔 발라동은 자유로운 화풍을 구사한 화가이지만, 화가가 되기 전 발라동은 19세기 후반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모델이기도 했어요.

 

좌측부터 <부지발의 춤>, <도시의 춤>, <시골의 춤>, 르누아르, 1883

 

그중에서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 1919)가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세 개의 연작을 그렸는데요, 제작년도는 1883년이므로 42세의 르누아르가 18살의 수잔 발라동을 그린 것이지요. 이때 둘은 연인사이였다고 해요. 나이 차이로 보며 아버지와 딸 뻘이지요. 하지만 이 당시의 남성 화가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뮤즈라며 칭송했고, 연인을 삼고 싶어했답니다. 매력이 넘치고 재능도 많지만 자원이 없었던 발라동도 르누아르의 뮤즈였습니다. 그림 속의 발라동은 세상 순수한 모습으로 뽀얗고 귀엽고 수줍은 모습이에요.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의 전형이지요. 하지만 발라동은 르누아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르누아르가 바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불만이었어요.

 

발라동은 몽마르트르에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어머니와의 손에 자랐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11세 때부터 경제활동을 해야 했는데요, 닥치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모두 오래지 않아 금세 쫓겨났다고 해요.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성격 덕분이지요. 그러다 15세에 서커스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곡예사로 재능이 있었고 인기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중그네를 타다가 떨어져 다치는 바람에 발라동은 1년 만에 곡예사 생활을 접고 화가들의 모델이 됩니다.

 

좌측부터 모딜리아니가 그린 수잔 발라동, 드가가 그린 수잔 발라동, 샤빈이 그린 수잔 발라동

 

발라동은 당시 프랑스에서 유명했던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 1898)의 모델이자, 하녀이자, 연인으로 13역을 맡았습니다. 샤빈도 발라동과 41살이나 차이가 나지요. 그래도 샤반은 프랑스 국립 미술협회의 공동창립자이자 회장이었기 때문에 샤반의 눈에 들면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발라동은 자신의 그림을 쓰레기라며 무시한 샤반을 떠나서 화가들의 작업실을 전전하였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자존심을 지켜온 발라동을 르누아르는 세상물정 모르고 마냥 아름답기만 한 아가씨처럼 그려냈으니, 자의식이 강한 발라동은 르누아르가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여성의 자리에 인형처럼 놓아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좌) 로트렉이 그린 발라동, <세탁부> 1884년 / (우) 로트렉이 그린 발라동, 1888년

 

르누아르와 헤어진 발라동은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 1901)의 모델이 되었는데, 다른 남성화가들과 달리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만이 아니라 어두운 내면과 굴곡진 삶을 살아낸 힘을 볼 수 있었던 로트렉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유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는 축복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사고로 성장이 멈추어 키가 150cm 채 되지 않으며 지팡이가 없으면 걸을 수 없었던 로트렉은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발라동의 청혼을 거절하고 말아요.

 

하지만 발라동을 사랑하는 로트렉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발라동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드가(Edgar Degas, 1834~1917)를 소개하여 발라동으로 하여금 그림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남성 화가들에게 시선의 대상이었던 발라동을 자화상을 그리며 주체로 거듭났어요.

 

(좌) 수잔 발라동 <푸른 방>, 1923년, 퐁피두 미술관 소장 / (우) 수잔 발라동 <자화상>

 

결국 발라동은 최초의 여성 아카데미 회원’, ‘최초의 국립예술학회 전시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화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천재 작곡가라 불리는 에릭 사티의 청혼을 거절하기도 하고, 부유한 변호사와 결혼도 했던 발라동은 결국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할 만큼 주도적인 사랑을 원했어요. 많은 남성 예술가들이 자신을 단지 뮤즈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발라동은 유행하는 화풍을 벗어나 자신만의 과감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찾으며 여성을 보기 좋은 눈요깃거리로 그려내던 남성 화가들과 달리 여성을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려냅니다.

 

(좌) 수잔 발라동 <목욕>, 1895년 / (우) 수잔 발라동 <파란 방>, 1923년

 

계보가 중요한 남성중심의 미술사는 수잔 발라동처럼 특정한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예술가를 담지 못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놀라운 에너지와 재능을 꽃피워내면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시선을 표현했던 화가 수잔 발라동이 더 많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