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열 작가님의 <젠더미술사> 입니다! [편집자주] |
이제는 ‘단결 투쟁’ 대신 창발적인 연대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2025년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2024년에 머물러있는 느낌입니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나, 어떤 끔찍한 일들이 새롭게 밝혀졌나, 대체 언제 체포하나 뉴스를 확인하느라 수면 부족이 이어져 시공간이 흐릿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요즘 이러한 증상을 ‘내란성 수면장애’라고 하더군요. 저는 ‘굥황장애’까지 심각해서 계획한 일들을 거의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이 글의 마감이 늦어 죄송해요. T.T) 정말 내란수괴와 동조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시민들이 국회로, 경복궁으로, 남태령으로, 관저 앞 도로로 달려 나와 온몸으로 칼바람을 맞거나, 유튜브 생방송을 보며 미안해하게 만드는 내란공동체를 어서 해체하고 새로운 2025년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힘내고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개인/시민으로서 혼자 집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사실 커다란 깃발 아래 조직별로 모여서 비장하고 무시무시한 노래에 맞춰서 두 번 끊어 ‘팔뚝질’하는 모습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탄핵 집회에서는 잘 모르는 케이팝에 소외감이 느껴지던 몇십 분을 견뎠더니, 구호를 외치기 좋은 리듬이나 현재 상황에 맞는 가사의 곡들에 맞춰 각자 다른 응원봉과 촛불, 그리고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깃발들로 신나게 민주주의를 응원하고 체조하고 춤추는 분위기에 금세 적응이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성효숙 님의 그림이 떠올랐어요.
사측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바리케이드를 쌓고 파업 농성을 벌이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러 그룹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공부를 하는 등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을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1980년대 후반 거제에서 구로까지 노동자 대투쟁 시기의 여성 사업장의 농성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맞아요, 투쟁을 지속하려면 공부도 하고 서로 대화도 나누고 즐거운 감정도 공유해야 하죠. 하지만 여태껏 ‘투쟁’은 대체로 단상에 오른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쥔 수많은 이들의 “하나 된” 모습이나, 몇몇 사람의 엄청난 힘을 과시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런 모습은 민주주의보다 또 다른 독재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오래전 수업에서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는데, 민중은 거의 장년의 남성으로 등장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성 농민이나 남성 노동자, 격렬한 시위 현장의 남성이나 한복을 입고 칼춤을 추는 남성 등으로 투쟁과 해방의 주체인 민중을 재현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여성은 한복을 입거나, 아기를 업고 있거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거나, 울고 있거나, 죽어있거나, 벌거벗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배제당하는 기분을 느끼곤 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그림들을 따로 찾아보면서 안도할 수 있었지요. 할 일이 쌓인 비좁은 공간에 엎드려서 쪽잠을 자는 여성들의 모습은 저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자본을 독점한 소수의 사람들 외에 우리는 누구든 과잉 노동을 하도록 내몰리고 있잖아요. 한 번도 학생이기만 한 적 없이 노동을 병행해야 했던 저에게는 가장 부족한 것이 수면시간이라 이 그림이 더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수면시간을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무리에게 빼앗기고 있어 더 원통한 요즘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모인 곳을 찾아 달려 나가게 되는 이유는, 드디어 다양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이제야 드디어 대표성을 부여받은 사람뿐 아니라, 지정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장애 유무, 직종, 출신지, 거주지, 학력 등으로 인한 자신의 사회적 위치성을 인식하면서 경험을 통한 깨달음과 바람을 일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마이크를 통해 들을 수 있어 매번 감동하며 배우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함께 있었으나 엄청난 크기의 그림으로 그려진 모습을 마주했을 때야 그 존재와 노동의 중요성이 크게 다가오는 것처럼, 언제나 광장에 함께 있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청년들과 소수자의 존재가 응원봉과 깃발과 무대 위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제가 광장에 있었던 것처럼, 여성들은, 성소수자들은, 장애인들은, 피해자들은, 이주민들은 항상 함께 싸워왔으니, 새삼스레 ‘희망을 발견’했다고 호들갑 떨기보다, 성찰하고 반성하고 배우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싸웠으나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태령 대첩’을 통해 도시 청년들과 농민들이 만났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모는 이들이 원치 않는 만남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분명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논문만 마치면 아직 “남태령에 갇혀있는” 분들(파업 한 번 했다고 470억을 가압류당한 대우조선해양 동지들, 3년째 싸우는 명동세종호텔 동지들, 363일째 고공농성중인 구미옵티컬 박정혜, 소현숙)을 만나려 합니다.
듣자마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던 1월 4일 동십자각에서의 김진숙 지도위원 발언을 일부 옮겨봅니다.
"페미니스트가 대통령이 되고, 성소수자가 총리가 되고, 성폭력 피해 여성이 경찰청장이 되고, 알바노동자가 노동부 장관이 되고, 사고 피해 유족이 행정안전부 장관이 되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복지부 장관이 되고, 전농이 농림부 장관이 되고, 전쟁없는 세상을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 평화부 장관이 되는 게 민주주의고 진짜 대의정치 아닌가“
‘남태령 대첩’ 승리를 거쳐서 ‘우주 전사’까지 만나보았으니, 이제 ‘단결 투쟁!’을 외치며 다양한 목소리를 투쟁의 방해 요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연대’의 상상력으로 놀라운 역사가 펼쳐지는 매일매일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입니다. 우리 함께 계속 힘을 모아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각자가 꿈꾸는 세상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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