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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미술사가 담지 못한 그림 이야기] 신의 자리를 넘보는 인간에 대한 분노

 

신의 자리를 넘보는 인간에 대한 분노

 

이충열(화사)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안녕들 하십니까?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시민으로서 안녕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망상을 진리의 위치에 놓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무오류의 오류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인간들이 어쩜 이렇게 많은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성 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을 마비시키는 재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계획했는데요, 자신이 수많은 인간 중 하나임을 망각하는 이들 때문에 떠오르는 유명한 그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의 유무나 종류에 따라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다르겠지만, 이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가 있습니다. 각 지역과 문화권에 존재했던 여러 신과 종교를 으로 규정했던 기독교입니다. 이 세계에서 유일한 이어야 했던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라 불리는 존재를 떠올릴 때 우리는 아래 그림의 영향을 받습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 , 570 × 280cm, 1511년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이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또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작품으로,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면서 과학자였던 괴테는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보지 않고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성취를 할 수 있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죠.

 

저도 교과서에서 보았던 이 직접 그림을 보기 위해 시스티나 예배당을 가득 채운 세계인들 사이에 몸이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고개만 쳐들고 있던 적이 있는데요, <아담의 창조>는 천장화의 일부이고 전체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켈란젤로, 바티칸 궁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1400 × 4000cm, 1508~12년

 

<아담의 창조> 옆에는 <이브의 창조>가 있는데, 신이 먼저 아담(남성)을 만든 후에 그의 갈비뼈로부터 이브(여성)를 만든 것으로 묘사됩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이브의 창조>, 260 × 170cm, 1509~10년

 

<아담의 창조>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로 그려진 이 그림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쓰인 여성의 창조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린 것인데요, 그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 27)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세기 2:20~ 22)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5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동물까지 만든 후에 여섯째 날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들었다 하지만, 창세기 2장에서는 남자와 함께 만들었던 여자의 존재가 사라지고 아담 혼자 외로워 보였던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한 후에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이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언어로 쓰인 여러 문서를 특정시대 종교 지도자들이 편집하여 만든 책이기 때문에 여성의 창조에 대해서뿐 아니라 전설이나 역사적 사건, 인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을 수 없던 시대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성경 이야기를 예배당에 그렸고, 성경을 읽을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림으로 그려진 이야기를 기준 삼게 되었답니다.

 

물론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역시 종교 지도자의 뜻에 맞춰져 있었을 겁니다. 만약에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것이 성경에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다면 남성중심주의를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성경과 가부장제의 충돌은 지배에 어려움을 초래했겠지요.

 

여전히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는 사실은 교회에서 외면받습니다. 또한 제가 알기로는 서양 고전 회화에서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창조된 장면을 그린 그림도 없지요(만약 발견하신다면 제보해주세요!). 이와 같이 정보를 차단하는 권력은 항상 위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삭제함으로써 남성 우월주의를 만들어 성별 위계를 정당화한 것처럼요.

 

이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당시의 인본주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절대권력을 가진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고, 그중에서도 백인/노년/남성의 모습으로 재현한 것이지요. 신이 인간처럼 노화가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다니요! 근육이 불뚝불뚝하지만 힘없이 기대앉은 젊은 남성의 처진 손끝에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신이 영혼을 부여합니다. 여기에서 나이 권력도 정당화되는 거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 28).

 

또한 르네상스부터 신이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고 소유할 수 있는 권력을 주었다고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다른 생명들을 지배하고 착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신의 모습을 이미 권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의 모습, 즉 백인/노년/남성의 모습으로 그리게 된 것이에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체 비례도>, 24.5×34.4cm, 1490년경

 

서양은 14세기 이후 종교 권력이 지배하던 중세시대에서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이성을 내세운 르네상스 인본주의로 넘어갔지만 인간을 좁은 의미로 한정하며 위계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하려 했다면, 대한민국에는 2025년에도 다시 중세처럼 초월적 존재의 힘에 의지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사회적 합의를 무시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예의 위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안타깝습니다.

 

불면의 밤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근대사회의 기본 원리가 비상식적인 개인과 법조 카르텔, 그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 끝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던 저도 기존의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인지부조화를 겪습니다.

 

깨어있어도 꿈속에 있는 것 같고 잠들어도 끔찍한 현실 속에 있는 것 같아 몽롱한 상태가 됩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 되는 법 앞에 평등원칙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이해관계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문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불의에 무뎌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이 분노하고 연대하는 데서 나옵니다.

 

2024년 12월 22일, 남태령 대첩 오마이뉴스 사진, 저작권자: 권우성

 

자유라는 이름을 훼손시키며 특혜를 정당화하고 차별과 혐오를 옹호하는 이들을 평등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날까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농민, 노동자, 비국민, 아동·청소년 등 정상인의 기준에 의해 억압받았던 모두가 안녕하기 위해 건강하고 마땅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